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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의 불만족이 기업가 정신 출발 … 혁신해야 도전 성공

[홍병기의 CEO 탐구] 남민우 다산네트웍스회장
남민우 다산네트웍스 회장은 현실에 대한 불만족, 세상에 대한 불만에서 기업가 정신은 출발한다고 말했다. [김경빈 기자]

남민우 다산네트웍스 회장은 현실에 대한 불만족, 세상에 대한 불만에서 기업가 정신은 출발한다고 말했다. [김경빈 기자]

남민우 다산네트웍스 회장(56)은 별난 사람이다. 명문대에서 기계공학을 전공하고도 네트워크 통신 장비 분야로 창업에 나서 국내 1위는 물론 세계 5위권의 기업으로 키운 국내 벤처기업 1세대의 최고참 선배다. 한 편의 영화 같은 드라마틱한 인생 이야기에 빠져들게 만드는 흡인력까지 갖췄다. 그의 인생관, 경영 철학, 그 속에서의 소중한 가치가 무엇인지를 직접 만나 들어봤다.

국내 벤처1세대 최고참
세상 바꾸는 대신 내 처지 바꾸려
대출금 3000만원으로 회사 차려

사업 성공 비결은
성공보다 아직 망하지 않은 것뿐
위기 때마다 도전으로 살아남아

앞으로 목표는
미국 ‘뱁슨’처럼 인재 발굴·육성
창업대학 만드는 게 마지막 꿈

 
다산이란 회사 이름은 무슨 뜻인가.
“정약용 선생의 호에서 따온 것이다. 다산이 혁신의 상징으로 오늘날의 벤처 정신을 대표하고 있다는 생각에서 정하게 됐다. 서학(천주교)이라는 새로운 세계관을 앞서 받아들이고, 거중기를 직접 제조해 수원성을 신축하는 등 각종 기술을 실생활에 적용했다. 당시 세계에서 엄청난 혁신을 시도했던 사람이다.”
 
서울대를 나와 안정적인 직장인의 길을 버리고 창업을 택했다.
“찢어지게 가난한 시골집에서 태어나 어릴 때 농사철마다 일하느라 엄청나게 고생했던 기억이 있다. 여기서 탈출하는 길은 공부밖에 없다는 생각에 정말로 열심히 공부만 전념해 서울대에 들어갔다. 대학 졸업 후 대기업에 들어가서도 열심히 일만 하면 인생이 바뀔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더라.”
 
80학번인 남 회장의 학과 동기 50명 중 상당수가 대학원 진학이나 유학으로 학업의 길을 계속 걸었지만, 그처럼 취업을 택한 친구는 5명밖에 없었다.
 
동기들과 다른 길을 걷는 데 고민이 많았겠다.
“입사 몇 년 후 유학파 선배가 내 위 자리에 낙하산으로 들어오더라. 열심히 일해도 벌어진 격차는 좁혀지질 않았다. 이렇게 살아선 희망이 없다는 생각에 병역 특례 의무 근무(5년)가 끝나자 미련 없이 사표를 던졌다.”
 
창업에 얽힌 비화가 많을 듯싶다.
“전 재산이 전세금 2000만원뿐이어서 막막했다. 마침 은행 지점장이었던 친척 형님이 ‘한 살이라도 젊을 때 독립하라’며 자기 전결로 3000만원을 덜컥 빌려주더라. 그 돈으로 직원 4명과 함께 소프트웨어 판매회사를 차린 것이 시작이었다.”
 
쉽지 않은 여정이었겠다. 지금의 나를 만든 동인은 무엇인가.
“현실에 대한 불만족, 세상에 대한 불만이다. 나도 잘살아 봐야겠는데 세상은 바뀌지 않고… 월급쟁이 시절 퇴근 후 봉천동 집 뒷산에서 홀로 담배를 피우며 아래를 내려다보노라니 불 켜진 수많은 아파트 중에 내 집 하나가 없다는 생각에 허무하더라. 결국 세상을 바꾸는 것보다 사업을 해서 내 처지를 바꾸는 게 빠르다고 생각해 창업을 결심했다.”
 
