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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시평] 국민 외교, 그 성공의 조건들

박원호 서울대 정치외교학부 교수

박원호 서울대 정치외교학부 교수

지난 5월 새로이 개소한 국민외교센터는 정부서울청사 별관 외교부 1층 로비에 자리 잡게 되었다. 수많은 정부 부처 중 가장 ‘대민(對民) 접촉’이 없던 외교부가 “국민 외교”라는 새로운 개념을 가지고 의욕적으로 센터를 설립하게 된 것이다. 신청을 통해 이용할 수 있는 국민정책소통 공간이 마련된 이곳은 외교부에 의하면 “외교정책 결정 과정에서 국민 소통 및 국민 참여 활성화를 위한 국민과 정부 간 쌍방향 소통 공간”이자 “국민 외교의 요람”이 될 것이라고 한다.
 
많은 이에게 “국민 외교”라는 말은 형용모순으로 들릴 것이다. 국가와 국가 대표자가 밀실에서 만나 지루한 협상과 설득을 거쳐 무엇인가를 주고받는 냉정하고 계산적인 비스마르크적 세계. 이곳이야말로 시민들의 관심이나 참여가 금기시돼 왔던 곳이 아니었던가. 대외정책과 외교라는 전문적이고 복잡한 세계를 대중들이 이해할 수도, 그리고 굳이 이해할 필요도 없다는 것이 이를 바라보는 전통적인 시각이라 할 것이다. 이 전통적인 시각은 아마 다음의 세 축으로 이뤄져 있지 않은가 생각한다.
 
첫째, 전문성의 문제를 들 수 있을 것이다. 국가와 국가가 만나서 이뤄지는 관계, 이 관계의 역사와 프로토콜이 매우 중요시되는 전문적 영역은 전문가에게 맡겨야 한다고 생각할 수 있을 것이다. 특히나 외교정책이 시민 개개인의 생활에 미치는 직접적인 영향은 매우 제한적인 것으로 생각돼 왔기 때문에 국가가 양성한 전문가인 외교관들에게 모든 것을 맡기는 것이 아마도 당연하게 생각됐을 것이다.
 
둘째, 협상 주체로서 국가의 독점적 지위와 국익의 절대성을 들 수 있을 것이다. 무엇보다도 국가와 국가가 만나 ‘국익’을 맞겨루는 장에서 국내 여러 부분 이익들 간의 갈등이 국경을 넘는 것은 어떤 경우이건 바람직하지 않다는 것이다. 특히 전통적인 안보의 문제, 즉 국가의 생존이 걸려 있는 국익이라면 국내의 부분 이익들은 얼마든지 희생할 수 있다고 생각할 수 있다.
 
박원호칼럼

박원호칼럼

셋째, 외교 협상에서 비공개 혹은 보안의 불가피성이다. 장기적인 국가적 목표를 위해 협상 전략을 수립하고 이를 위한 상대국과의 다양하고 미묘한 밀고 당기기가 장기간에 걸쳐 숙성돼야 하는 외교 정책의 특성상 비공개가 원칙이며, 민감한 외교적 수사가 보편적 언어인 곳에서 대중 여론의 관심과 개입은 오히려 협상의 입지를 약화시킬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렇듯 “국민 외교”라는 말에서 오늘의 우리 정치와 정부가 당면한 딜레마, 그리고 이와 관련된 해결책과 그 뒤에 도사리고 있는 위험들을 한꺼번에 마주하게 된다. 무엇보다 국가가 신민(臣民)들을 위해 모든 것을 알아서 시혜적으로 결정하고 해결해 주던 정치를 극복하는 일은 시민적 참여와 민주제적 책임성을 접합시키는 일이며, 엘리트의 전유물로 생각되던 외교 분야 또한 이에 예외가 될 수는 없다. 아마 현 정부가 국민 외교를 내세우는 이유 또한 이곳에 있을 것이다. 나는 앞에서 열거한 전통적인 시각들을 현대적인 방식으로 얼마나 잘 대답하는가에 그 성패가 달려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가장 주요한 관건은 소통 채널이 얼마나 효과적으로 제도화돼 외교 엘리트들과 시민들이 대화할 수 있을 것인가 하는 문제다. 외교정책에 대한 단순한 홍보와 캠페인을 넘어 시민들의 신뢰와 지지를 구하는 과정이 정책의 성패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은 지난 정부가 2015년 일본과의 위안부 협상을 통해 얻은 교훈이기도 하다.
 
외교의 주체 또한 정부 외에도 다양한 국제기구들, 사회단체, 기업과 개인으로 다변화하고 있다는 사실을 이해해야 할 것이다. 정보와 문화가 빛의 속도로 이동하고 생산과 소비의 국경이 사라진 곳에서 국가 안보에 기반한 전통적인 정부 간 외교만큼이나, 혹은 그보다 훨씬 더 민간 외교와 공공 외교가 중요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국민 외교의 또 다른 목표는 우리 시민사회의 이러한 역량을 보살피는 일이 돼야 할 것이다.
 
대외 협상에서 공개가 불가능한 영역의 존재는 물론 인정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적어도 기본적인 원칙이나 장기적인 방향에 대해서는 정부가 국민들의 의견을 묻고 이해를 구하며 신뢰를 구축해 나가야 할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국민 외교가 수행해야 할 일은 이런 기준을 마련하는 작업이 아닌가 생각한다.
 
돌이켜 생각해 보면 여권 발급 업무가 구청으로 이관된 이래 외교부는 가장 멀리 있는 기관이었다. 그런 외교부가 우리 생활 속으로 들어올 수 있을 것인가.
 
박원호 서울대 정치외교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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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급변사태와 안정화 전략’을 주제로 북한학 박사를 받았다. 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ㆍ군사기획연구센터와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북한연구센터에서 군사ㆍ안보ㆍ북한을 연구했다. 2016년부터는 중앙일보에서 군사ㆍ안보 분야 취재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