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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 못 지켜주는 법 … 24년 전 첫 성희롱 판결보다 후퇴”

‘안희정 성폭력사건 공동대책위원회’ 회원들이 14일 서울서부지법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안희정 전 충남지사의 1심 무죄 판결을 규탄하고 있다. 이들은 ’검찰은 즉각 항소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연합뉴스]

‘안희정 성폭력사건 공동대책위원회’ 회원들이 14일 서울서부지법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안희정 전 충남지사의 1심 무죄 판결을 규탄하고 있다. 이들은 ’검찰은 즉각 항소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연합뉴스]

홍익대 몰래카메라(몰카) 편파 수사 논란으로 시작된 수사 당국에 대한 여성들의 불만이 사법 불신으로 확산하고 있다.
 
홍익대 누드크로키 수업에서 동료 남성모델의 나체를 찍어 유포한 혐의로 기소된 동료 여성모델에게 13일 1심에서 이례적으로 징역 10개월의 실형이 선고됐다. 이어 14일엔 비서에 대한 성폭력 혐의로 기소된 안희정 전 충남지사에겐 무죄가 선고됐기 때문이다.
 
여성계에선 이번 무죄 선고를 둘러싸고 비판적인 여론이 커지고 있다. 배은경 서울대 사회학과 교수는 “상사의 성추행과 성범죄에 대해 피해 여성 개인이 실직 상태를 감당하고 직장을 관두는 것 외에는 방법이 없고 법이 나를 지켜주지 못한다는 인식을 심어주는 판결”이라며 “재판부는 현행법의 한계를 지적하며 입법부에 공을 돌렸지만 법원 스스로 판례를 통해 변화를 만들려는 노력도 병행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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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수정 경기대 범죄심리학과 교수는 “성과 연관된 인식이 빠르게 변하고 있는데 현행법과 재판부의 인력 구조로는 이 변화를 따라잡지 못해 불신이 생기는 것”이라며 “법원 선고 자체가 이미 위력 행사를 제한적으로만 인정하는 현행법에 하자가 있음을 밝히고 있다”고 말했다. 이 교수는 이어 “안 전 지사의 무죄 판결을 계기로 사이버 성범죄 분야에서 시작된 분노가 사회 전반으로 번져 나갈 것”이라고 내다봤다.
 
여성학자 권김현영씨는 “이번 판결은 1994년 한국 최초의 성희롱 판결이 있었던 24년 전보다 훨씬 후퇴했다”며 “권력을 가진 사람은 굳이 폭력을 행사하지 않아도 헛기침만으로도, 눈빛만으로도 원하는 것을 얻을 수 있는데 재판부는 우리가 살고 있는 불평등한 사회구조와 세상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고 있다”고 비판했다.
 
윤김지영 건국대 몸문화연구소 교수는 “미투운동에 찬물을 끼얹는 판결을 내렸다”며 “김지은씨 외의 추가 피해자를 통해 안 전 지사의 성폭력이 상습적인 것이고 누적된 행동이었다는 것이 밝혀졌음에도 불구하고 남녀 간 사적인 스캔들 정도로 묻어버린 것”이라고 말했다.
 
이날 오전 안 전 지사의 무죄 선고 소식이 알려지면서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는 안 전 지사의 무죄 판결을 비판하고 재수사를 촉구하는 게시글 수십 건이 올라왔다. 한 청원인은 “안희정 1심 무죄 사법기관은 왜 존재하는 겁니까?”라는 제목의 글에서 재판부에 “물리적인 폭력과 노골적 협박이 없으면 무죄라는 1차원적인 판결을 내릴 거라면 자리에서 내려오라”며 “상사가 부하직원의 모든 것을 좌지우지하는데 그 특수 상황은 생각하지 못합니까”라고 비판했다.
 
다만 시민들은 성별에 따라 의견이 나뉘었다. 여성 직장인 강모(26)씨는 “하루 종일 분통이 터져서 일이 손에 잡히지 않았다”며 “이런 나라에서 내가 안전하게 살 수 있을까, 내가 여자로 이 나라에서 살아간다는 게 어떤 의미일까 생각하니 억장이 무너져 내렸다”고 말했다. 반면 남성 직장인 박모(38)씨는 “안 전 지사의 불륜 행각을 비난하는 것과 법적으로 유무죄를 따지는 것은 별개의 문제”라며 “나는 안 전 지사가 무죄를 받는 게 맞다고 생각하지만 그렇다고 그가 유력 정치인으로 다시 세상에 나와도 된다고 생각하진 않는다”고 말했다.
 
이번 판결이 오히려 여성들이 결집하는 계기가 될 것이란 관측도 있었다. 김영순 한국여성단체연합 공동대표는 “강간죄 관련 법을 개정하도록 유엔 여성차별철폐위원회가 한국 정부에 요구하기도 했다”며 “이번 판결로 여성의 분노가 하늘로 치솟아서 불 꺼진 미투를 다시 살릴 수 있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예상했다.  
 
실제로 홍대 몰카 사건 당시 범인으로 지목된 여성모델이 신속하게 검거되고 포토라인에 선 것 때문에 경찰의 편파 수사 논란이 일었고 혜화역에서의 대규모 시위로 이어졌다.
 
김다영·홍지유 기자 kim.dayoung1@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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