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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아이가 뒤집은 가설…"이스터섬 멸망, 내전 때문 아니다"

 
남미 칠레에서 서쪽으로 3500㎞ 떨어진 외딴 섬. 이스터 섬에는 '모아이(Moai)'라 불리는 인간 형상의 석상 887개가 자리 잡고 있다. 석상의 평균 크기는 4m로, 사람 키를 훌쩍 뛰어넘는다. 이런 이유로 이스터 섬은 세계 7대 불가사의 중 하나로 꼽힌다. 1722년 네덜란드 탐험가 야코프 로헤벤 선장이 처음으로 이스터 섬을 발견한 이후 모아이를 둘러싼 미스터리는 여전히 풀리지 않고 있다. 라파 누이라 불렸던 폴리네시아인들이 뗏목을 타고 섬에 도착해 문명을 만든 것이라고 추정하고 있을 뿐이다.
 
제주도 크기의 10분의 1 정도에 불과한 섬에 900개 가까운 석상만이 남아있는 이유를 현대 고고학도 충분히 설명하지 못하고 있다. 그동안 다양한 가설이 제기됐는데 유력한 설명은 환경파괴와 종족 간 갈등이다. 이런 주장의 선봉에 선 학자가 재러드 다이아몬드 미국 UCLA 교수다. 그는 자신의 책 『문명의 붕괴』에서 이렇게 주장한다.
 
제레드 다이오몬드의 문명의 붕괴 표지. 그는 "자원 부족으로 인한 내전을 통해 이스터 섬 문명이 멸망했다"고 주장한다.

제레드 다이오몬드의 문명의 붕괴 표지. 그는 "자원 부족으로 인한 내전을 통해 이스터 섬 문명이 멸망했다"고 주장한다.

 
“이스터 섬은 삼림 파괴의 결과를 보여주는 태평양 지역에서 아니 세계 전체에서 가장 극단적인 예이다. 삼림 전체가 사라졌고 모든 수종이 멸종됐다. 그 결과는 곧바로 섬사람들에게 미쳤다. 천연자원이 턱없이 부족했고 살코기를 제공하던 야생 동물까지 크게 줄어 들으며 식량 생산까지 곤두박질쳤다. (중략) 큰 나무와 밧줄이 사라지면서 석상을 운반해서 세울 수도 없었다. 바다로 나갈 카누조차 만들 수 없었다.”
 
삼림 파괴로 인한 자원 부족이 종족 간 갈등을 불러와 마지막에는 식인(食人) 전쟁까지 벌어지면서 문명이 사라졌다는 설명이다. 하지만 이런 학설은 점차 설득력을 잃고 있다. 이스터 섬에 대한 연구가 진전됨에 따라 종족 간 갈등에 반하는 과학적 증거가 제시되고 있다.
 
이스터 섬의 모아이. 모아이 머리 위에 있는 게 돌모자인 푸카오다. [사진 뉴욕주립데]

이스터 섬의 모아이. 모아이 머리 위에 있는 게 돌모자인 푸카오다. [사진 뉴욕주립데]

 
영국 퀸즐랜드 대학 등이 참여한 국제 연구팀은 “이스터 섬 원주민들이 내전이 아닌 협업을 통해 모아이를 제작했다”는 연구 결과를 발표했다. 이번 연구 결과는 13일(현지시각) 태평양 고고학 저널(Journal of Pacific Archaeology)에 실렸다. 연구팀은 이스터 섬 주민들이 모아이를 만들 때 사용한 도구에 주목했다. 라파누이는 토키(Toki)라 불리는 작업 도구 17가지를 활용해 모아이를 세웠다.
 
원주민, 모아이 석상 공동으로 작업 
 
달 심프슨 박사는 “화학적 기법을 통해 토기의 원재료를 확인했고 대부분이 동일한 채석장에서 만들어진 것을 확인했다”며 “이는 이스터 섬 원주민은 라파누이가 협업을 통해 모아이를 만든 강력한 증거”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라파누이는 축구장 2배 크기의 채석장을 운영했는데 도구를 생산했다”며 “모아이를 만드는 데 있어 원주민 간 정보 공유가 있었다는 사실을 뒷받침한다”고 덧붙였다.
 
이스터 섬 곳곳에서 위치한 푸카오의 모습. [사진 뉴욕주립대]

이스터 섬 곳곳에서 위치한 푸카오의 모습. [사진 뉴욕주립대]

 
이는 부족 간 충돌로 인해 이스터 섬 문명이 붕괴했다는 기존 학설을 뒤집은 것이다. 달 심프슨 박사는 “족장과 성직자와 모아이 제작자 등 사회적으로 세분된 문명이 이스터 섬에 존재했을 것”이라며 “이런 사회적 구조가 없었다면 수 백개 넘는 모아이를 만들 수 있는 동력이 없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스터 섬 원주민들이 모아이 위로 푸카오를 운반한 것을 설명하는 개념도. 10~15명 정도가 푸카오를 운반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자료 뉴욕주립대]

이스터 섬 원주민들이 모아이 위로 푸카오를 운반한 것을 설명하는 개념도. 10~15명 정도가 푸카오를 운반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자료 뉴욕주립대]

 
부족 간 내전설을 뒤집는 연구 결과는 또 있다. 미국 뉴욕주립대 빙햄턴 캠퍼스 칼 리퍼 박사 연구팀은 지난 6월 이런 결과를 담은 논문을 국제 학술지 고고과학저널(Journal of Archaeological Science)에 게재했다. 연구팀은 모아이가 쓰고 있는 푸카오(Pukao)란 돌 모자를 운반하는 방법을 연구했다. 푸카오로 불리는 돌 모자는 붉은 화산암을 깎아 만든 것으로 무게가 12t에 이르는 것도 있다.
 
이스터섬

이스터섬

 
문명의 붕괴 아닌 장기 생존에 주목해야
 
연구팀은 푸카오를 쓴 모아이의 사진을 촬영해 주변 지형 등을 반영해 3D 지도를 만들었다. 그런 다음 경사로와 밧줄을 활용해 이스터 섬 원주민들이 푸카오를 운반했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칼 리퍼 교수는 “밧줄과 경사로를 이용한 덕분에 10~15명 만으로도 거대한 돌을 굴려 운반할 수 있었다”며 “컴퓨터 시뮬레이션을 통해 이와 같은 사실을 증명했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그동안 이스터 섬 원주민들이 모아이 제작에 나무 등 과도한 자원을 투입해 문명이 붕괴했다는 주장이 있었으나 이는 잘못된 가설일 가능성이 높다”며 “부족 간 내전이나 자원 경쟁으로 섬이 붕괴했다는 시각에서 벗어나 500년 이상 문명이 유지된 사실에 주목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스터 섬은 문명의 붕괴가 아닌 장기 생존에 주목해야 한다는 얘기다.
 
강기헌 기자 emck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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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급변사태와 안정화 전략’을 주제로 북한학 박사를 받았다. 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ㆍ군사기획연구센터와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북한연구센터에서 군사ㆍ안보ㆍ북한을 연구했다. 2016년부터는 중앙일보에서 군사ㆍ안보 분야 취재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