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터키 외채 GDP의 절반 넘고 70%가 기업 빚 … 회사채발 글로벌 금융위기 오나

트럼프 보복관세로 리라화 추락  
지난해 하반기 미국이 본격적으로 돈줄을 죄기 시작했다. 경제 분석가들 사이에 흥미로운 예측 게임이 시작됐다. ‘차기 금융위기의 방아쇠는 무엇일까?’를 두고서다. 전문가들은 이런저런 요인을 제시했다. 무역전쟁, 상장지수펀드(ETF). 주택시장 거품 붕괴 등이다. 그런데 ‘원조 닥터 둠’ 마크 파버 글룸붐앤둠리포트 발행인과 투자은행 모건스탠리의 루치르 샤르마 신흥시장 대표 등은 회사채를 꼽았다. 그때는 ‘그럴 수도 있겠다’는 수준으로 그다지 주목하지 않았다. 회사채는 글로벌 돈의 세계에서 중요 변수는 아니었다. 신흥국 국채 등이 늘 말썽이었다.

 
예측 게임의 승패가 서서히 드러나고 있다. 최근 한 달 새 터키의 리라화가 가파르게 떨어졌다. 직접적인 원인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터키 대통령의 벼랑 끝 승부다. 터키에 억류 중인 미국 목사 석방 여부를 놓고서다. 트럼프는 보복관세로, 에르도안은 수입금지로 치고받았다. 트럼프 제재가 터키를 위기로 몰아넣은 듯하다.
 
 
터키 정부·기업 연내 300억 달러 갚아야
 
[그래픽=이정권 기자 gaga@joongang.co.kr]

[그래픽=이정권 기자 gaga@joongang.co.kr]

그러나 터키 리라화는 올해 초부터 미끄러지고 있었다. 올 들어 트럼프 공격 직전까지 미국 달러와 견줘 리라화 가치는 30% 정도 떨어졌다. 위기는 이미 시작되고 있었다. 미국 신용평가회사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는 지난해 10월 터키를 ‘새로운 취약국가 다섯(New Fragile Five)’ 가운데 첫째로 꼽았다. 터키가 양적 완화(QE) 시대 너무나 많은 외채를 끌어다 쓴 탓이다. S&P의 국가신용평가 책임자인 모리츠 크래머는 “터키 등은 미 연준(Fed)이 본격적으로 긴축에 나서면 고통을 겪을 수밖에 없다”고 경고했다. 당시 터키 전체 빚 가운데 외채(외화표시 채무)가 차지하는 비중은 국내총생산(GDP)의 50% 이상이었다.
 
위기가 표면화하면 약점이 한결 또렷해진다. 글로벌 금융회사를 대표하는 국제금융협회(IIF)에 따르면 터키의 외채 가운데 기업부채가 70%를 차지한다. 영국의 경제평론가인 마이클 로버츠는 최근 자신의 블로그에 올린 글에서 “동서양의 교차지역인 터키의 기업인들이 초저금리인 달러화와 유로화 자금을 탐닉했다”고 촌평했다. 금융 전문지인 유로머니는 최근 런던 은행가들의 말을 빌려 “트럼프 제재로 터키 기업은 수출에 타격을 받는 것과 동시에 리라화 가치마저 급락했다”며 “터키 기업이 외채 1달러를 갚기 위해 더 많은 리라를 써야 한다”고 지적했다. 채무 불이행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는 얘기다.
 
끼니 거르는 집에도 제사(목돈 나갈 일)는 어김없이 돌아온다고 했다. 터키 정부와 기업은 다음달에만 외채 70억 달러를 갚아야 한다. 10월엔 100억 달러가 넘는다. 올 연말까지 갚아야 할 외채는 모두 300억 달러에 육박한다. 이 가운데 80% 정도가 민간 부채다. 민간 기업에겐 국가처럼 강제로 벌어들일 수입(세금)이 없다. 제재와 경쟁이란 파도가 넘실대는 시장에서 돈을 벌여야 빚을 제때 갚을 수 있다.
 
트럼프의 제재 직전 터키 외환 보유액은 130억 달러 정도였다. 오랜 세월 이어진 무역적자 탓이다. 절대 액수만 적은 게 아니다. 전문가들이 주목하는 단기 외채 대비 외환 보유액 비율은 60% 정도다. 100%는 넘어야 그나마 한숨 돌릴 수 있다.
 
기업의 외채 급증은 역사적으로 드문 일이다. QE 시대 이전에 달러나 유로화 표시 채권은 애플이나 구글, 삼성 등 일부 글로벌 기업이나 발행했다. 그런데 파버는 지난해 10월 중앙SUNDAY와 통화에서 “그저 그런 기업들, 특히 신흥국 기업들도 달러나 유로화 표시 채권을 많이 발행했다”며 “이들의 회사채는 마침 국채 물량 감소와 수익률 하락에 시달리고 있는 선진국 시중은행들에 복음이나 마찬가지였다”고 설명했다.
 
