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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시윤의 백투스쿨] '미래학교' 창덕여중의 의로운 실험

'정답 없는 문제를 출제하는 시험' 
'계란 안 깨지게 낙하시키기 공동 작업' 
'온돌·소극장형 교실' 
'태블릿PC를 활용한 음악수업'
'스마트폰 켜니 수업에 빠져드네' 
'직접 가꾼 배추로 김장 실습…발효·삼투압 과학이 쑥쑥'.
 
최근 4년 간 서울 창덕여중을 소개한 기사들의 제목입니다. 구한말 격변의 현장인 서울 중구 정동 한복판에 있는 이 학교는 설립된 지 80년을 훌쩍 넘겼습니다. 하지만 '미래학교'라 불립니다. 
 
서울시교육청이 2015년 '미래학교 연구학교'로 지정한 이후 교사·학생·학부모들이 함께 미래학교 모델을 만들어가고 있습니다. 이 모델에 대해 알고 싶어 찾아오는 교육 관계자만 매해 1000여 명에 이릅니다.
 '미래학교'연구학교'인 서울 창덕여중의 학생들의 활동 모습. [창덕여중 이은상 교사 제공]

'미래학교'연구학교'인 서울 창덕여중의 학생들의 활동 모습. [창덕여중 이은상 교사 제공]

이 학교 이은상 교사는 지난 10일 서울 광화문 교보생명빌딩 컨벤션홀에서 이 학교의 혁신에 대해 소개했습니다. 교보교육재단이 '미래사회 인성교육방향' 주제로 연 심포지엄에 발제자 중 한 명으로 초대돼서죠. 이 교사는 사회 과목 교사인데 이 학교 미래학교연구부장을 맡고 있습니다. 그가 이날 한 학생의 일기 형식으로 재구성해 소개한 창덕여중의 실제 모습은 이렇습니다. 

"1교시 수학 수업에 태블릿PC를 학생마다 1대씩 받고 자리에 앉았다. 선생님이 수학 원리를 설명해주신다. 
태블릿PC에 실행한 클라우드 노트 위에 판서하시기 때문에 선생님 설명을 받아적지 않아도 된다. 우리는 클라우드 노트 프로그램을 실행해 태블릿PC에서 문제를 풀어본다. 선생님은 친구들이 문제를 푼 과정을 화면에 띄워 분석해 주신다. 
내 풀이는 클라우드 노트에 자동저장되기 때문에 선생님이 내게 쪽지를 남겨주실 거다. 
 
2교시는 사회수업인데 오늘은 컴퓨터실에서 수업한다. 사회선생님과 영어선생님이 함께 들어오셨다. 사회선생님은 호주의 자연·인문환경에 관한 자료를 보여주시며 한국과 어떻게 다른지 생각해 보게 하셨다. 우리는 호주 친구들에게 물어볼 질문을 만들었다. 
영어선생님은 우리 질문을 영어로 표현하도록 도와주셨다. 약속된 시간이 되자 대형 화면에 호주 친구들이 화상회의 프로그램을 통해 나타났다.…"
'미래학교'란 모델에서 흔히 떠올리게 되는 것은 스마트기기로 상징되는 학습환경입니다. 창덕여중엔 학생들이 쓸 수 있는 스마트기기가 다른 학교보다 넉넉합니다. 소극장, 스튜디오, 3D프린터가 딸린 공방, 학생들이 동그랗게 앉을 수 있는 원형 회의실도 있습니다.  하지만 이런 환경이 물리적으로 갖춰진다고 해서 미래학교가 될 순 없습니다.  
 '미래학교 연구학교'인 서울 창덕여중의 원형 회의실. 일반 중학교에선 보기 어려운 공간이다.[창덕여중 이은상 교사 제공]

'미래학교 연구학교'인 서울 창덕여중의 원형 회의실. 일반 중학교에선 보기 어려운 공간이다.[창덕여중 이은상 교사 제공]

이 교사가 소개한 창덕여중의 교육과정은 '학습자 중심'이 특징적입니다. 이 학교 교사들은 학기 초에 해당 교과의 목표와 방법에 대한 학생·학부모의 요구를 반영합니다. 수업은 교육과정상의 내용 요소를 학습하는 이해활동, 내용 요소를 실제 문제에 적용하는 적용활동으로 구분됩니다. 
 
이 교사의 경우엔 수업에서 자신의 강의가 차지하는 비중은 20%에 불과하다고 합니다. 학생들은 자기 학습 수준, 선호, 스타일에 따라 자유롭게 학습합니다. 모르는 것이 나오면 스스로 찾아보거나 친구들에게 물어보는데 이 과정에서 자기주도적이 되며 친구·교사들과 협력을 경험합니다. 
 
학기 후반부에 이르면 학생들은 자신이 학습한 내용을 활용해 자기가 해결하고 싶은 문제를 스스로 정하고 비슷한 문제에 관심 있는 학생들과 팀을 이뤄 협력 프로젝트 활동을 합니다. 이런 프로젝트는 학생에게 주어지는 과제가 아니라, 학생 스스로 생각하고 협력하고 표현하며 사회에 기여하는 기회로 작용한다는 게 이 교사의 설명입니다. 
서울 창덕여중 학생들의 사회과 수업 학습장면. 스마트기기와 클라우드 환경을 활용해 학생별로 자기 수준, 선호, 스타일에 따라 자유롭게 학습을 한다. [창덕여중 이은상 교사 제공]

서울 창덕여중 학생들의 사회과 수업 학습장면. 스마트기기와 클라우드 환경을 활용해 학생별로 자기 수준, 선호, 스타일에 따라 자유롭게 학습을 한다. [창덕여중 이은상 교사 제공]

그래서 이 학교의 평가는 '과정 중심 평가'입니다. 평가 목적이 학생들을 등급화하기보다는 학생의 학습 과정을 진단하고, 적절한 피드백을 제공해 학생이 학습을 개선하도록 하는 데 있습니다. 
 
