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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년 만에 도착한 조카의 선물

 WITH 樂: 쇼팽과 버스커 버스커
폴리니가 쇼팽 콩쿠르 우승 직후 녹음한 협주곡 1번 음반. 오리지널 마스터를 사용해 다시 제작한 LP.

폴리니가 쇼팽 콩쿠르 우승 직후 녹음한 협주곡 1번 음반. 오리지널 마스터를 사용해 다시 제작한 LP.

 은경아, 선물로 보내 준 LP 두 장 잘 받았다. 외삼촌이 LP 레코드로 음악 듣는 걸 좋아한다고 이걸 마련했구나. 음반이 나한테 전달되는데 5년이라는 세월이 걸릴 줄은 너도 생각하지 못했을 게다. 신혼 여행에서 돌아와 음반을 사긴 했지만 달콤쌉싸름한 신접 살림에 선물 전달 같은 일은 뒤로 또 뒤로 미뤄졌겠지. 출산을 하고 아이를 키우는 동안 계절은 쉼없이 바뀌었겠지. 그래도 영영 잊어버리지 않고 음반을 보냈으니, 이제 주변을 돌아볼 여유가 생긴 모양이구나.  
 
 버스커 버스커 음반은 나를 잠시 당황하게 했다. ‘여수 밤바다’는 익히 듣던 노래였어. 2012년 여수박람회가 한창일 때 그 노래는 TV에서 자주 흘러나왔는데, 분위기가 독특해 들릴 때마다 속으로 따라하곤 했단다. 마지막 가사 “뭐하고 있냐고, 나는 지금 여수 밤바다”에서는 한 번도 가보지 못한 여수로 달려가고 싶은 충동이 느껴지기도 했지. ‘벚꽃 엔딩’도 봄마다 들어 익숙한 노래였어. 처음과 마지막에서 “그대여”를 네 번이나 반복해 부르는 소리가 인상적이지.  
 
 그런데 말이다, 나는 이 노래들을 부른 게 3인조 밴드 버스커 버스커인 줄 음반을 받고서야 알았다. 하루는 24시간에 불과하고 클래식 위주로 듣다 보니 요즘 음악엔 무심했던 게지. 알고 보니 버스커 버스커 1집 LP는 2017년에 5주년 기념 한정판이 나왔는데 이제 그것마저 절판돼 오리지널 음반은 중고 시장에서 희귀 음반으로 거래된단다. 그런 보물을 네가 비닐도 뜯지 않은 채 5년 동안 고이 간직하다 선물로 준 것이다. 묻어 둔 도라지가 산삼이 되었다고 할까.  
 
 마우리치오 폴리니가 연주한 쇼팽 피아노협주곡 1번 음반은 내가 잘 안다. 쇼팽 1번은 명반이 많지만 이 연주도 명연주에 꼽히지. 네가 선물한 LP는 옛 아날로그 음원을 사용해 최근에 다시 제작한 것이다. 화려한 실력을 뽐내는 요즘 연주자도 많은데 굳이 옛 녹음으로 음반을 만들었다면 그럴 만한 이유가 있겠지.  
 
 이탈리아 피아니스트 마우리치오 폴리니는 1960년 18세의 나이로 쇼팽 콩쿠르에서 우승했다. 쇼팽 콩쿠르는 가장 권위 있는 피아노 경연인데 조성진군이 2015년에 우승했지. 폴리니가 대회에 나갔을 때 심사를 맡았던 피아니스트 루빈슈타인은 “여기 앉은 심사위원들보다 연주 기술이 뛰어나다”고 칭찬했다고 해. 새로운 스타가 등장하면 음반 회사는 서둘러 레코드를 발매하게 마련이지. 폴리니는 우승 직후 EMI에서 쇼팽 1번 협주곡을 녹음했는데 네가 고른 음반이 바로 그것이다. 
 
 나는 쇼팽의 1번 협주곡은 프랑스 피아니스트 상송 프랑수아의 연주를 많이 들어왔다. 빛나는 기교는 말할 것도 없고 그의 반항적 눈빛을 닮은 격렬한 피아니즘이 팽팽한 긴장감을 주는 게 매력적이지. 그런데 폴리니의 연주도 들어보니 아주 좋구나. 정확하면서도 청년의 맑은 감성이 느껴져.  
 
 그 폴리니가 이제 70대 노인이 됐단다. 음반 재킷의 아름다운 청년은 머리칼이 다 빠지고 쭈글쭈글한 할아버지가 되었어. 그렇지만 최근의 활동을 보면 예술가 정신은 조금도 시든 것 같지가 않아. 2009년에 최초의 바흐 녹음으로 평균율클라비어곡집 1권을 냈는데 20년 이상 탐구한 결과라고 해. 지난해에는 “쇼팽과 사랑에 빠졌다”고 고백하며 쇼팽 후기 작품 음반을 냈고, 올해는 드뷔시 100주기를 맞아 전주곡집 2권을 녹음했어. 놀랍지 않니?  
 
 은경아. 내가 기억하는 네 모습은 하얀 드레스를 입은 어여쁜 신부다. 민준이와 같이 읽은 결혼서약 잘 지키고 있니?^^ 어렵거든 쇼팽 협주곡 1번 2악장을 같이 들어 보거라. 진심과 배려, 사랑의 기운이 두 사람을 감싸줄 거다.  
 
글 최정동 기자 choi.jeongdo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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