자칫 절망과 불만이 사회에 대한 공격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이를 긍정적으로 이끌 수 있는 동력은 무엇일까.
“욕망과 인생에 대한 불만족은 바로 기업가 정신의 출발이다. 내 인생을 바꾸기 위해 도전하고, 도전에 성공하려면 혁신해야 하며, 이를 통해 뭔가를 창조하는 게 기업가 정신의 핵심이다. 인생을 바꾸고 싶으면 창업에 도전하라고 주변 사람들에게도 항상 이야기한다.”
 
전공과 거리가 먼 업종을 택한 이유는.
“처음엔 한 달에 사무실 운영비만 500만원씩 뭉텅뭉텅 나갔다. 어렵게 빌린 돈을 그냥 털어놓는다는 생각에 자다가도 벌떡벌떡 일어나게 되더라. 그래서 교육비가 지원되는 소프트웨어 교육 강좌를 개설하면서 회사 이름부터 알려 나가자고 생각했다. 당시 유행이었던 CDMA, TDX 등 각종 통신 장비 개발 소프트웨어와 산업용 OS 등의 강좌를 개설한 것이 인연이 됐다. 시장에서 필요한 아이템을 배워서 개발하면서 자연스레 통신 장비를 개발하는 쪽으로 사업을 진행하게 됐다. 만약 내가 박사였더라면 전공이라는 좁은 틀에만 묶여서 시장에서 필요한 이런저런 분야를 다양하게 시도하지 못했을 것이다.”
 
가장 기억나는 장면이 있다면.
“당시 통신 장비 개발 붐이 일면서 창업 첫해 만에 빚 3000만원을 다 갚았다. 그날 밤에야 비로소 발을 뻗고 잠을 잘 수 있었다. 창업 직후 1년 동안은 쓰러지면 무덤이라 생각했다. 그렇게 어렵게 사업을 시작했다.”
 
다산네트웍스는 이제 코스닥과 나스닥에 상장된 4개 회사 등 12개의 주요 계열사를 거느리며, 연 매출 6000억 원대의 견실한 중견 그룹으로 자리 잡았다.
 
사업서 성공을 거둔 나만의 비결이 있나.
“지금도 성공했다기보다는 아직 망하지 않은 것일 뿐이다. (뜸을 들이다가) 나에겐 경계가 없다. 맷집과 유연성만 있을 뿐이다. 뭐든지 신줏단지처럼 모시지 않고 이게 아니다 싶으면 자유롭게 과감하게 돌아설 수 있다. 1991년 창업 이후 환란 위기와 2008년 금융위기 때까지 모두 4번이나 망할 뻔한 위기가 있었다. 그때마다 문제의식과 도전의식이 있었기에 살아남는 게 가능하지 않았나 싶다.”
 
환란 위기 때는 환율이 2배로 뛰어오르면서 수입 물품 대금을 달러로 지불하기 어려워 흑자 도산할 뻔했다. 남 회장은 납품 업자들에게 대금 송금을 6개월만 유예해달라고 부탁하고 직원 12명을 데리고 무작정 미국으로 건너갔다. 당시 호황이던 실리콘 밸리에 자리를 잡고 월 1만 달러씩 받고 소프트웨어 개발 컨설팅 아르바이트에 나섰다. 모두 함께 합숙하면서 봉고차를 타고 출퇴근을 하다 보니 ‘코리안 아미’라는 별명까지 붙었다. 그렇게 억척같이 달러를 벌어들여 1년 만에 20억원이 넘는 빚 다 갚고 위기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는 것이다. ‘행동파’ 남 회장다운 발상이자 위기 극복이다.
 
남 회장은 “그때 현장에서 ‘이제 인터넷 시대가 왔구나’라는 걸 실감했다”고 말한다. 그래서 네트워크 연결장치 라우터와 같은 인터넷 장비 개발에 꽂혀서 귀국 후에 주력 제품으로 삼게 됐고, 그것이 오늘날의 다산을 만든 원동력이 됐다.
 
