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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무상 숫자나 성장 데이터보다 중요한 것은?" 실리콘밸리 VC 임정민, 투자 유치 노하우를 말하다

설령 당신이 투자자들에게 회사소개서와 사업계획서를 첨부한 메일을 수십통 보냈지만 답장 한 통 받지 못한 창업가라 할지라도 좌절할 필요는 없다. 지난해 벤처기업정밀실태조사에 참여한 3만3000여개의 기업 중 투자 유치 경험이 있는 곳은 2.2%에 불과했다. 그렇다면 대체 어떤 창업가가 투자를 유치할까? 투자를 유치하기 위해선 뭘, 어떻게 해야 할까?
 
창업가 출신의 벤처캐피털리스트 임정민 500스타트업코리아 공동대표파트너가 이 질문에 답하는 콘텐츠를 내놨다. 8월부터 지식콘텐트 플랫폼 폴인에서 연재 중인 ‘창업가 연습 : 실리콘밸리 VC의 투자 유치 노하우’ 다.
 
임 대표는 2015년 구글이 아시아에 처음으로 문을 연 '구글캠퍼스 서울'의 초대 총괄로 임명되며 '한국 스타트업의 대표 조력자'로 자리매김했다. 구글이 창업가를 위해 조성한 지원 공간인 구글캠퍼스는 초대 총괄 자리를 깐깐하게 물색한 걸로 유명했다. 한 스타트업 관계자는 "구글이 창업 경력과 투자 경력이 있는 사람, 한국과 미국을 모두 경험한 사람을 찾는다기에 그런 사람이 있을까 했는데 임정민 대표가 선임됐다"며 "스타트업계도 모두 임 대표라면 적임이라고 인정했다"고 말했다. 실제로 임 대표는 미국 스탠포드 대학 석사 과정을 마친 뒤 미국 기술 스타트업 비트폰의 초기 멤버로 참여했고 이후 소프트뱅크벤처스 투자심사역을 거쳐 한국에서 게임회사 로켓오즈를 창업한 바 있다.
 
구글캠퍼스 서울 총괄로 지내며 창업가들을 만나온 그는 지난해 창업가에게 필요한 '기업가정신'을 담은 책 <창업가의 일>을 펴냈다. 이 책은 출간 1년이 지난 지금도 꾸준히 판매되며 "창업을 준비하는 이들은 반드시 읽어야 할 책"으로 평가받고 있다. 그가 <창업가의 일> 이후 두 번째 콘텐츠 주제로 '투자 유치'를 잡은 건 그만큼 많은 창업가들에게 질문을 받았기 때문이다. 다음은 일문일답. 
임정민 대표(오른쪽)가 창업가에게 조언을 건네고 있다. 사진 임정민

임정민 대표(오른쪽)가 창업가에게 조언을 건네고 있다. 사진 임정민

 
창업가들이 투자 유치와 관련해서 가장 많이 묻는 건 어떤 건가요?
사업계획서 쓰는 법이나 피칭하는 노하우를 많이 물어요. 사업계획서를 잘 쓰고, 피칭을 잘해야 투자받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 거죠. 하지만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사업계획서와 피칭을 통해서 그 회사를 보여주는 것 아닌가요?
투자자가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스토리에요. 왜 투자를 유치하는가에 대한 명확한 명분과 논리가 필요합니다. 그런데 많은 창업가가 제품을 소개하는 데 치중합니다. 데이트할 때 상대방에게 매력을 발산해야 하는데, 스펙 같은 걸 줄줄이 늘어놓는 느낌이라고 해야 할까요? 투자를 매력적으로 만드는 스토리가 중요합니다.
 
스토리라는 게 뭔가요?
왜 창업했는지, 이루고 싶은 것 혹은 풀고 싶은 문제는 무엇인지, 그 문제를 푸는 데 왜 이 팀이 최적의 팀인지 같은 이야기입니다.
 
일반인도 아니고 전문가가 투자하는 데 데이터나 실적이 아니라 ‘스토리’를 중요하게 본다는 게 정말일까?
 
“벤처 투자는 몇 개월, 1년짜리 단기 투자가 아닙니다. 최소 4~5년, 길게는 10년씩 가는 장기 투자죠. 투자 기간 창업팀은 사업 아이템을 바꾸는 경우도 많습니다. 부침이 심한 건 말할 것도 없고요. 그런 어려움을 극복해나가는 원동력이 바로 그 스토리거든요. ‘어떤 팀이, 어떤 미션으로, 왜 이 시장의 이 문제를 풀려고 하는가’를 설득하는 게 중요합니다.”
 
