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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춤은 좋은 안무가로부터

안무가 육성 발벗고 나선 무용계 
국립현대무용단 픽업스테이지 '스텝업' 중 정철인의 '0g'

국립현대무용단 픽업스테이지 '스텝업' 중 정철인의 '0g'

 ‘세계적인 안무가 ○○의 대표작을 국내에 선보인다’. 무용 공연에서 흔히 보는 홍보 문구다. 창작물 공연도 간혹 있지만 레퍼토리로 정착되는 일은 드물다. 국제 콩쿠르를 휩쓸고, 세계적인 무용단에 한국인 단원이 거의 한 명씩은 포진해 있을 정도로 무용수 기량은 인정받고 있지만, 창의적인 무대를 스스로 만들어낼 창작 기반이 없다. 최근 3대 국립 무용단체가 ‘안무가 육성’ 드라이브를 강하게 걸고 나선 이유다.
 
지난주 공연된 국립발레단의 ‘KNB 무브먼트 시즌 4’는 일찌감치 전석예약되며 이목을 집중시켰다. 강수진 예술감독 취임 이후 매년 한 차례씩 단원들에게 안무 기회를 주는 장인데, 예상외의 성과를 거두고 있기 때문이다. 시즌1에서 ‘요동치다’를 선보인 강효형은 지난해 ‘브누아 드 라 당스’ 후보에 올랐고, 최근 칠레 산티아고발레단에 초청돼 신작 발표까지 했다. 지난해 국립 레퍼토리로 개발된 그의 ‘허난설헌-수월경화’는 이미 중남미 투어를 다녀왔고, 평창 올림픽 에서 공연도 했다.  
국립무용단 '넥스트 스텝' 중 이재화의 '가무악칠채'

국립무용단 '넥스트 스텝' 중 이재화의 '가무악칠채'

엄격한 심사나 대단한 교육을 받는 건 아니다. 원하는 모든 단원에게 기회를 주고 아무 제약 없는 창작의 자유를 주고 있는데, 그간 기회가 없었던 단원들의 ‘포텐’이 터져 바로 가시적인 성과를 내고 있는 것. 올해는 박나리· 이영철 등 8명이 안무가로 나서 눈에 띠게 발전된 창작 기량을 보여줬다는 평가를 받았다.  
 
국립무용단도 지난 시즌 시작한 ‘넥스트 스텝’ 프로젝트에 더욱 힘을 싣고 있다. 30분짜리 소품으로 제작됐던 이재화의 ‘가무악칠채’가 이번 시즌 업그레이드 신작으로 라인업됐고, ‘넥스트 스텝’ 시즌2도 이미 오디션을 마쳤다. ‘넥스트 스텝’도 ‘KNB 무브먼트’처럼 단원들에게 안무 기회를 주지만, 오디션으로 선발하고 멘토단을 꾸려 제작 능력을 전수하는 인큐베이팅 컨셉트라는 점이 다르다.  
 
국립현대무용단이 올해 시작한 안무 공모 프로젝트 ‘스텝업’(9월 6~9일 예술의전당)은 성격이 좀 다르지만 가장 열기가 뜨겁다. 장르 특성상 무용수이자 안무가인 현대무용가 전체를 대상으로 해서다. 초연 후 아쉽게 묻힌 작품을 발굴해 레퍼토리로 키워주는 프로젝트로, 설자리가 절실한 현대무용가들에겐 큰 기회다. 지난해 12월 시작된 공모에 총 69명이 응모했는데 “국내 현대무용가 거의 모두가 응모했다”는 얘기가 나올 정도로 경쟁이 치열했다. 해외 유명 프로그래머 3명을 포함한 서류 전형과 인터뷰, 쇼케이스를 거쳐 선정된 배효섭·이은경·정철인의 작품은 심사과정에서 논의된 개선안을 바탕으로 업그레이드 버전으로 제작중이고, 기획팀은 국내외 유통 플랫폼을 구축하고 있다.  
국립발레단 'KNB무브먼트' 중 강효형의 '요동치다'

국립발레단 'KNB무브먼트' 중 강효형의 '요동치다'

 
이런 흐름은 뒤늦은 감이 없잖다. 좋은 안무가 없는 좋은 무용 공연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장인주 무용평론가는 “안무가 부재는 기르지 않았기 때문”이라며 “그동안 선수만 기르다 이제 감독의 중요성을 절실히 느끼는 단계다. 국립 단체들이 무용수를 안무가로 길러 보겠다는 생각을 가진 것만 해도 큰 수확”이라고 평했다. 파리오페라 발레단의 경우 1975년 현대무용가 카롤린 칼송을 초대해 안무 리서치그룹을 만들었고, 그것이 지금 쟁쟁한 프랑스 안무력의 모태가 됐다는 것이다. “그간의 안무가 지원제도는 인큐베이팅 시스템을 구축하지 않았다. 무용수들에게 좋은 멘토를 매칭시키고, 기회를 자꾸 줘야 한다. 무용수들도 소재나 표현방식 면에서 열린 태도로 뛰어드는 게 안무가 변신의 관건”이라는 게 그의 말이다.  
 
글 유주현 객원기자 yjjoo@joongang.co.kr  
사진 국립무용단·국립발레단·국립현대무용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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