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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사 콜롬보의 모델이 바로 그였다

 석영중의 맵핑 도스토옙스키 <29> 상트페테르부르크: 형사와 매춘부
영화 ‘죄와 벌’(1969)에서 예심판사 포르피리(오른쪽)가 라스콜리니코프를 추궁하는 장면. 포르피리를 맡은 사람은 구소련의 국민배우 인노켄티 스목투놉스키다.

영화 ‘죄와 벌’(1969)에서 예심판사 포르피리(오른쪽)가 라스콜리니코프를 추궁하는 장면. 포르피리를 맡은 사람은 구소련의 국민배우 인노켄티 스목투놉스키다.

 
“그렇다면 누, 누가 죽인 거지요?”  
라스콜리니코프는 끝내 참지 못하고 숨을 헐떡이면서 물었다. 포르피리는 예상치 못 한 질문에 깜짝 놀랐다는 듯이 의자 등받이 쪽으로 상체를 젖혔다.  
“뭐라고요? 누가 죽였느냐고요?”  
그는 자신의 귀를 못 믿겠다는 듯이 되받아 물었다.  
“당신이 죽였지요. 로지온 로마노비치! 바로 당신이 죽인 겁니다 .”  


예심판사(지금의 형사반장) 포르피리가 라스콜리니코프를 향해 “범인은 바로 너다”라고 말하는 이 장면이야말로 ‘추리소설’ 『죄와 벌』의 백미라 할 수 있다. 쌓이고 쌓였던 긴장감이 한꺼번에 폭발하는 순간이다.  
 
서두에 범인의 정체와 그의 범행이 밝혀지고 끝에 가서 형사가 범인을 잡는 것으로 마무리되는 추리소설을 ‘도서(倒敍) 추리소설’이라고 한다. 노련한 형사가 지능적인 범인을 ‘어떻게 잡는가(howcatchem)’가 스토리의 핵심이다. 대표적인 예가 1970년대 TV에서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던 ‘형사 콜롬보’ 시리즈다. 시나리오를 쓴 두 작가는 도서 추리의 형식뿐 아니라 주인공 콜롬보의 이미지를 러시아 대문호에게서 빌려왔다. “우리는 도스토옙스키의 『죄와 벌』에 나오는 형사를 기억해냈습니다. 겸손해 보이지만 사실은 무시무시한 인물이죠. 살인범의 허를 찌른다는 게 무언지 아는 인물입니다.”  
 
포르피리는 “자그마하고 똥똥하고 아랫배가 볼록 나온 서른다섯 가량의 남자”다. 뒤통수가 툭 튀어나온 크고 둥글둥글한 머리통, 짧게 깎은 머리, 누런 안색, 콧수염도 턱수염도 없는 어딘지 “아낙네를 닮은” 얼굴에 작은 눈은 유난히 자주 깜박거린다. 툭하면 자기는 “인생 다 끝난 사람”이라며 투덜거린다. “의심이 많고 영리하고 사고방식이 독특한 사람”이라는 게 지인들의 평이다.  
미국 TV드라마 ‘형사 콜롬보’의 주인공은 『죄와 벌』의 예심판사 포르피리를 벤치마킹해 형상화한 것이다. 맨 오른쪽이 콜롬보역의 피터 포크. [중앙포토]

미국 TV드라마 ‘형사 콜롬보’의 주인공은 『죄와 벌』의 예심판사 포르피리를 벤치마킹해 형상화한 것이다. 맨 오른쪽이 콜롬보역의 피터 포크. [중앙포토]

 
처음부터 그는 라스콜리니코프가 범인임을 직감한다. 라스콜리니코프는 일단 전당포를 찾아간 마지막 인물이며, 전당물 신고를 하지 않은 유일한 인물이다. 범인은 반드시 범죄 현장으로 되돌아온다는 것을 입증이라도 하듯, 살인 사건 이후에 노파의 전당포 건물에 찾아가 이것저것 캐묻기도 했다. 게다가 “비범한 인물에게는 살인을 포함하는 모든 것이 허용된다”는 내용의 논문을 잡지에 발표했다. 포르피리는 논문을 읽고 생각에 잠긴다. “이 친구는 그냥 넘어갈 사람이 아니군.”  
 
노회한 형사는 어떻게 자백을 받아냈나
그런데 이 모든 것은 어디까지나 심증일 뿐이다. 목격자도 없고, 물증도 없다. 더욱 안타깝게도 정신이 불안정한 칠장이가 자신이 살인을 저질렀다고 거짓 자백까지 해버린 터라 라스콜리니코프를 잡아넣을 명분은 단 한 가지도 없다. 기대할 수 있는 것은 그의 자백뿐이다. 포르피리의 전략이 빛을 발하는 것은 이때부터다. 
 
“처음에는 가능한 한 아주 멀리서, 하찮은 일, 혹은 중요하더라도 사건과는 전혀 상관없는 일에서 시작한다.” “범인의 마음을 편하게 해주어 조심성을 흐트러뜨린 다음 갑자기 예기치 못한 방식으로 가장 치명적이고 위험한 질문을 던진다.”
 
