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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 가슴, 굵은 허리… 여인의 조각상엔 원초적 욕망이

기자
허유림 사진 허유림
[더,오래] 허유림의 미술로 가즈아(7)
2016년 11월 뉴욕 록펠러 센터 크리스티 경매장에선 환호성이 터졌다. 클로드 모네 (Claude Monet)의 1891년 작품 ‘짚더미’가 8144만7500달러(한화 927억원)에 낙찰돼 2008년에 세운 자신의 신기록을 갈아치웠다. 반면 모네의 작품보다 조금 앞서 1879년 완성된 윌리엄 부게로의 작품 ‘목욕하는 여인’의 작품 가격은 16만2000달러(한화 1억8000만원)이었다.
 
 
세상 모든 물건은 가격이 붙어있다. 가격은 우리가 사는 세상을 깔끔하게 정돈해주는 논리다. 그렇다면 아름다운 여인보다 짚더미가 더 비싸게 팔린 까닭은 무엇일까?
 
아름다움, 그것은 생존 본능이다. 미술작품 가격에 대해 많은 이들이 질문한다. “작품 가격은 작가가 정하나요?” 일부는 맞고 일부는 틀리다. 작품 가격을 결정하는 데에는 시장을 움직이는 외적요소와 작품이 기본적으로 가지고 있는 내적 가치가 있다. 그러나 뭐니뭐니해도 시대를 초월해 회자되는 작품에는 인간의 생존 본능이 핵심요소로 자리 잡고 있다.
 
927억원 짜리 ‘짚더미’에 담긴 인간의 생존본능
‘짚더미’가 어떻게 인간의 생존과 관련이 있는지 궁금해할 것이다. 아름다움은 고정돼 있지 않다. 즉 생존에 대한 열망은 각기 다른 시대에 각기 다른 형태로 존재한다.
 
이 작품에는 1848년 독일 혁명과 프랑스 시민혁명 등 사회의 격변기를 직접 경험한 작가의 세상을 통찰하는 눈이 들어있다. 그러나 그 시대를 꿰뚫어 보는 눈과 힘은 누구에게나 동일하게 주어진 것은 아니었던 것 같다.
 
프랑스에서 최고의 인기를 구가한 부그로는 당시 영국에 별장을 구매할 만큼 부유한 작가였다. 이에 반해 모네의 작품 가격은 300프랑 정도로 부그로 작품의 10분의 1 정도밖에 안되는 수준이었다. 누가 봐도 비주류작가였던 모네가 상황을 역전시킨 힘은 어디서 나온 것일까?
 
바로 위에서 언급한, 격변하는 사회 속에서 모네 스스로가 작가로서 살아남고자 하는 욕구에 충실한 덕분이 아니었나 생각한다. 고대 미술에서부터 나타난 생존 본능을 표현한 이름 모를 무명작가들의 욕망이 어떻게 작품에 나타나 있는지 들여다보자.
 
구석기인의 간절한 바람 표현한  ‘빌렌도르프 비너스’
얼굴 없는 저 여인을 사랑할 수 있다는 말인가? 저 여인의 정체는 무엇일까? [사진 허유림]

얼굴 없는 저 여인을 사랑할 수 있다는 말인가? 저 여인의 정체는 무엇일까? [사진 허유림]

 
2만5000년 전 오스트리아 빌렌도르프에서 발견돼 ‘빌렌도르프 비너스(Venus of Willendorf)’라고 명명된 이 조그마한 조각상의 주인공은 구석기시대의 ‘미스 빌렌도르프’다. 인류 역사상 가장 오래된 이 미술조각품은 11.1cm의 크기에 젖가슴은 보는 이가 무안할 정도로 크고 축 늘어져 있다. 복부비만을 연상시키는 배와 굵은 허리에다 무릎 위의 허벅지는 종아리보다 기형적으로 크다.
 
