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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공작’ 속 안기부 총풍 사건, 대법 판결은 “조직적 요청 없었다”

영화 ‘공작’에서 대북공작원 ‘흑금성’이 방북, 김정일을 만난 장소로 등장한 곳. 김일성의 모습이 담긴 벽화가 두드러진다. [사진 CJ엔터테인먼트]

영화 ‘공작’에서 대북공작원 ‘흑금성’이 방북, 김정일을 만난 장소로 등장한 곳. 김일성의 모습이 담긴 벽화가 두드러진다. [사진 CJ엔터테인먼트]

지난 8일 개봉한 첩보영화 ‘공작’은 국가안전기획부(국가정보원 전신)의 공작원 ‘흑금성’이 된 국군 정보사령부 출신 군인(박채서)에 대한 얘기다. 1990년대 후반 안기부와 구여권(자유한국당의 전신인 한나라당) 인사들이 북한을 끌어들여 총선과 대선에 영향을 미치려 했다는 ‘북풍’, 그리고 북한에 판문점 총격을 요청했다는 ‘총풍’ 사건을 집중 조명한다. 언론인 김당씨의 『공작』이 토대다.
 
영화 도입부에 “실화를 모티브로 만들어진 픽션(허구)”이라고 돼 있다. 윤종빈 감독은 하지만 중앙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제가 보기에 크로스체크하기 불가능한 팩트들이 너무 많다”면서도 “제가 봤을 때 (책이) 굉장히 디테일해 소설 같지 않다”고 말했다.
 
실제론 어떨까. 당시 어떤 일이 있었는지, 영화에서 거론된 사안을 위주로 추적했다. 대부분 법원의 판결이 내려진 사안이다.
 
 
[그래픽=박춘환 기자 park.choonhwan@joongang.co.kr]

[그래픽=박춘환 기자 park.choonhwan@joongang.co.kr]

① 총풍 사건에 안기부 개입했나
 
영화 ‘공작’엔 안기부장이 대선 국면에서 김대중 후보를 낙선시키기 위해 북한을 활용하란 지시를 하자 안기부 해외조사실장이 여당 의원과 정치권 유력자와 함께 베이징에서 북측 인사들을 만나, 도발 요청을 한 것으로 나온다. 이 과정에서 400만 달러의 금품을 제공하겠다는 약속을 했다고 묘사했다.
 
이 부분은 그러나 대법원 판결과는 거리가 있다. 총풍 사건에도 3인이 등장하는데 청와대 3급 행정관인 오정은씨와 장석중(대북 사업가)·한성기(진로그룹 장진호 회장 개인 고문)씨다. 이회창 당시 한나라당 후보의 당선을 위해 뛰던 사람들이긴 했다. 이들 중 한성기·장석중씨가 97년 12월 12일 베이징 캠핀스키 호텔에서 북한 대외경제위원회 소속 이호남(당시엔 이철운이란 가명 사용)과 아태평화위 참사 박충 등을 만났다. 이호남은 95년 5월 이래 박채서씨의 대북정보수집 파트너였다.
 
대법원은 “오정은·한성기·장석중이 모여 대선 관련 이야기를 하던 중 한성기·장석중이 베이징에 가서 북측 사람들을 접촉하게 되면 북한의 남한 대선 관련한 동향을 알아보기”로 한 사실은 인정했으나 “(피고인들 간) 북측 인사에게 무력시위를 요청하기로 모의했는지 인정하기엔 불충분하다”고 판단했다. 무력 시위 요청 발언을 한 한성기씨를 두곤, “휴전선 또는 판문점 공동경비구역에서의 무력시위로부터 북한 측 대성리 마을에 해당하는 민간인 2~3명이 탈출하는 것으로 변경, 축소 진술하고 북한에 요구하였다는 나머지 사항도 진술에 일관성이 없다”며 “한씨의 진술을 피고인들 간 무력시위 요청 모의의 증거로 삼긴 어렵다”고 판단했다. 앞서 항소심도 "공직자 등이 관여한 조직적 총격 요청은 없었다”고 봤다.
 