경영자로서 나름의 징크스는 없나.
“눈에 보이는 것을 중시하는 실물주의자여서 그런지 제조업 외에 인터넷 서비스와 같은 추상적인 사업을 접하면 항상 어려운 게 약점이다.”
 
독특한 버릇이 있다면.
“타고난 호기심이라고나 할까. 그래서 다양한 사람을 만나길 좋아하고, 새로운 것과 만나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박근혜 정부 때 장관급인 대통령 직속 기구 청년위원회 위원장을 맡았다가 6개월 만에 물러났다.
“노무현 정부 시절 벤처업계를 대표해 추진했던 남북 IT 협력사업을 계속 해왔던 게 남북 교류를 금지한 5·24 대북제재 조치를 위반한 것이라며 사퇴 압력을 받았다.”
 
그는 당시 남북 합작을 협의하면서 평양에 두 번이나 다녀왔다. 평양정보센터(PIC)와 합작으로 중국 단둥에 연구개발센터를 설립해 10년 동안 100여 명의 전문인력을 양성 배출하다가 폐쇄했다.
 
"(망설이다가) 아마도 위원장 취임 이후 벤처 마케팅을 위한 공영 홈쇼핑 개설을 주장하면서 대기업의 갑을 문화 등을 거침없이 비판했던 게 고위층의 눈에 거슬리게 보였던 모양이다. 그 와중에 검찰 수사까지 받았다. 그때부터 앞으로 정치권 근처에는 얼씬거리지도 말아야겠다고 결심했다.”
 
앞으로의 목표는 무엇인가.
“적당한 시점에 은퇴하면 기업가형 인재를 발굴하는 미국의 뱁슨(Babson) 칼리지 같은 ‘창업대학’을 국내에도 만들어 보는 게 마지막 꿈이다.”
 
창업이나 사회 진출을 앞둔 젊은이들에게 해주고 싶은 조언은
“나는 금수저도, 흙수저도 아닌 나무젓가락 출신이다. 어찌 보면 과거의 불행은 미래에 행복해지기 위한 필요조건이다. 흙수저는 최고의 인생을 누릴 수 있는 행운으로 볼 수 있지 않을까. 이제 성공만 하면 되기 때문이다. 모든 것을 가지고 태어난 인생은 자기 소유물에 대한 가치를 모른다. 없는 것에 대한 불만과 원망보다 그것을 얻기 위해 환상과 욕망을 성취해나가는 게 성공의 원동력이 된다는 것을 기억해달라.”
 
[글씨로 본 이 사람] 입 무겁고 친화적이며 낙천적
남민우글씨

남민우글씨

남민우 회장의 글씨는 전반적으로 둥근 것이 특징이다. 필적 분석 전문가인 구본진 변호사는 “둥근 글씨는 친화적이고, 사회성이 있으며, 편안한 성격을 의미한다”고 분석했다. 미국필적학회를 만든 휴고 하겐 박사의 저서 『필적학』에 따르면 “쾌활하고, 태평하며, 부드러운 사람이 둥근 글씨를 쓴다”고 나온다. 반면 매우 각이 진 글씨는 저항적인 사람이 쓴다는 것이다.
 
글씨가 오른쪽으로 갈수록 올라가는 것은 이상주의적이고, 외향적이며, 낙천적인 성향을 나타낸다. 가로로 넓고 꽉 차있는 ‘ㅇ’자는 관대함과 친절, 과시를 뜻한다. ‘ㅇ’자가 닫혀 있는 것은 비밀을 지킬 수 있는 능력이 있다는 뜻이다. 둥근 항아리 형태의 ‘ㅂ’자는 사교적이고, 양보와 타협을 하는 태도가 두드러진 사람에게 잘 나타나는 특징이라는 게 구 변호사의 분석이다.
 
홍병기 선임기자 klaatu@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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