포르피리는 라스콜리니코프와 모두 세 번 대면하는데, 그때마다 ‘신문의 정석’을 충실하게 이행한다. 살인과는 아무 상관없는 흡연의 해악에 대해 주절거리거나 방안을 거의 뛰다시피 왔다 갔다 하면서 라스콜리니코프의 정신을 쑥 빼놓는다. “번번이 지껄이는 말과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여러 가지 손짓을 한다.”  
 
“당신은 고결한 사람입니다”라고 추켜세우는가 하면 “진심으로 당신이 잘 되었으면 해서 이러는 겁니다”라고 생색을 내기도 한다. 가족을 들먹이며 용의자의 감상주의 코드를 건드리는 것도 전략의 일부다. “당신 가족이 와 있지 않습니까. 가족 생각도 좀 하셔야지요.”  
그러나 그가 “자유로운 예술”이라며 떠벌이는 신문의 핵심은 압박이다. 범인을 멋대로 내버려두고, 붙잡지도 않고, 괴롭히지도 않되, 다만 수사관이 모든 것을 낱낱이 꿰고 있고, 밤낮으로 그를 감시하고 있으며, 잠도 자지 않고 지키고 있다는 것을 알게 한다. 그러면 범인은 결국 기진맥진해서 제 발로 찾아온다는 것이다. “심리적으로 내게서 도망을 칠 수 없습니다. 헤헤! 멋진 표현이지요. 그자는 도망칠 곳이 있다 하더라도 자연의 법칙 상 내게서 도망칠 수 없는 것입니다. 마치 나방이 불 주변을 맴돌 듯이 말입니다. 계속 내 주변을 맴돌다가 내 입 속으로 날아들 것입니다. 그럼 저는 녀석을 꿀꺽 삼켜버리면 그만이지요. 헤헤헤!”  
 
영화 ‘죄와 벌’(1969)에서 순수한 창녀 소냐를 연기한 구소련 배우 타티야나 베도바

영화 ‘죄와 벌’(1969)에서 순수한 창녀 소냐를 연기한 구소련 배우 타티야나 베도바

혐오와 공포와 초조감이 극에 달해 터지기 일보 직전인 라스콜리니코프에게 그가 내놓는 ‘히든카드’는 거래다. “저쪽 일은 내가 잘 꾸며 놓을 겁니다. 그러면 당신의 감형은 상상도 하지 못하게 클 거에요.” “당신의 범죄는 일종의 정신 착란으로 보일 겁니다. 그리고 솔직히 말하면 그것은 정신착란이지요. 나는 정직한 사람입니다. 내가 한 약속은 반드시 지킵니다.”  
 
라스콜리니코프는 결국 자수하고 정신착란을 인정받아 상대적으로 가벼운 형량을 선고받는다. 훌륭한 추리소설의 요건인 엄정한 ‘법의 심판’에 비추어보면 무언가 아쉽다. 그러나 『죄와 벌』은 추리소설을 넘어 궁극적으로 인간의 갱생을 성찰하는 소설이다. 포르피리는 ‘라스콜리니코프 갱생’ 프로젝트의 딱 절반만 실행한다. 나머지 절반은 매춘부 소냐의 몫이다.  
 
살인범을 구원으로 인도한 사람이 창녀인 까닭
소냐는 알코올 중독 아버지와 폐병에 걸린 계모, 헐벗고 굶주린 동생들을 먹여 살리기 위해 거리로 나선 아가씨다. 타고난 선함과 깊은 그리스도교 신앙으로 비루한 삶을 견뎌낸다. 당대 독자들은 하필이면 거리의 여성이 주인공을 구원으로 인도해야 하나며 당혹스러워 했다. 소냐가 라스콜리니코프에게 성경을 읽어주는 장면을 두고 교회는 신성모독이라며 발끈했다. 도스토옙스키의 천재성을 인정한 편집자도 이 부분만은 끝까지 불만스러워 했다.  
 
그러나 도스토옙스키는 물러서지 않았다. 그는 가장 낮은 곳에서, 가장 비천한 삶을 통해 희망을 말하고 싶었다. 일자무식 매춘부는 치밀한 형사의 두뇌 너머 다른 영역에서 죄인의 갱생을 촉구한다. “지금 즉시 나가서 네거리에 서서 먼저 당신이 더럽힌 대지에 절을 하고 입을 맞추세요. 그 다음 온 세상을 향해 절을 하고 소리를 내어 모든 사람에게 말하세요. ‘제가 죽였습니다’라고요. 그러면 신께서 또다시 당신에게 생명을 보내주실 거에요.”  
 
