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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모두가 현대사 … 과장·부장 승진도 빅 스토리다

일반인 자서전 열풍, 어떻게 쓸 것인가
자기 역사를 쓴다는 것

자기 역사를 쓴다는 것

자기 역사를 쓴다는 것

일본 최고 지성의 글쓰기 강좌
50~60대 은퇴자들과 실전 수업
수강생들 과제물 꼼꼼하게 살펴

‘시작이 반’ 연표부터 작성
부모·가계 정리하면 훨씬 편해져
단락만 잘 나눠도 매끄럽게 읽혀

100세 시대, 우리는 왜 사는가
개개인은 세계 기억의 네트워크
기록 남기지 않으면 세상 사라져

다치바나 다카시 지음
이언숙 옮김, 바다출판사
 
자코모 카사노바(1725~1798)와 19세기 프랑스 여성문학을 대표하는 조르주 상드(1804~1876)는 공통점이 많다. 둘 다 허다한 염문으로 유명하다. 둘 다 서구 문학사가 손꼽는 문호다. 둘 다 『내 인생 이야기(Histoire de ma vie, Story of My Life)』라는 제목으로 자서전을 썼는데, 둘 다 이들의 대표작 중 하나다.
 
프랑스어의 ‘이스투아르(histoire)’는 우리말로 역사이기도 하고 이야기·전기이기도 하다. 결국 역사는 이야기의 한 유형이다. 전기라는 이야기가 모여 역사라는 큰 물줄기를 이룬다.
 
역사에는 주체가 있다. 히스토리(his-story)는 남성 중심, 허스토리(her-story)는 여성 중심 역사다. 개인 차원에서 보면 ‘내 이야기(my story)’인 전기가 곧 역사다. 개인사가 곧 역사가 될 수 있다. 최소한 역사학의 1차 자료다. 『자기 역사를 쓴다는 것』은 그런 관점에서 쓴 책이다.
 
요즘 글쓰기, 특히 작가가 되는 법에 대한 책들이 눈에 많이 띈다. ‘모든 소설은 자전적이다’라는 이야기는 상당히 믿을만한 이야기다. 어쩌면 자전적인 소설을 쓰거나 자서전을 쓰는 게 가장 빨리 작가가 되는 길이다.
 
자서전을 쓰는 이유는 다양하다. 정치적인 이유로, 예컨대 출마하기 위해 자서전 형식의 저서가 필요한 사람도 있다. 또 수십 년 동안 어떤 분야에서 피땀 흘리며 얻은 노하우를 후세에 전달하고자 하는 사람도 있다. 집안의 역사를 손주들에게 알리려는 할아버지·할머니도 있다. 그런데 막상 자서전을 쓰려면 막막하다. 『자기 역사를 쓴다는 것』은 자서전 쓰기의 과정과 요령을 차근차근 사례를 들어가며 알려준다. 머리말·후기 쓰는 방법 같은 것 말이다.
 
이미 레드오션(red ocean)이 됐는지 모르는 자서전 쓰기 출판 시장에서 이 책의 차별성은 무엇일까. 이 책의 저자는 자서전을 ‘자기 역사(personal history)’로 이해한다. 또 자신이 겪은 일을 세계와 자기 나라의 역사와 연계해 보라고 요구한다. 까다로와 보이는 요구다. 하지만 이 책의 뿌리가 된 ‘현대사 속의 자기 역사’라는 은퇴자 대상 대학 강의를 수강한 40여명의 50~60대 학생들은 저자의 요구에 묵묵히 따랐다. 그 결과 이 책이 탄생했다. 수강생들은 신문기자·선생님·법관 출신도 있었지만, 글하고는 좀 거리가 있는 인생을 산 분들이 많았다.
 
1945년 미국의 핵 투하로 파괴된 나가사키의 종교 시설. 일본 언론인 다치바나 다카시는 은퇴자를 대상으로 한 대학 강의에서 역사와 ‘개인의 역사’를 연계하는 자서전 쓰기를 가르쳤다. 학생들은 태평양 전쟁, 전후 상황을 자신의 ‘자기 역사’에 생생히 담았다. [사진 린 워커 2세]

1945년 미국의 핵 투하로 파괴된 나가사키의 종교 시설. 일본 언론인 다치바나 다카시는 은퇴자를 대상으로 한 대학 강의에서 역사와 ‘개인의 역사’를 연계하는 자서전 쓰기를 가르쳤다. 학생들은 태평양 전쟁, 전후 상황을 자신의 ‘자기 역사’에 생생히 담았다. [사진 린 워커 2세]

인생 100세 시대다. 하반기 인생을 앞두고 전반기 인생의 중간 마무리를 자서전 쓰기로 해보자는 게 ‘현대사 속의 자기 역사’ 강의의 취지 중 하나였다.
 
저자는 모든 인간이 ‘세계 기억 네트워크’의 일부분이라고 주장한다. 그래서 우리가 ‘자기 역사’를 남기지 않고 세상을 뜨면, 그만큼 ‘세계 기억 네트워크’가 손상을 입는다는 것이다. 과장 같지만, 곰곰이 생각해보면 그럴듯한 주장이다.
 