실제 최근까지 글로벌 채권시장에선 선진국 국채는 물량이 달렸다. 재정 위기와 긴축 바람에 국채 발행량이 충분하지 않았다. Fed와 유럽중앙은행(ECB), 일본은행(BOJ) 등이 QE 정책을 쓰며 국채를 마구 사들이기도 했다. 시중은행들이 조금이라도 더 수익을 낼 수 있는 회사채, 특히 신흥국 회사채까지 손댈 수밖에 없었다. 이는 앨런 그린스펀 전 Fed 의장 시절, 선진국 시중과 투자 은행들이 저금리 자금을 미국 등의 주택시장에 쏟아부었던 것과 비슷한 행태다. 그때 화근은 미국의 서브프라임(비우량) 모기지 부실화였다.
 
 
미국 기업들도 내년 3조 달러 상환해야
 
스위스 바젤에 있는 국제결제은행(BIS)에 따르면 터키 회사채에 손을 많이 댄 쪽은 스페인과 프랑스, 이탈리아 시중은행들이다. 이들이 터키 회사채를 얼마나 보유하고 있는지는 아직 공시되지 않았다. 다만 이들이 터키 정부와 민간에 꿔준 돈을 보면 실상을 어느 정도 짐작할 수는 있다. 스페인은 800억 달러, 프랑스는 400억 달러, 이탈리아는 180억 달러 정도다. 사정이 이쯤되자 CBNC 등 서방 경제매체에 등장한 분석가들은 하나같이 “터키 사태가 유럽 시중은행에 전염될 가능성이 있다”고 경고한다. 다급해진 유럽 은행감독 당국자들은 터키에 특단의 조치를 취하라고 요구하고 나섰다. 가뜩이나 정치적 불안과 경기 둔화 등으로 힘겨운 이탈리아와 스페인에 불안이 전염되면 그리스 사태와 차원이 다른 위기가 유로존을 강타할 수 있어서다.
 
터키 위기, 특히 회사채 부실화는 자칫하면 글로벌 회사채 위기로 이어질 수 있다. 국제통화기금(IMF)에 따르면 주요 20개국(G20) 총부채 가운데 일반 기업(금융회사 제외)과 가계 부채는 지난해 말 약 85조 달러(약 9경6000조원)로 추정된다. 반면, 공공 채무는 50조 달러 선으로 집계됐다. QE시대 공공 채무의 증가율이 정체된 와중에 일반 기업과 가계 부채가 급증한 결과다.
 
씨티그룹에 따르면 회사채 상환이 내년부터 급증할 전망이다. 미국 기업들이 내년에 갚아야 할 빚만 3조 달러 안팎이다. 이 가운데 절반 정도를 신용등급 BBB급 회사들이 발행했다. BBB는 투자적격 기업 가운데 신용도가 가장 낮은 수준이다. 미국 기업이라고 신흥국 회사들과 크게 다를 바 없다. 씨티그룹은 최근 보고서에서 “신흥시장 불안 등으로 글로벌 채권시장에서 회사채를 사려는 투자자가 줄어들 가능성이 크다”고 경고했다. 내년에 빚을 갚기 위한 자금 조달 때문에 기업들의 아우성이 커질 가능성이 엿보인다.
 
 
“신흥시장 불안해 회사채 투자자 줄어들 듯”
 
글로벌 회사채 위기를 예방하기 위해서는 터키 위기의 전염을 차단해야 한다. IMF를 앞세운 미국의 역할이 주목받는 까닭이다. IMF 대변인 게리 라이스는 16일 온라인으로 발송한 성명서에서 “터키가 IMF 구제금융을 고려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단서는 없다”고 밝혔다. 에르도안 대통령은 IMF를 트럼프의 지렛대로 보고 있다. 대신 중동 카타르에서 오일머니 150억 달러를 지원받기로 했다. 이는 터키 사태의 또 다른 특징이다. 1980년 남미 외채 위기 이후 미국을 중심으로 확립된 구제금융 메커니즘이 작동하지 않고 있다.
 
구제금융 메커니즘은 남미 외채 위기 당시 미국의 재무장관인 니컬러스 브래디와 94년 멕시코 위기 때 재무장관인 로버트 루빈에 의해 확립됐다. 미국이 직접 또는 IMF를 통해 구제금융을 지원하고, 위기 당사국은 긴축재정과 규제완화, 구조조정 등을 한다. 하지만 트럼프가 공격 타깃으로 삼은 터키에 IMF나 유럽연합(EU)이 도움의 손길을 내미는 것을 탐탁지 않게 여길 가능성이 있다. 신속한 구제로 전염 차단을 기대하기 어려울 수 있다는 얘기다. 사공일 세계경제연구원(IGE) 이사장은 “에르도안이 IMF에 구제금융을 요청해도 트럼프가 동의할지 불확실하다”며 “다만, 에르도안이 요청하면 ‘일단 신흥국 위기를 막아야 한다’는 여론이 일어 트럼프를 압박할 수는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강남규 기자 dismal@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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