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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퀴아오와 인연 맺어준 산골짝 인생학교

기자
권대욱 사진 권대욱
[더,오래] 권대욱의 산막일기(9)  
체계도 없고, 커리큘럼은 물론 정해진 강사진 없이 누구나 다 선생이 되고, 누구나 다 학생이 되며, 무엇이든 과목이 되는 학교. 다만 하룻밤 지나고 나면 ‘아, 이제까지 잘살아왔지만, 지금부턴 더 잘 살아야겠다’는 결심 하나로 족한 학교. 내가 교장이요, 플랫폼 제공자인 산막 스쿨 이야기다.
 
꽉 찬 여름, 그 이상 표현할 길이 없는 여름이다. 파란 하늘, 부서지는 햇살, 산들바람, 도저히 담지 않을 수 없는 만하(晩夏)의 모습이다. 언젠가 이층집 짓고 별을 헤던 밤과 그 다음 날 티파니의 아침에 곡우에게 이른 말이 있다. 어젯밤 당신이 본 그 별과 오늘 아침의 티파니 하나로 그간 이곳에 쓴 돈이며 수고며 모두 보상받았다. 그러니 지금부터 이곳에서 얻는 모든 것은 거저요 덤이니, 매일 그만큼 얻고 번다 생각하자.
 
‘곡우초당’ 현판 걸고 집사람에 헌정한 일은 두고두고 잘한 일 아닌가 싶고 등짐 지고 날라온 돌과 맷돌로 만든 분수대 또한 내 일생에 처음 맛본 가슴 뛰는 성취의 순간이었으니, 산막은 내게 큰 스승이요 고향과 같은 아늑함이다. 시도 때도 없고, 순서도 체계도 없으며, 누구라도 선생이 되고, 무엇이라도 과목이 되는 산막스쿨은 그렇게 태어났다.
 
무엇이든 다 과목이 되는 인생학교 
오픈스쿨이며 인생학교인 산막스쿨. 산막의 곡우초당. [사진 권대욱]

오픈스쿨이며 인생학교인 산막스쿨. 산막의 곡우초당. [사진 권대욱]

 
사람들이 묻곤 한다. 산막스쿨이 무어냐고. 도대체 무엇하는 곳이기에 이 사람 저 사람 산막스쿨, 산막스쿨 하느냐고. 그에 대한 대답은 간단하다. 산막스쿨은 순서도, 체계도, 커리큘럼도, 강사진도 없는 이상한 학교!
 
누구든지 선생이 될 수 있고, 누구든지 학생이 될 수 있는 오픈 스쿨이며, 무엇이든 다 과목이 될 수 있는 인생학교다. 문·사·철과 예술을 들을 수 있고 4차 산업혁명이나 최첨단 과학을 논할 수도 있지만, 별자리 보는 법이라든가 어찌하면 장작을 잘 팰 수 있느냐가 과목이 될 수도 있는 학교다.
 
공부만 하지 않는다. 놀기도 하고, 춤도 추고, 노래도 부르고, 캠프파이어에 맞춰 사람들과 네트워킹도 하는 학교다. 그러나 목적과 지향점만은 분명하다. 모두가 잘살아오고 지금도 잘살고 있는 분들이겠지만, 이 학교를 나갈 때쯤이면 ‘더 잘 살아야겠다’고 결심하고 나가는 학교다.
 
태어나는 것은 신의 뜻이지만 어떤 삶, 어떤 이름으로 죽느냐는 우리 스스로가 정할 수 있음을 자각하고 자리이타(自利利他)의 삶, 공헌하는 삶을 살겠다는 결심 하나로 충분한 그런 학교다.
 
다양한 과목의 산막스쿨. [사진 권대욱]

다양한 과목의 산막스쿨. [사진 권대욱]

 
처음부터 계획한 것은 아니었다. 기천문 수련원 1동과 오두막 7채를 지은 후 7명의 주인이 모여 수련도 하고, 쉬기도 하며 세월 보내다가 이런저런 사정으로 떠나는 회원이 생기고 딱히 인수할 사람도 마땅찮아 운명처럼 한 채씩 떠맡게 된 것이 오늘날 내가 집 부자가 된 배경이다.
 
혼자 쓰기엔 너무 큰 공간이었고, 사람이 좋았던 나는 이 사람, 저 모임을 초대해 밥 먹고 이야기하고 노래하다 보니 이럭저럭 1000여 명의 빈객이 다녀갔다. 다들 거기 좋았다 기억해주고 그런가 싶어 또 초대하고 하다 보니 나름대로 선순환의 고리가 정착된 것이다.
 