반전은 또 있다. 오정은·장석중씨는 99년 안기부 수사 과정에서 고문을 당했다고 국가를 상대로 손해배상청구소송을 냈다. 2008년 7월 대법원 민사2부는 “장씨 등이 수사기관으로부터 구타와 가혹행위를 당한 사실이 인정되고 수사기관이 단정적인 표현으로 피의사실을 공표해 인권을 침해했다”며 국가가 배상해야 한다는 판결을 확정했다.
 
 
② 흑금성의 정체는 어떻게 드러났나
 
영화에선 흑금성의 신분이 대통령 선거 후 안기부에 의해 공개된 것으로 나온다.
 
실상은 이보다 복잡하다. 대선 국면에서 김대중 후보에게 불리한 북한 관련 사안이 불거진 데 대해(북풍) 김대중 정부 출범하고 나서 집중적인 조사가 있었다. 이른바 1998년 판 ‘적폐청산’이었다.
 
안기부 대북 라인들이 대거 물갈이됐고 일부는 구속됐다. 그중 한 명이 이대성 안기부 해외조사실장이다. 구속 전인 98년 3월 30년 지인이었던 국민회의(더불어민주당 전신)의 정대철 부총재에게 “‘이런 식으로 안기부를 파헤치면 대북활동이 마비된다’는 것을 알리고, 이 같은 뜻을 여권의 고위층에 전하고 설득해 달라”며 문건을 건넸다. 이른바 북한과 관련한 첩보를 담은 ‘이대성 문건’이다. 여기에 흑금성의 존재가 기술돼 있다. ①번에 기술된 여당 의원의 금품설은 물론이고 야당 의원 이름도 나온다.
 
이 문건은 곧바로 공개됐고 정국을 뜨겁게 달군 소재가 됐다. 연이어 흑금성이 3년 동안 정보사령부에서 복무한 뒤 전역한 박채서씨란 사실도 드러났다.
 
이후 일부 언론에서 “대선에서 승리한 요인 중 하나로 국민회의의 북풍 대책팀의 정보력을 꼽고 있는데 그 비결이 박채서”라고 후속보도하기도 했다. 당시 검찰은 ‘문건내용 상당수가 사실이 아니거나 부풀려진 것’이란 결론을 내렸다고 한다.
 
 
③ 이효리 삼성 애니콜 광고에 흑금성 관여?
 
그렇다. 박채서씨가 전무로 있던 아자커뮤니케이션(대표 박기영)이 97년 2월 베이징에서 금강산총회사와 평양·백두산·금강산·묘향산 등에서 광고 촬영을 하는 5년 독점 계약을 체결했다. 98년 3월 박채서씨의 신분이 드러나며 광고 논의는 전면 중단됐다. 이에 아자 측은 “이 책임이 흑금성을 위장 취업시킨 안기부에 있다”며 손해배상금 78억원을 청구하는 소송을 냈다. 법원은 2003년 “국가는 6억5000만원을 지급하고 화해하라”는 화해 권고 결정을 내렸다.
 
법원 판결에 따르면 대북공작원을 그만둔 후에도 박채서씨는 이호남과 만났다. 2004년 남북합작 광고 사업을 하기로 하고 결국 2005년 이효리와 북한 무용수 조명애가 출연하는 광고를 촬영했다. 박채서씨는 KBS 관련 일을 하기도 했다.
 
 
④ 박채서씨의 2005년 이후 행보는
 
박채서씨는 2010년 국가보안법 위반죄로 6년형을 선고받고 2016년 만기 출소했다. 법원 판결문에 따르면 이호남에게 작계 5027 등 기밀서류를 넘겨서다. 그 시작은 2003년 3월 개성공업지구 내 골프장을 포함한 리조트 건설사업 때문이었다. 이호남이 “개성지역은 군사지역이기 때문에 군부의 협조가 필요하다. 그래서 북한 군부에 필요한 정보나 자료를 주면 내가 군부를 한번 설득해 보겠다”라고 말하자 박씨가 군사 교범과 작계 5027 등을 넘겼다는 것이다.
 
고정애 기자, 박용한 군사안보연구소 연구위원 ockha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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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급변사태와 안정화 전략’을 주제로 북한학 박사를 받았다. 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ㆍ군사기획연구센터와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북한연구센터에서 군사ㆍ안보ㆍ북한을 연구했다. 2016년부터는 중앙일보에서 군사ㆍ안보 분야 취재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