평가 결과를 점수화하기는 하지만 점수화 이전에 학생에게 결과를 공개하고 피드백을 제공해 목표에 도달하게 한다고 하네요. 이 과정에서 학생들은 다른 학생, 그리고 교사를 경쟁자·평가자로 보기보다는 협력자·지원자로 인식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창덕여중은 지난해 학생·교사·학부모의 의견을 듣고 학교 비전을 세웠습니다. '미래를 만들어가는 행복한 학교'이 창덕여중의 비전입니다. 이런 비전을 실현할 핵심가치로는 공감·도전·협력·건강·즐거움을 정했습니다. 학교구성원들이 희망하는 학생상·학부모상·교사상도 정했는데요. 
 
학생상을 살펴보면 '다른 사람 입장에서 이해하고 행동하는 학생' '새롭거나 어려운 일을 끈기 있게 시도하는 학생' '다른 사람과 생각을 공유하고 힘을 합하는 학생' '몸과 마음의 건강한 발달을 추구하는 학생' '유쾌하고 긍정적으로 생각하는 학생' 등입니다. 
서울 창덕여중 이은상 교사가 지난 10일 서울 광화문 교보생명빌딩 컨벤션홀에서 '인성함양을 위한 미래학교 변화 방향과 실제' 주제로 특강하고 있다. [사진 교보교육재단]

서울 창덕여중 이은상 교사가 지난 10일 서울 광화문 교보생명빌딩 컨벤션홀에서 '인성함양을 위한 미래학교 변화 방향과 실제' 주제로 특강하고 있다. [사진 교보교육재단]

 
학생 스스로 자신의 교육활동을 설계하게 돕고, 학교 안팎의 크고 작은 변화를 이끌고 있다는 게 이 교사의 설명입니다. 교사들도 실천가이자 현장연구자로서 학생들과 수평적 관계를 만들어나가며 학생의 학습과 성장에 초점을 맞추게 됐다고 합니다. 
 
학생들은 자신의 역량에 대해 스스로 높은 평가를 하며, 학교 환경을 창의적 환경으로 인식하고 있습니다. 창덕여중의 자체 조사에 따르면 학생들이 자신에 대해 느끼는 민주시민성, 의사소통능력, 창의적사고능력 등은 같은 서울지역, 혹은 전국의 또래보다도 높게 나옵니다. 또 학교가 새롭고 다양한 경험을 권장하고 있으며, 학교 안에서 자유로운 의사소통이 가능하다고 보는 인식이 학년이 높아질수록 강해집니다. 
 
창덕여중의 실험은 우리에겐 아직은 여러 모로 낯섭니다. 보기 중에서 정답을 골라내는 객관식 문제를 풀고, 그것도 경쟁자보다 빨리 정답을 찾아내야 우수한 것으로 평가 받는 '입시 현실'에선 모두로부터 큰 호응을 얻기가 쉽지 않은 실험입니다.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창덕여중의 시도는 '기-승-전-대입'으로 귀착되는 한국 교육 현실이 바뀌지 않으면 다른 학교로 퍼지기 어렵습니다. '학교를 둘러싼 다양한 측면의 불일치'를 극복하지 않고는 우리 학교들이 인성 함양에 집중하기 어렵다는 게 이 교사의 호소입니다. 
 
교육에 대한 이상과 실제 현실의 불일치, '협력형 인재가 미래인재'라고 입을 모으면서도 친구들과의 협력보다는 경쟁을 중시하게 하는 현실, 그리고 교육에 대한 구성원 간의 의견 불일치 등을 극복해야 한다는 것이죠. 
 
이날 기조 강연을 한 손봉호 고신대 석좌교수(서울대 명예교수)도 "한국 학생들은 지식을 습득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경쟁에서 이기기 위해 공부한다"고 일갈했습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의 조사에 따르면 '반에서 1등을 하고 싶은가'라는 질문에 '그렇다'고 답한 학생은 OECD 회원국 평균에선 59%였으나 한국에선 이 비율이 80% 이상이었다고 합니다. 우리 학생들이 얼마나 경쟁 스트레스에 시달리는지 보여주는 조사입니다. 
 
이 교사는 창덕여중을 대표하는 관점으로 학생을 '체인지 메이커'(change maker)로 보는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학생들은 학교문화 혁신의 주체이며, 작은 시민이자, 자기 삶과 사회를 변화시키는 주인공이라는 것이죠. 
 
마이크로소프트 최고경영자(CEO)인 사티야 나델라도 "미래 기술은 모든 학생, 교사, 학부모, 교육기관에게 내일의 세상을 창조할 수 있는 힘을 실워줘야 한다"고 강조합니다. 우리 사회는 청소년 하나하나를 '세상을 변화시킬 소중한 주체'로 격려하고 있는지 곰곰이 고민해봐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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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시윤 기자 sung.siyoon@joongang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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