시설 역시 필요할 때마다 이것저것 갖추어 조그마한 공연이나 공부할 수 있는 공간은 갖추었으나 아직도 한참 부족한 현실이지만, 그 모든 것이 내 머릿속에 늘 그려왔던 것이기에 망설임이 없었던 듯하다. 그러다 보니 자연 자그마한 체계 하나를 덧붙이면 좋겠다 싶었고, 그래서 생각해 낸 것이 스쿨의 개념이다.
 
내가 선생이 될 생각은 애초에 없었고, 주인이 되겠다는 생각도 버렸다. 나는 주인이면 주인, 객이면 객, 아무 상관 없었고 내가 모든 것을 관장하겠다는 생각 자체 또한 버렸다. 그저 장소와 시스템을 제공하는 플랫폼 제공자면 좋겠다 싶었고 그러다 보니 오히려 더 큰 확장성이 담보되는 것이었다. 누구든 좋은 뜻으로 사람들을 모으고 프로그램을 짜고 준비해오면 되는 장소가 돼, 이를 이름하여 산막스쿨이라 부르는 것이다.
 
산막스쿨로 맺어진 자랑스런 인연들
기천문의 인연으로 시작한 산막스쿨, 기천문을 알리다. [사진 권대욱]

기천문의 인연으로 시작한 산막스쿨, 기천문을 알리다. [사진 권대욱]

 
산막스쿨의 성격이나 내용도 그렇지만, 산막스쿨로 맺어진 인연 또한 자랑스럽다. 한 사람을 연으로 지인들이 모이고 그 지인들이 또 서로 지인들이 되고 그 지인들의 지인들이 또 새로운 지인들이 된다.
 
교수, 여행가, 방송인, 전문직업인, 연주자, 학생, 젊은 직장인이 대자연 속에서 서로를 알아가는 과정은 참 자연처럼 자연스럽다. 그저 그 아름다운 과정의 한 부분이 되고 싶을 뿐 그 이상의 욕심은 부리려 하지 않는다.
 
오늘 돌아가는 이들이 어제 돌아간 이들의 말에 이어 또 말을 남길 것이고 나는 그 말들 속에서 그날을 생각할 것이다. 그들이 잘되기를 바랄 것이다. 그로 인해 어떤 일이 벌어질지는 모르겠지만, 그 모두 세상의 빛이 될 것이라 믿는다.
 
추억이란 그런 것이다. 늘 말하지만, 사람이 먼저다. 실제로 작년 연말, 장충동 그랜드 앰배서더에서 열린 필리핀의 영웅 파퀴아오 이벤트 또한 따지고 보면 파퀴아오팀에 우리 호텔을 추천해준 사람과의 산막스쿨 인연이 시발점이 된 것이니 나는 그 인연에 그저 감사할 뿐이다. 항상 사람이 먼저요, 사업은 따라오는 것이다.
 
늦은 시간까지 산막스쿨을 밝히는 모닥불. [사진 권대욱]

늦은 시간까지 산막스쿨을 밝히는 모닥불. [사진 권대욱]

 
오늘도 나는 플래카드를 걸고 프로그램을 만들고 각자의 역할을 분담하고 각자 자기소개하고 좋은 강의나 연주 청해 듣고 바비큐 곁들여 밥 먹고 노래하고 모닥불 주위에서 환담하고 사람 사귀고 주변 산책하고 토크쇼도 하고 강의도 듣고 하룻밤을 청한다.
 
다양한 삶과 꿈이 함께 어우러지며 지금까지도 잘 살아왔지만, 지금부턴 더 잘 살아야겠다는 각오가 우러나오는 곳. 누구든 선생이 되고 누구든 학생이 되어 ‘삼인행필유아사(三人行必有我師)’의 교훈을 되새기는 곳.
 
무엇이든 과목이 되고 형식도 체계도 순서도 없지만, 무경계의 질서가 살아 있는 학교. ‘일조지환(一朝之患)’으로 일희일비하지 말고 묵직한 ‘종신지우(終身之憂)’ 하나쯤 가슴 속에 품고 살자는 학교. 시작은 미약하지만, 그 끝은 창대하리라 믿으며 날이 갈수록 진화하는 산막스쿨이다.
 
권대욱 아코르 앰배서더 코리아 사장 totwkwon@ambate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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