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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명복 칼럼] 대한민국은 ‘압수수색 공화국’인가

배명복 칼럼니스트·대기자

배명복 칼럼니스트·대기자

집이나 사무실에 갑자기 검사와 수사관들이 들이닥쳐 휴대전화와 컴퓨터를 압수하고, 책상 서랍과 캐비닛에 금고까지 마구 뒤져 상자에 쓸어 담는다. 업무와 관련한 기밀은 말할 것도 없고, 남 앞에 정말 드러내고 싶지 않은 프라이버시까지 발가벗겨진다. 차라리 감옥에 가면 갔지 두 번 다시 압수수색은 당하고 싶지 않다는 유경험자도 있다. 죄 안 짓고 살면 그만이다. 하지만 세상일이 그리 간단치 않다.
 

올 상반기 영장 발부
처음으로 10만 건 넘어
호신용 녹취 성행하고
복지부동하는 공직 사회
적폐청산 필요하지만
핵심만 정조준해 짧게 끝내야

문재인 정부 들어 압수수색이 크게 늘었다. ‘법원 통계월보’에 따르면 올 상반기 중 법원이 발부한 압수수색영장은 10만4981건이다. 반기 기준으로 10만 건이 넘은 건 처음이다. 휴일을 빼면 매일 867건의 압수수색영장이 떨어졌다는 얘기다. 어느 정부든 집권 초에는 군기를 잡는다. 박근혜 정부 집권 첫해였던 2013년에도 압수수색영장 발부 건수가 대폭 늘었다. 그해 상반기에 8만115건이 발부됐다. 이 정부 들어 압수수색이 급증한 것은 아무래도 전방위적 적폐청산 수사의 영향이 클 것이다.
 
검찰이 최근 외교부를 압수수색했다. 일제 시기 징용 피해자들의 소송을 놓고 대법원이 외교부와 거래를 시도했다는 의혹 때문이다. 일제의 강제동원 소송과 관련해 주무부처 의견을 낸 담당 부서들이 표적이 됐다. 압수수색 당일 강경화 장관은 해외 출장 중이었다. 외교부 직원들 사이에서 ‘이러면 우리 보고 어떻게 외교활동을 하란 말이냐’는 반발이 나올 법한 상황이었지만 울분과 한숨을 삼키며 다들 지켜보기만 했다.
 
검찰이 가져간 문서에는 기밀로 분류된 외교문서가 당연히 포함돼 있을 것이다. 형사소송법 111조 1항에 따르면 공무상 기밀에 속하는 문서는 기관장의 승낙 없이는 압수할 수 없다. 강 장관이 제대로 된 외교장관이라면 “목록을 제시하면 제출하겠으니 내가 들어갈 때까지는 일단 압수수색을 늦춰 달라”고 요구하는 최소한의 결기는 보였어야 하는 것 아니냐는 뒷말도 있다. 강 장관은 침묵했고, 외교부는 “검찰의 수색 및 향후 조사 과정에 성실하게 협조하겠다”는 공식 입장을 내놓았다.
 
배명복칼럼

배명복칼럼

‘위에 정책이 있으면 아래엔 대책이 있다’는 말을 증명하듯 요즘 공직 사회에선 녹취가 유행이라고 한다. 유사시 자신을 보호할 ‘호신용 무기’로 녹취록만 한 게 없다고 보고, 상사나 관계 부처 공무원과의 미묘한 대화는 은밀히 녹음부터 한다는 것이다. 졸지에 적폐 세력으로 몰려 억울하게 당하는 사태를 막으려면 그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당연히 정책에 대한 솔직한 대화는 점점 어려워지고, 시키는 일만 수동적으로 하는 복지부동(伏地不動) 분위기가 만연하고 있다는 게 최근 퇴직한 고위 공무원들 얘기다.
 
촛불혁명으로 출범한 정권인 만큼 새로운 시대정신의 구현을 바라는 국민의 여망에 부응할 필요가 있다는 걸 모르는 사람은 없다. 이를 위해 과거의 과오를 바로잡는 작업은 물론 필요하다. 하지만 단죄(斷罪)는 핵심 책임자만 정조준해 짧고 확실하게 끝내는 게 정도다. 촘촘한 그물로 마구 잡아 올리면 어떤 공직자도 소신을 갖고 일하기 힘들다. 녹취를 안 해도 안심할 수 있는 분위기로 하루빨리 관가의 공기를 바꿔야 한다. 이 상태가 지속되면 아무리 움켜쥐어도 손에서 빠져나가는 모래알처럼 허망한 사태가 올 수 있다. 벌써 그런 조짐이 나타나고 있다.
 
부처는 정부를 지탱하는 하체다. 하체가 부실하면 쓰러지게 돼 있다. 말로만 책임 장관이지 다들 청와대만 바라보고 있다. 문재인 정부는 하체는 약한데 상체만 큰 가분수 꼴이다. 부처에 힘을 실어줘야 한다. 장관이 못 미더우면 바꿔야 한다.
 
문재인 정부의 청와대 참모진은 ‘60년대에 태어나 80년대에 대학을 다닌 운동권 출신 50대(586)’가 주축이다. 임종석 비서실장을 포함해 핵심 참모 7명이 각 대학 80년대 총학생회장 출신이다. 임 실장 휘하의 비서관 34명 중 19명이 운동권과 시민단체 출신이다. 그들이 국가와 민족을 위해 청춘을 불사르던 시절의 시대정신과 지금의 시대정신은 다르다. 견제와 균형이 사라진 조직은 집단사고의 함정에 빠질 위험이  크다.
 
많은 사람이 그렇듯이 나도 문 대통령의 진정성을 믿는다. 약자와 정의를 생각하고, 공정한 사회를 만들고자 하는 선의도 높이 평가한다. 권위를 내려놓은 겸손함도 훌륭한 덕목이다. 하지만 그걸로 성공이 보장되는 건 아니다. 코드가 다르더라도 인재를 두루 등용해 균형 있고 깊이 있는 토론이 가능하게 해야 한다. 눈이 부을 정도로 밤늦게까지 보고서에 파묻히는 것도 좋지 않다. 그보다는 각계의 다양한 인사들과 단출하게 만나 진짜 민심을 들어야 한다. 그러면 ‘압수수색 공화국’이 왜 위험한지 금방 알게 될 것이다.
 
배명복 칼럼니스트·대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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