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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일본도 미국도 한국인 원폭 피해자에 사죄·배상해야"

경남 합천에서 열린 위령제(6일) 참석을 위해 방한한 '한국 원폭 피해자를 돕는 시민 모임' 이치바 준코 회장. 장세정 기자

경남 합천에서 열린 위령제(6일) 참석을 위해 방한한 '한국 원폭 피해자를 돕는 시민 모임' 이치바 준코 회장. 장세정 기자

20대 여대생 시절부터 39년간 한국인 원폭 피해자들을 도와온 일본인 여성이 있다. 최근 방한한 이치바 준코(市場淳子·62) ‘한국 원폭 피해자를 돕는 시민 모임(이하 시민 모임)' 회장이다. 2000년부터 18년째 회장으로 활동 중인 그는 2015년 9월 일본 최고재판소가 일본 국외 피폭자에게 일본 내 피폭자와 동등하게 의료비 전액을 지급하라는 판결을 끌어낸 숨은 공신이다. 한국인 피폭자들의 삶을 다룬 책 '한국의 히로시마'도 펴냈다.

한국 원폭 피해자 돕는 '일본 시민모임' 회장
이치바 준코 여사, 방한 인터뷰서 쓴소리
여대생 때부터 39년간 한인 피폭자 돕는 활동
"한국 정부, 피폭자에 너무 냉정하게 대해
정부가 위령제 주관하고 추모공간 만들어야"

 
1945년 8월 6일과 9일 미군은 각각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원폭을 투하했고 이 와중에 31만4118명이 희생됐다. 당시 한국인은 약 10만명이 피폭된 것으로 일본 경시청이 추정했다. 5만명(히로시마 3만5000명, 나가사키 1만5000명)은 현장에서 숨졌고 4만3000명은 귀국(남북한 포함) 했다고 한다. 이들 중 현재 한국에는 약 2300명이 생존 중이다. 1967년 한국원폭피해자협회(이규열 회장)를 결성한 뒤 51년째 일본의 사죄와 배상을 요구하고 있지만, 일본은 응하지 않고 있다.
 
이에 자극받은 일본 시민 등 양심 세력이 한국인 피해자들을 돕기 위해 71년 '시민 모임'을 만들었다. 오사카·히로시마·나가사키 등 전국에 600여명의 회원이 회비를 내며 활동에 참여한다. 동북아역사재단에서 열린 국제 학술행사에 참석한 그를 지난 8일 만났다.
 
그는 "일본 NHK 방송은 지난 6일 히로시마에 원폭이 투하된 시간(오전 8시 15분)에 맞춰 경남 합천에서 열린 위령제를 처음 생중계했다"며 "한국인 원폭 피해자들의 상처가 아직도 온전히 치유되지 않았는데 한국 국내의 관심이 너무 줄어 안타깝다"고 말했다.   
'한국 원폭 피해자를 돕는 시민 모임' 이치바 준코 회장. 장세정 기자

'한국 원폭 피해자를 돕는 시민 모임' 이치바 준코 회장. 장세정 기자

고향이 원폭이 투하된 히로시마인데 가족 중에도 당시 피폭자가 있었나.
"원폭이 투하된 히로시마 시가 아니라 히로시마 현이 고향이다. 히로시마 시 근교의 시골이어서 부모님이 직접 피폭을 당하지는 않았다."
 
일본 시민들이 장기간 한국인 피폭자를 돕고 있는 이유는.
"(일본인뿐 아니라) 외국인도 원폭 피해를 보았지만, 가해자는 일본인이다. 가해자의 나라에 사는 시민으로서 당연히 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한다. 일본 피폭자 운동이 일본인의 피해만 강조하고 일본의 가해 책임을 묻지 않는 것이 괴상하다는 인식에서 우리 모임이 출발했다."
 
대학생 때부터 한국인 원폭 피해자들에게 특별히 관심을 갖게 된 계기는.
“60~70년대 일본인들은 한국인 피폭자 문제에 관심이 없었다. 나도 75년 대학에 입학한 뒤 일본이 조선을 식민지로 지배했다는 사실을 알았다. 원폭 피폭자 중에 한국인(남북한 포함)이 약 10%나 된다는 사실도 처음 알았다. 나는 원래 약학도였으나 한국인 피폭자들을 제대로 알기 위해 한국어를 따로 전공했다."
 
구체적으로 어떤 경로로 통해 알게 됐나.
"부산에 살던 한국인 피폭자 손진두(3년 전 사망)씨가 피폭자를 전문적으로 치료하는 일본인 의사를 만나겠다며 밀항하다 체포된 사건이 있었다. 75년 손 씨는 일본 정부를 상대로 피폭자 수첩을 자신에게도 교부해 달라며 교도소에서 법정 투쟁을 진행했다. 당시 일본 사회는 한국인에 대한 차별 의식이 강했다. 하지만 일본 시민들이 손 씨에게도 원호 혜택을 제공하라고 소송을 제기했고 결국 78년 일본 최고재판소에서 승소했다. 하지만 혜택은 손 씨에게만 주어졌다."
'한국 원폭 피해자를 돕는 시민 모임' 이치바 준코 회장. 장세정 기자

'한국 원폭 피해자를 돕는 시민 모임' 이치바 준코 회장. 장세정 기자

시민의 모임은 그 후 어떤 지원 운동을 전개했나.
"78년 최고재판소 판결 이후 한국에 사는 약 1만명의 피폭자 모두에게 원호 혜택을 적용하라는 운동을 시작했다. 일본 정부가 거부했다. 결국 90년 노태우 당시 대통령과 가이후 도시키(海部俊樹) 일본 총리가 한·일 정상회담에서 일본 정부가 한국인 피폭자에게 40억 엔, 사할린 거주 한국인에게 60억 엔을 지원하기로 했다. 이로써 한국인 피폭자들이 처음 의료비를 지원받았다. 그런데 7~8년 있으면 40억 엔이 고갈될 예정이다. 그 전에 추가 대책이 필요한 실정이다."
 
일본은 한국인 원폭 피해자에게 사죄와 배상을 하지 않고 있는데.
"일본의 식민 지배 때문에 한국의 농촌이 당시 더 가난해져 일본에 일자리를 구하러 간 한국인이 히로시마에 많았다. 히로시마 미쓰비시 중공업에 끌려간 한국인 징용자만 7000여명이었다. 그들은 피폭으로 해방 이후에도 큰 고통을 받았다. 일본 정부는 빨리 사죄하고 배상해야 한다."
 
한국 정부의 태도를 어떻게 보나.
"피폭자 문제는 일본·미국·한국 세 나라에서 모두 외면받고 있다.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2016년 히로시마를 사상 처음 방문했을 때 한국인 피폭자도 언급했다. 미국도 사죄와 배상을 검토해야 한다. 한국 정부의 경우 피폭자 문제를 너무 냉정하게 대하는 것 같다. 예컨대 박근혜 정부 때 위안부 문제와 관련해 많은 교섭을 했지만, 피폭자 문제에 대해서는 제대로 나서지 않았다. 4·3과 5·18은 정부가 추모식을 주관하는데 합천 위령제에 정부 관계자는 참석하지 않고 정부 차원의 기념사업도 아직 없다. 앞으로 정부가 위령제를 주관하고 추모공간을 만들기를 바란다. "  
 
장세정 논설위원 zha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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