도스토옙스키는 소냐의 말 속에 자신이 생각하는 그리스도교의 정수를 담아두었다. 땅바닥에 엎드려 절하라는 것은 무엇보다 겸손을 배우라는 뜻이다. 나폴레옹이 되고 싶어 도끼를 휘두른 라스콜리니코프에게 가장 필요한 것이다. 다시 살고 싶다면 맨 밑바닥으로 내려가야 한다. 자존심도 존재감도 아닌 다른 어떤 것, 존재의 근원에 관해 생각해야 한다.  
소설 속에서 라스콜리니코프가 살인을 고백하며 땅바닥에 입을 맞춘 센나야 광장. 오늘날에는 재래시장과 현대식 쇼핑몰이 공존하는 번화가다.

소설 속에서 라스콜리니코프가 살인을 고백하며 땅바닥에 입을 맞춘 센나야 광장. 오늘날에는 재래시장과 현대식 쇼핑몰이 공존하는 번화가다.

 
대지는 삶의 다른 말이다. 대지에 입맞춤하는 것은 삶으로 돌아가는 것을 상징한다. 전당포 노파의 머리를 내리쳤을 때 라스콜리니코프는 자신의 삶도 잘라내 버렸다. 그는 사람들로부터 단절되었다. 소냐는 직관적으로 그것을 알기 때문에 오열한다. “그럼 어떻게, 어떻게 살려고 그래요? 무엇에 의지해서 살려고요? 어떻게, 어떻게 사람을 떠나서 살겠다는 거지요! 이제 당신은 어떻게 될까요?”  
 
아무도 사람을 떠나서는 살 수 없다. 포르피리는 그래서 라스콜리니코프가 자살하지 않는 한 자수할 거라 믿는다. “내가 도망을 가면 어떻게 할 건가요?”라는 라스콜리니코프의 질문에 포르피리는 “도망을 갔다가도 돌아올 겁니다”라고 자신한다. “우리 없이 당신은 살 수가 없으니까요.”  
 
더러운 시장통 바닥에 입맞추며 신과 화해하다
소냐가 지정하는 네거리는 ‘사람 사는 곳’의 은유이자 현실 속에 존재하는 구체적인 지명이다. ‘센나야 광장’이라는 곳인데,  1737년부터 열리기 시작한 시장이 아직까지 남아있어 ‘센나야 시장’이라 불리기도 한다. 세노(건초)에서 유래한 이름이 말해주듯, 건초와 장작과 우마, 그리고 겨울에는 얼린 새고기와 육고기가 매매되곤 했다.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물건 값이 가장 싼 시장이었으며 인근 지역은 빈민굴이었다. 오늘날에는 근방에 전철역이 개통되고 재래시장과 나란히 현대식 쇼핑몰과 가전제품 상점들이 들어차 있어 유동 인구로 늘 북적댄다.  
 
시장은 예나 지금이나 사람들이 몰려들어 팔고 사고 실랑이를 하는 공간, 즉 ‘지지고 볶으며’ 살아가는 공간이다. 『죄와 벌』의 주요 등장인물은 모두 센나야 시장 근처에 거주한다. 라스콜리니코프는 이곳에서 벗어나고 싶어 도끼를 집어들었지만 이곳을 거치지 않고는 아무 데도 갈 수 없다. 그는 경찰서에 자수하러 가기 전에 먼저 센나야 시장으로 가서 “완전하고 새롭고 충만한 감정”에 사로잡혀 더러운 땅바닥에 입을 맞춘다. “마음이 녹아내리고 눈물이 쏟아졌다.” 시장 바닥에서 그는 사람들 속으로 돌아가고 신과 화해한다.  
 
구소련의 KGB 신문관들이 포르피리를 롤 모델로 삼았다는 것은 흥미롭다. 50편이나 되는 미국의 법률 관련 논문이 소설 『죄와 벌』을 언급하고 그 중 7편이 포르피리를 집중적으로 고찰한다는 것 역시 눈여겨볼 대목이다. 어느 법학자는 150년 전 포르피리의 신문 방식이 21세기 매뉴얼과 정확하게 일치한다며 혀를 내두르기도 했다.  
 
그러나 도스토옙스키에게 포르피리의 ‘전략’은 센나야 시장을 배경으로 할 때에만, 그리고 소냐의 그리스도교와 합쳐질 때에만 의미가 있다. 『죄와 벌』이 ‘형사 콜롬보’와는 완전히 다를 수밖에 없는 이유다.  
 
고려대 노문과 교수. 『도스토예프스키, 돈을 위해 펜을 들다』 『자유, 도스토예프스키에게 배운다』등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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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방연구원 전력발전연구부ㆍ군비통제센터를 거쳐 1994년 중앙일보에 입사한 국내 첫 군사전문기자다. 국방부를 출입한 뒤 최장수 국방부 대변인(2010~2016년)으로 활동했다. 현재는 군사안보전문기자 겸 논설위원으로 한반도 군사와 안보문제를 깊게 파헤치는 글을 쓰고 있다.

박용한 연구위원 : park.yonghan@joongang.co.kr (02-751-5516)
‘북한의 급변사태와 안정화 전략’을 주제로 북한학 박사를 받았다. 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ㆍ군사기획연구센터와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북한연구센터에서 군사ㆍ안보ㆍ북한을 연구했다. 2016년부터는 중앙일보에서 군사ㆍ안보 분야 취재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