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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조는 원각사 짓고, 연산군은 승려 내쫓고 기방 만들어 … 고종 땐 군악대 ‘열린 음악회’

탑골공원 팔각정 앞의 대한제국 양악대. 탑골공원에서 매주 공연을 했고, 국가의례와 외교 행사에서도 연주했다. [사진 Hans-Alexander Kneider]

탑골공원 팔각정 앞의 대한제국 양악대. 탑골공원에서 매주 공연을 했고, 국가의례와 외교 행사에서도 연주했다. [사진 Hans-Alexander Kneider]

사찰에서 기방을 거쳐 서양음악 공연장으로….
 

탑골공원 우여곡절 500년
10층 석탑에서 탑골 이름 유래
내달 7일 고종 당시 음악회 재연

탑골공원은 조선 500년 동안 기구한 역사적 부침을 겪은 땅이다.
 
본래는 유서 깊은 사찰 터였다. 불심이 깊었던 세조는 1465년 고려시대부터 이어져 온 흥복사(興福寺)라는 고찰(古刹)을 증축해 원각사(圓覺寺)라는 새 절을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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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때 지어진 원각사지 10층 석탑은 당시 희귀했던 흰 대리석으로 올렸다. 도성 안에서 가장 높은 마천루(摩天樓)로 인근 어디서나 볼 수 있는 한양의 명물로 ‘백탑(白塔)’이란 별칭으로 불렸다. 탑골이란 명칭도 여기서 유래됐다. 원각사는 왕이 직접 세운 만큼 왕실의 각별한 보호를 받았다.
 
호시절이 오래가지는 않았다. 50년이 지난 뒤 연산군은 1504년 기생과 악사를 관리하는 장악원(掌樂院)을 이곳으로 옮긴 뒤 ‘연방원(聯芳院)’이라는 이름의 기생방으로 만들고 승려들을 내쫓았다.
 
“흥청(興淸) 200명, 운평(運平) 1000명, 광희 1000명을 여기에 나오게 하여 총률 40명으로 하여금 날마다 가르치게 하라” (연산군 11년 2월 21일).
 
흥청은 여러 고을에서 선발한 기녀를 지칭하는 명칭이었다. 돈이나 물을 함부로 쓴다는 의미의 ‘흥청망청(興淸亡淸)’이라는 단어가 만들어진 이유다.
 
반정이 일어나 연산군을 폐하고 중종이 새 왕이 됐지만 사정은 나아지지 않았다. 조광조 등 사림들을 등용했던 중종은 억불숭유(抑佛崇儒) 정책을 썼다. 그나마 남아 있던 사찰을 헐고 다른 관청의 건축자재로 쓰게 했다. 그런 와중에도 백탑만은 손대지 못했다.

탑골공원의 120년 변천사를 시각화 한 이미지. 클릭하시면 더 자세한 정보를 볼 수 있습니다. 클릭이 안 될 경우 주소창에 (https://news.joins.com/DigitalSpecial/311)를 입력해주세요.

 
한동안 방치됐던 이곳이 다시 주목받은 것은 18세기다. 서울 어디서나 보이는 높은 백탑은 당대 지식인들의 만남의 장소로 애용됐다. 특히 상공업 진흥을 주장한 북학파 학자들이 이곳에서 즐겨 모였다. 박지원, 이덕무 등 북학파의 주요 인물들이 백탑 주변에 거주했기 때문이다. 이들은 백탑 주변에 모여 시를 쓰거나 화초를 연구하고 소장품 경매를 여는 등 지적 유희를 즐겼다. 하지만 정조를 지나 순조 이후 세도정치의 난립으로 실학 등 문예부흥 움직임이 급격히 퇴조하면서 백탑 주변도 다시 빛을 잃었다.
 
구한말 이곳을 방문한 영국인 이사벨라 버드 비숍은 저서 『조선과 그 이웃나라들』에서 “700년 전 세워진 대리석 파고다(탑)가 있는데 이것은 서울에서 가장 더럽고 좁은 지역의 집 뒤뜰에 몰래 감추어져 있었다. 내가 방문했을 때 아이들이 정교한 조각을 부수어 조각을 팔고 있었다”고 적었다.
 
그런 탑골을 다시 주목한 것은 고종이었다. 1897년 대한제국을 선포한 고종은 이곳에 근대적 제국의 위상에 걸맞은 공원을 꾸미고자 했다. 영국인 존 맥레비 브라운이 참여해 현재 탑골공원의 골격이 조성됐다. 지금도 남아 있는 팔각정은 이때 만들어졌다.
 
이곳에선 우리나라 최초의 서양음악 공연이 열렸다. 민경찬 한국예술종합학교 음악학과 교수는 “1901년 고종황제가 창설한 군악대는 이듬해 탑골공원 팔각정 옆의 무대에서 공연을 열었고, 이는 대중을 상대로 한 첫 양악 음악회로 기록됐다”고 말했다.
 
고종황제는 러시아의 황제 즉위식에서 힌트를 얻어 서울을 지키는 군대인 시위대(侍衛隊) 안에 양악 군악대를 만들었다. 클라리넷, 오보에 등 목관악기와 트럼펫, 호른 등 금관악기, 타악기를 조합한 30인조 규모의 양악대였다. 대한제국의 양악대는 매주 탑골공원에서 음악회를 열었다. 민 교수는 “처음에는 국가(國歌)를 만들고 연주해야겠다는 고종의 신념으로 창설됐는데 이들의 연주는 장안의 화제라 할 수 있을 정도로 관심을 받았다”고 했다. 서울에 거주하는 외교관, 특파원, 상인 등 외국인도 주요 청중이었다. 나중에는 주 2회로 음악회 횟수가 늘어났다.
 
이런 사연을 품은 탑골공원 연주가 재연된다. 9월 7일 뉴코리아필하모닉 오케스트라가 주인공이다. 대한제국 애국가 연주를 시작으로 1900년대 초에 자주 연주했던 멘델스존, 요한 슈트라우스 등도 연주할 예정이다. 국내 최초의 양악 공연 기념 연주다.
 
이 공연을 위해 마련된 자문위원단 단장인 이태진 서울대 국사학과 명예교수는 “고종황제가 탑골공원 내 원각사 10층탑 옆에 설치한 공연 무대는 초현대적인 아치형으로 소리가 잘 울렸다. 시민들이 여러 나라의 국가와 민요를 귀로 들으며 세계를 알도록 했다”며 “당시 조선의 자주정신과 근대화 열망을 음악을 통해 되살리자는 취지”라고 말했다. 
 
김호정·유성운 기자 pirat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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