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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상 최대의 사기꾼', 예술을 넘보다

뮤지컬 '바넘: 위대한 쇼맨' 
 ‘위대한 쇼맨’인가 ‘희대의 사기꾼’인가. 지난해 휴 잭맨 주연의 뮤지컬 영화 ‘위대한 쇼맨’이 개봉하자 주인공 바넘에 대한 때아닌 논란이 일었다. 실존 인물인 피니어스 테일러 바넘(1810~1891)은 지난해 시대 변화를 견디지 못하고 146년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진 전통의 서커스단 ‘링링 브로스 앤 바넘 앤 베일리’의 창업자로, 하원의원과 시장까지 지낸 정치가이기도 하다. 그런데 이 ‘19세기 미국 쇼 비즈니스 창시자’에 대한 평가는 엇갈린다. 80살 노파를 ‘조지 워싱턴의 유모였던 세상에서 가장 나이 많은 160살 여자’로 날조하는 등 쇼의 흥행을 위해 허풍과 거짓말을 예사로 했던 ‘과장 광고와 노이즈 마케팅의 원조’일 뿐 아니라, 인종차별과 인권유린에 동물 학대까지 돈벌이 수단으로 삼았던 인물이기 때문이다.  
 
 링링 브로스 폐업에 즈음해 제작된 영화는 그런 바넘을 순정적인 휴머니스트이자 편견없는 박애주의자로 그려 논란이 됐지만, 최근 개막한 뮤지컬 ‘바넘: 위대한 쇼맨’은 대본과 음악이 전혀 다른 별개의 작품이다. 1980년 브로드웨이 초연 당시 뮤지컬에서 흔히 볼 수 없었던 서커스를 극에 자연스럽게 녹여 다양한 볼거리를 제공한 ‘최고의 쇼 뮤지컬’로 평가 받으며 토니상 남우주연상·무대디자인상·의상디자인상을 수상했고, 81년 웨스트엔드 프로덕션도 올리비에상 남우주연상을 받았다.  
 
 한국 공연은 상대적으로 각색이 자유로운 ‘스몰 라이선스’로 들여와 이야기·음악·무대를 커스터마이징했다. ‘살짜기 옵서예’ ‘시라노’ 등을 만든 구스타보 자작이 연출을 맡고, ‘프랑켄슈타인’ ‘삼총사’ ‘잭 더 리퍼’ 등의 이성준 작곡가가 음악감독을 맡았다. 한때 마치 영화의 원작 무대인양 홍보됐지만, 디즈니 애니메이션을 연상시켰던 영화의 화려한 음악과 스케일과는 거리가 멀다. 각색을 했다지만 여전히 80년대스러운 고전적이고 소박한 무대다.  
 
 영화의 스펙터클을 기대한 관객에게는 실망스럽겠지만, 뮤지컬 무대만의 매력은 있다. 쇼에 관한 드라마인 동시에 쇼 그 자체인 것이다. 전문 서커스 팀이 출연해 링쇼·저글링·트라페즈·불쇼 등을 구현하고, 장애인 인권유린 논란의 주인공인 난쟁이 ‘톰 섬’ 역에 실제 왜소증 배우 김유남을 캐스팅해 진짜 바넘의 쇼로 만들었다. 영화에서 저급한 볼거리로 취급되는 서커스 단원들과 상극인 숭고한 예술을 상징했던 오페라 가수 ‘제니 린드’ 역에도 실제 성악가 신델라가 남다른 아우라를 발산하며 고급 예술의 진수를 들려준다. 이 모든 등장인물을 일일이 호명한 커튼콜은 곧 바넘이 만든 ‘지상 최대의 쇼(The Greatest Show on Earth)’의 커튼콜이 됐다. 아날로그 쇼가 위기에 처한 시대, ‘원조 쇼’에 바치는 헌사랄까.  
 
 영화와 같은 미화는 없다. 바넘 자신의 입으로 사기꾼임을 인정하고 시작해 지루할 틈 없는 빠른 전개로 훑어가는 그의 일생은 선악의 구분을 넘어선 유연한 협상가의 면모를 보여줄 뿐이다. 동업자와 의견이 충돌하고, 극장 건축에 사기를 당하고, 화재로 모든 걸 잃은 위기의 순간마다 특유의 협상 기술이 그를 살린다. 능청맞은 바넘 역의 유준상 캐스팅은 맞춤옷을 입힌 듯 자연스럽다.  
 
 그의 협상력은 전에 없던 ‘쇼 비즈니스’의 개척을 향해 질주하고, 종착역에 이르러 이 ‘메타 쇼’는 이런 질문을 던진다. 대중의 취향과 ‘협상’하는 쇼 비즈니스는 고상한 예술과 구별되어야 하는가-. 영화에서 뚜렷했던 오페라 가수 제니와 서커스 단원들의 양극 구도가 무대에는 없다는 점이 의미심장하다. 제니와 바넘의 관계도 파탄으로 끝나지 않고 함께 ‘지상 최대의 쇼’를 만들자는 협상에 도달한다.   
 
 하지만 이 ‘지상 최대의 쇼’는 146년만에 쓸쓸히 막을 내렸고, 곡예사와 조련사들은 일자리를 잃었다. 어쩌면 이 ‘쇼’는 지금의 쇼가 어떻게 시대와 ‘협상’해 가야 할지 그에게 묻고 있는 것 아닐까. 주요 넘버 ‘Black and White’와 ‘The Colors of My Life’에 답이 담긴 듯도 하다. ‘흑과 백의 세상’인 정계를 은퇴한 바넘은 ‘관객에게 꿈과 희망과 웃음과 감동을 주고자’ 쇼 비즈니스에 컴백한다. ‘흑과 백’으로 된 세상에 알록달록 색깔을 입히는 게 바넘이 꿈꾸던 쇼 비즈니스 아니었을까. 그런 바넘의 삶을 ‘흑과 백’의 논리로 재단할 수 있을까. 어차피 쇼는 예나 지금이나 무지개빛이어야 한다.  
 
글 유주현 객원기자 yjjoo@joongang.co.kr 사진 킹앤아이컴퍼니
기간: 10월 28일까지 장소: 충무아트센터 대극장 문의:1544-15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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