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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화도 22조 … 대기업 투자, 규제 안 풀리면 헛일

문재인 대통령의 ‘붉은 깃발’ 발언 이후 대기업의 대규모 투자·고용 계획 발표가 줄을 잇고 있다. 재계에선 문 대통령이 지난 7일 마차산업을 보호하려고 자동차를 규제했던 1861년 영국의 ‘붉은 기 조례(Red Flag Act)’를 언급한 것을 규제완화의 신호탄으로 받아들이는 분위기다. 이에 대한 화답으로 대규모 투자 발표가 이어지는 일종의 ‘규제와 투자 빅딜’이 일어나고 있다는 것이다. 전문가들은 기업이 잇따라 투자에 나선 것은 일견 긍정적으로 평가한다. 그러나 기대만큼 규제가 풀리지 않으면 오히려 기업 부담으로 돌아올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그래픽=차준홍 기자 cha.junhong@joongang.co.kr]

[그래픽=차준홍 기자 cha.junhong@joongang.co.kr]

12일 한화그룹은 앞으로 5년간 총 22조원을 투자해 3만5000명의 일자리를 창출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이번 투자 계획은 한 해 평균 4조4000억원에 달하는 것으로, 최근 3년 평균 투자액(3조2000억원)보다 37% 많다. 구체적인 투자 분야는 석유화학(5조원), 리조트와 복합쇼핑몰(4조원), 항공기 부품과 방위산업(4조원), 태양광(9조원) 등이다. 기존 산업의 경쟁력을 높이고 미래형 에너지 등 신산업 투자를 대거 늘리는 방향이다.
 
이윤환 한화그룹 부장은 “2016년부터 한화는 매년 6000여 명을 채용해 왔지만 앞으로 5년 동안에는 7000여 명을 뽑을 계획”이라며 “매출액도 현재 70조원 수준에서 5년 뒤 100조원을 달성하는 게 목표”라고 설명했다.
 
앞서 삼성그룹도 지난 8일 향후 3년간 180조원에 달하는 투자 계획을 밝혔다. 반도체 등 기존 산업에서 중국과의 격차를 벌리고, 인공지능·바이오·자동차 전장사업 등 미래 성장 동력 확보에 매진하겠다는 것이다. 또 현대차(5년간 23조원)·SK(3년간 80조원)·LG(1년간 19조원)·신세계(3년간 9조원) 등 대기업들은 김동연 경제부총리 방문 등 정부의 소통 강화 제스처가 있을 때마다 투자 계획을 발표해 왔다. 이날 한화를 포함해 6개 대기업이 밝힌 총투자금은 333조원으로 지난해 정부 예산 400조원에 육박한다.
 
국내 산업계는 현재 중국의 추격을 따돌리고 4차 산업혁명에 대비하는 것을 가장 큰 과제로 받아들이고 있다. 대규모 투자가 필요한 시점이지만 시장이 위축된 상황에서 정부 규제마저 풀리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는 우려 탓에 쉽사리 투자를 결정하지 못했다. 지난 6월 말 통계청이 발표한 6월 산업 활동 동향에서 설비 투자는 전월 대비 5.9% 줄었다. 넉 달 연속 감소한 것이다. 이는 미래형 사업에 투자해도 법과 제도 탓에 돈 벌 기회가 막히면 투자금은 손실로 뒤바뀔 수 있는 점을 우려한 결과다. 실제 국내외 신용평가사들은 대규모 투자 이후 성과를 평가해 기업 신용등급에 반영한다.
 
전문가들은 정부가 기업의 투자가 일자리 확대와 함께 산업 성장으로 이어지려면 규제완화 조치가 이어져야 한다고 강조한다. 성태윤 연세대 경제학부 교수는 “규제완화 이후 기업 투자가 이어지는 게 정상적이지만 일단 기업이 투자부터 하고 나서는 모습은 과연 자발적으로 나선 것인지 의문이 든다”며 “무리한 투자가 되지 않기 위해서는 규제 환경을 합리적으로 조정하는 후속 조치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최준선 성균관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도 “원격의료·차량 공유 등 다른 나라에선 가능한 신산업이 한국에서 불가능한 것은 기존 규제에 의존해 사는 사람들의 ‘집단 이기주의’가 한몫한다”며 “미래 먹거리를 위해서는 정부가 이를 잘 조율해 줘야 한다”고 말했다.
 
다만 몇몇 대기업이 앞장서서 대규모 투자 계획을 밝히고, 나머지 기업들도 억지로 투자 계획을 내놓는 ‘투자몰이’식 분위기가 조성돼선 안 된다는 의견도 있다.
 
조동근 명지대 경제학과 교수는 “민간 기업은 정부가 거시경기 지표 관리를 위해 활용할 수 있는 수단이 아니기 때문에 정부가 투자나 일자리 확대에 간섭해서는 안 된다”며 “최근 대기업들이 밀물일 때 들어오고 썰물일 때 빠져나가듯 투자하는 모습을 보이는 것은 바람직해 보이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김도년 기자 kim.donyu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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