주식 시장에서도 재무제표 상의 자산 등에 따라 주가가 결정되고 그래서 등락이 적은 종목이 있는가 하면 비전과 미래 가치로 주가가 매겨지는, 그래서 등락 폭이 큰 기업도 있다. 후자는 ‘스토리주(主)’로 불린다. 까다로운 기준을 통과해 상장했을 정도로 업력과 규모를 자랑하는 회사 중에도 ‘스토리’로 가격이 결정되는 곳이 있는데, 스타트업은 오죽할까. 임 대표는 “초기 스타트업일수록 숫자, 특히 재무제표 상의 숫자는 큰 의미가 없다”고 말했다.  
 
VC로 오랜 기간 일하며 창업가들을 만나오셨는데요, 초기 창업가가 가장 흔하게 하는 실수가 있다면 무엇인가요?
많은 창업가가 제품과 아이디어 지나치게 집중하는 것 같아요. 이 경우 제품과 아이디어가 잘 안 풀리면 팀 자체가 와해합니다. 그리고 실제로 성공하고 나서 보면 제품과 아이디어의 비중이 작다는 걸 알게 됩니다. 그만큼 많이 바뀌거든요. 전혀 다른 아이템으로 피봇한 이후 성공한 곳도 많죠.
 
사업 아이템을 바꾼 스타트업이 그렇게 많은가요?
업무용 메신저인 슬랙의 초기 아이템은 온라인 게임이었습니다. 출시한 온라인 게임은 잘 안됐지만, 팀에서 사용하려고 만든 내부용 소프트웨어를 가지고 큰 성공을 일궜죠. 인스타그램 역시 초기에는 사용자가 자신의 위치를 체크하고 사진을 공유하면 포인트를 얻는 위치기반서비스를 만들었다가 사진 공유 서비스로 피봇했습니다. 요즘 1020 사이에서 인기가 많은 음성 플랫폼 스푼 역시 초기 사업 아이템은 휴대폰 배터리 교체 서비스였어요.
 
그렇다면 제품과 아이디어보다 더 중요한 건 뭔가요?
팀과 미션입니다. 미션은 그 창업팀의 목표와 방향을 결정합니다. 목표와 방향은 변하지 않지만, 그곳에 도달하기 위한 방법과 길은 얼마든지 변할 수 있어요. 변한다는 말은 애초 시도가 실패했다는 걸 의미하죠. 스타트업은 사실 엄청나게 많은 실패를 경험합니다. 그때 지치지 않으려면 미션이 명확해야 하고, 그걸 모든 팀의 구성원이 공유해야 해요.
 
모든 구성원이 미션을 공유하는 게 생각만큼 쉬운 일이 아닌 것 같아요. 초기 팀이라면 모를까 규모가 커지면 다양한 생각을 가진 사람이 다양한 이유로 일하게될 테니 말입니다.
그게 조직 관리의 핵심인 것 같아요. 구글이나 아마존은 직원이 전 세계적으로 엄청나게 많은데도 회사의 미션이 강력하게 공유되고 있잖아요. 불가능한 일이 아니라는 얘깁니다. 창업가가 끊임없이 미션을 공유하고 공감하게 하는 게 정말 중요합니다. 모든 조직이 그렇지만 스타트업은 특히 미션이 없으면 매일매일 결국 실패로 돌아갈 다양한 잡일을 처리하는 일밖에 남지 않습니다. 
 
임정민 대표(왼쪽)가 창업가와 이야기하고 있다. 사진 임정민

임정민 대표(왼쪽)가 창업가와 이야기하고 있다. 사진 임정민

 
임 대표는 인터뷰 중간중간 “정말 뛰어난 창업가였다면 지금 이 자리가 아니라 유니콘 기업의 CEO가 되어 있을 것”이라며 겸손함을 보였다. 하지만 그는 초기 멤버로 합류했던 비트폰은 HP에 매각됐고, 2010년엔 한국에서 창업한 로켓오즈는 선데이토즈가 인수했다.
 
무엇보다 ‘좋은 선수’가 반드시 ‘좋은 감독’은 아니다. 임 대표 역시 “감독은 크고 긴 관점에서 필드에서 뛰는 선수는 볼 수 없는 것들을 보게 된다”며 “VC로서 창업가에게 조언하는 콘텐츠를 만드는 건 그런 의미”라고 설명했다. 그는 “종국에는 내 펀드를 만들어 창업가를 돕는 일을 하고 싶다”고 덧붙였다.
 
스타트업의 행동 지침이 있나요?
리스크를 짊어져야 해요. 초창기일수록 조직이 작기 때문에 리스크가 적어요. 그래서 더 극단적인 선택을 할 필요가 있습니다. 조직이 커지면 결국 평준화될 수밖에 없어요. 리스크를 지는 부담이 커지니까요.
 