저자는 ‘누구나’를 강조한다. (사실 ‘누구나’를 내세우는 사기꾼들이 많다는 점에 주의할 필요가 있다) ‘누구나 자기 역사를 쓸 수 있다’는 것이다. 저자는 사기꾼은 아니다. 일본에서 ‘지(知)의 거인’이라 불리는 언론인·작가다. “철저한 취재와 탁월한 분석으로 폭넓고 새로운 저널리즘을 확립했다”는 평가를 받았고 굵직굵직한 상도 여러 번 받았다.
 
저자는 책에서 학생들이 실제로 제출한 과제물을 풍성하게 인용한다. 이 책에 인용된 학생들이 쓴 글들에는 잔잔한 감동이 있다. 그들은 ‘누구나 자기 역사를 쓸 수 있다’는 저자의 말을 믿었던 것 같다. 신뢰는 기적까지는 아니더라도 놀라운 결과를 낳는다. 학생들은 대부분 단행본 한 권 분량의 자기 역사 초고를 제출하는 데 성공했다. 그들은 ‘자기 역사’ 쓰기의 마법에 빠져 일단 시작한 다음에는 멈출 수가 없었다. 그들은 또 까맣게 잊었던 ‘나의 역사’를 생생하게 기억해내는 ‘신비 체험’을 했다.
 
제대로 된 자서전은 자기 자랑보다는(물론 자신의 업적에 대한 자랑도 빠질 수 없다) 부끄러운 부분을 드러낸다. 저자의 학생들도 13차례의 수업과 과제물 제출을 통해 자신의 아픔과 부끄러움을 감추지 않았다.
 
저자는 ‘자기 역사’ 쓰기의 요령을 제시한다. 사소한 것 같지만 중요한 문제는 단락이다. 단락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글은 불가사의한 면이 있는데, 단락만 나뉘어 있어도 읽는 사람의 머리가 자동으로 환기된다. 갑자기 전혀 다른 새로운 글이 시작되더라도 그것을 이상하게 여기지 않고 받아들인다. 이는 아주 오래 전부터 있는 약속과도 같은 것이기 때문에 모든 사람이 이상하게 여기지 않는다. 단락만 나뉘어 있으면 글의 연결이 아무리 좋지 않다고 해도 모두 그대로 읽어 내려간다.”
 
단락에 대한 저자의 주장에 전혀 동의하지 않는 글쟁이들도 많을 것이다.(예컨대 단락의 논리적 연결이 가장 중요하다, 연결이 좋지 않으면 그 단락뿐만 아니라 글 전체가 실패한 것이다, 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저자의 주장에는 일리가 있다. 단락이 모인 게 글 전체다. 단락에서 막히지 않으면 아무리 긴 글이라도 쓸 수 있다.
 
저자는 ‘자기 역사 연표 만들기’만 만들면 ‘자기 역사’의 50%가 완성된 것이라고 주장한다. 연표는 영화·드라마의 콘티에 해당한다. 저자가 알려주는 요령에는 다음 같은 게 포함된다. “자기 역사를 써 내려 가는 데 있어 부모님 내지 가계와 관련한 이야기로 시작하는 것은 가장 일반적인 기술 방식이다.” “자기 역사란 한마디로 말하면 여러 가지 에피소드의 연속으로 자기 자신의 인생을 이야기로 표현하는 것이다.”
 
‘자기 역사’가 됐건 자서전이 됐건 왜 써야 할까. 저자에 따르면 ‘인생이란 도대체 무엇인가’라는 물음에 답하기 위해서다. 저자는 이렇게 말한다. “자기 자신의 인생이 무엇이었는지에 대해 알고 싶다면, 우선 자기 역사를 써보시오.”
 
이 책은 자서전을 쓸 생각이 전혀 없는 독자도 재미있게 읽으며 건질 게 많은 책이다. 일본은 가깝고도 먼 나라다. 전후 일본의 학생 운동권 이야기, 평범한 일본 생활인들의 직장 이야기, 사랑 때문에 울고 웃은 이야기가 살갑게 다가온다. 내 인생에서 만난 귀인 이야기, 과장 승진은 빨랐는데 부장 승진이 힘들었던 이야기, 선생님들과 갈등하느라 “나는 영어에 이어 수학까지 싫어하는 과목이 되었다”는 이야기, 떨어진 줄 알았는데 덜커덕 합격해 그 회사에서 평생을 보낸 이야기 같은 것들이다.
 
‘누구나 자기 역사를 쓸 수 있다’는 저자의 말은 틀린 말이 아니다. 일기를 쓴 사람이 특히 유리하다. 일기를 편집하면 된다. 페이스북의 기능만 잘 활용해도 자서전의 원천 재료가 확보된다. 페이스북에는 수년간 매일 조금씩 올린 글들을 한꺼번에 다운로드 받을 수 있는 기능이 있다.
 
김환영 지식전문기자 whanyu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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