그 사이의 성기 역시 유난히 크다. 그러나 정작 중요한 얼굴은 없다. 사람인 듯한데 사람 같지 않은 이 여인을 두고 인류학자들은 짓궂게도 ‘비너스(Venus)’라 이름 지었다. 그러나 누가 저주받은 몸매에 얼굴 없는 저 여인을 사랑할 수 있다는 말인가? 여인의 정체는 무엇일까?
 
먹을 것을 찾아 여기저기 떠돌던 구석기시대의 경제를 약탈경제라고 부른다. 아무것도 생산하지 못하고 오로지 자연이 생산한 것을 가져다 먹기만 했던 구석기인들은 약탈자의 삶이 아니라고 말할 수 없다. 자연으로부터 먹을 것을 빼앗은 그들의 경제는 넉넉할 리가 없었다.
 
굶주림에 시달리며 하루하루 연명하는 생활 속에서 그들의 소망은 무엇이었을까? 배터지게 먹고 살이 퉁퉁 찌는 상상을 원시인이 아니더라도 충분히 해봄 직하다. 배불리 먹고 난 뒤의 포만감을 상상했던 끝자락에 탄생한 것이 ‘그들만의 비너스’였다. 그러니 열악한 생존조건에서 살아남기 위한 애착이 만들어낸 이 조각품은 구석기 여인의 출산과 수유를 잘 표현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종족 보존을 위한 다산, 풍요에 대한 구석기인의 간절한 바람이 담겨 있다.
 
영생을 꿈꾼 청동기 시대의 대리석상 
그리스 에게해에는 섬들이 달팽이처럼 원형을 그리며 분포돼 있다. 청동기 시대 (기원전 3200~1100년)에 이들 섬에서 문명이 발달했는데, 이것을 ‘키클라데스 문명 (Cycladic civilization)’이라 부른다.
 
이 시대에 만들어진 예술품으로 가장 유명한 것은 대리석상이다. 아주 밝으면서도 간결한 인체 표현, 길고 도드라지게 표현한 코, 봉긋한 젖가슴, 마주 잡은 두 팔, 다리 사이의 갈라짐은 굶주림에 시달리며 하루를 연명하기에 바빴던 구석기 시대의 비너스와 다른 모습이다.
 
(좌)키클라데스 대리석 조각 - 하프연주자, (우)키클라데스 대리석 조각. [사진 허유림]

(좌)키클라데스 대리석 조각 - 하프연주자, (우)키클라데스 대리석 조각. [사진 허유림]

 
또 이 조각은 어떤가? 양팔의 일부가 부러진 것을 제외하고는 거의 완벽한 상태인 이 유물은 의자에 앉아 무릎 위에 하프를 올려놓고 줄을 튕기는 모습이다. 그러나 줄은 없다. 하프의 틀이 손상되지 않은 것으로 보아 아마도 줄은 처음부터 없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먹고사니즘’에 대한 걱정에서 벗어나 삶의 여유를 보여주는 이들 대리석 조각은 모두 낙소스 섬과 아모르고스 섬 사이에 있는 케로스 섬의 무덤에서 발굴됐다. 왠지 신성함이 느껴지는, 어떤 의미에서는 종교적 경배의 대상물로 해석될 수 있는 조각상에는 영생을 꿈꿨던 무덤 속 주인공의 욕망이 고스란히 담겨있다. 
 
예술은 바로 생명과 욕망의 표현이다. 그러므로 예술이란 ‘그냥 살고 싶다’ 이상의 것, 즉 동물적 존재의 원초적 생명에 대한 갈구를 넘어선 ‘사람다운 것’을 추구하고 표현한 것인지 모른다. 그리고 이것은 시간이 흐르면서 더욱 다양한 형태로 분화한다. 다음 호에서는 근대의 식민지 약탈 전쟁이 어떻게 경제력을 앞세운 문화전쟁으로 바뀌게 되었는지 살펴보도록 하겠다.
 
허유림 RP' INSTITUTE. SEOUL 대표 & 아트 컨설턴트 heryu122982@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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