왜 리스크를 짊어져야 하나요? 안전한 길로 가면 안 되나요?
자원을 투입하는 만큼 성장하는 선형 성장(linear growth)을 하는 건 스타트업이 아닙니다. 혁신적인 기술이나 비즈니스모델로 자원 투입량보다 더 크고 빠르게 성장하는 지수함수 성장(exponential growth)을 하는 게 스타트업이죠. 전통적인 방식, 안전하다고 검증된 방식으로는 그런 성장을 할 수 없어요. 기존의 룰을 깨고 새로운 룰을 만들려면 리스크를 져야 합니다.
 
창업가에게 필요한 덕목이 있다면 무엇인가요?
네가지를 꼽고 싶어요. 하나는 개방성입니다. 고객과 직원, 투자자 등 주변 사람의 말을 잘 듣고 또 관찰해야 합니다. 두 번째는 실패했을 때 회복하는 능력, 탄력 회복성이 중요해요. 이건 창업가뿐 아니라 팀 전체가 탄력 회복성을 가지고 있어야 합니다. 세 번째는 앞서 말씀드린 것처럼 위험을 짊어질 줄 알아야 합니다. 네 번째는 시장에 빠르게 적응하는 적응력이 중요합니다.
 
창업가들을 만나보면 VC로부터 수익 압력을 받는다는 이야기를 많이 합니다. 하지만 당장 돈을 버는 것보다 더 큰 돈을 벌기 위해 성장에 투자하는 것도 필요할 텐데요.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둘 다 맞는 말입니다. 다만 그 기업이 어떤 단계에 있는지가 중요해요. 제품·시장 적합성(product market fit)을 찾는 단계라면 수익을 내려고 하면 안 됩니다. 그걸 찾을 때까지는 성장 지향으로 투자해야 합니다. 하지만 그 적합성을 찾았다면 수익을 내는 모델로 바꾸어야 합니다.
 
임정민 대표(왼쪽)가 아일랜드의 창업가와 대화하고 있다. 사진 임정민

임정민 대표(왼쪽)가 아일랜드의 창업가와 대화하고 있다. 사진 임정민

 
실리콘밸리에 기반을 둔 500스타트업에서 일하며 미국과 한국의 창업가를 만나고 있는 그는 “미국에는 창업 커뮤니티와 그 커뮤니티 안에서의 우연성이 존재하는 반면 한국은 그게 부족하다”고 말했다.
 
“실리콘밸리의 기원인 HP 창업가 휼렛 패커드는 사람 중심의 업무 문화를 만들었어요. 그때까지 직원은 컨베이어벨트 위의 부품으로 보는 포드식 문화가 주류였는데, 직원을 동료로 인식하고 존중해주기 시작하면서 서로 도와주는 문화가 싹텄어요. 모든 걸 공유하고 서로 도우며 혁신을 만들어나가는 문화는 이후 ‘8인의 반역자(traitorous eight)’, ‘페이팔 마피아’ 등으로 이어졌고, 이들이 오늘날 스타트업 인큐베이팅 기업인 와이컴비네이터(YC)와 500스타트업으로 이어졌어요.”
 
두터운 커뮤니티는 ‘우연성(serendipity)’로 이어졌다. 창업가가 카페에서 우연히 내로라하는 VC를 만나 투자를 받는 식의 우연이 수시로 일어난다는 얘기다. 페이스북 창업가 마크 저커버그가 하버드대에서 실리콘밸리로 사무실을 옮긴 뒤 스탠포드대 앞에서 우연히 파일 공유 서비스 냅스터 창업가 숀 파커를 만나 그를 초대 사장으로 영입한 이야기는 유명한 일화다.
 
임 대표는 “그런 커뮤니티와 우연성이 한국에서도 생겨나고 있다”고 말했다. 서울 강남역에서부터 삼성역 사이에 창업 커뮤니티가 생겨나면서 우연성이 만들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그는 “창업하기 더 좋은 환경이 됐다”고 했다.
 
저성장이 고착되면서 창업을 독려하는 사회적 분위기가 형성된 것 같습니다.
스타트업은 선형 성장이 아니라 지수함수 성장을 합니다. 인구 절벽 때문에 생산성이 낮아지는 상황에서 성장을 만들어 내기 위해선 J커브로 성장하는 기업들이 나와줘야 합니다. 선진국 미국이 저성장의 덫에 걸리지 않은 건 실리콘밸리를 중심으로 그런 기업들이 나와줬기 때문이고요.
 
임 대표의 투자 유치 노하우 콘텐츠는 온라인 뿐 아니라 오프라인에서도 만날 수 있다. 오는 10월 11일 임 대표가 직접 강의하는 ‘창업가를 위한 설득 훈련’에서는 사업계획서 첨삭과 피칭 피드백을 진행한다.
 
<창업가 연습 : 실리콘밸리 VC의 투자 유치 노하우>는 이곳에서 https://folin.co/story/1/cover
<창업가를 위한 설득 훈련>은 이곳에서 https://folin.co/studio/1/view
 
정선언 기자 jung.sunea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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