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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향기] 귀한 땅 탐라

성기완 밴드 앗싸 멤버·계원예술대학교 융합예술과 교수

성기완 밴드 앗싸 멤버·계원예술대학교 융합예술과 교수

탐라는 귀한 땅이다. 탐라는 용암의 붓질로 태어난 불의 딸이다. 수십 만 년 전 용암이 흐르다 땅에 아로새긴 자국이 아직도 여기저기 선명하다. 김정희의 추사체가 제주 귀양 중에 나온 건 우연이 아니다. 추사의 획은 제주 현무암의 자태를 닮았다. 용처럼 튀어 오르다 불꽃처럼 터진다. 땅속에서 참다못해 붉은 용암으로 솟아오른 대지의 기운이 남아 있어 제주는 여전히 뜨겁다. 제주는 한반도에서 가장 젊은 땅, 정열의 땅이다. 그래서 제주는 사랑의 섬이다. 연인들은 제주를 찾으면 더 뜨거워진다. 제주 전체가 따스한 현무암 온돌이다. 그 위에서 사랑은 오렌지빛 감귤처럼 무르익는다.
 
이처럼 땅은 젊으나 말은 한반도에서 가장 예스럽다. 알다시피 제주 방언에는 모음 ‘아래아(.)’가 살아 있다. 어미 구사에도 한국말의 과거가 간직되어 있다. 제주분들이 아래아 발음하는 걸 들으면 ‘아’보다는 ‘오’에 가깝다. 아래아 발음을 잃어버린 게 왠지 아깝다. 아깝다를 제주 말로 ‘아꼽다’라고 하는데, 이 ‘아꼽다’에도 아래아가 들어 있다. ‘아꼽다’는 제주 말로 ‘귀엽다’ 또는 ‘예쁘다’는 뜻이다. 이중의 의미로 제주 말은 아꼽다. 예쁘고, 또한, 아깝다. 과거를 녹음해 놓은 제주방언은 우리의 진귀한 문화유산이다.
 
제주에는 세 겹의 시간이 동시에 흐른다. 다른 지역 사람들은 이해할 수 없는 시간적 중층성이 제주의 무의식에 자리 잡고 있다. 그 시간들은 돌의 시간, 바람의 시간, 여인의 시간이다. 그중에서 가장 깊은 시간은 돌의 시간이다. 제주의 시간은 뜨거운 용암의 방석을 깔고 있다. 여전히 식고 있는 이 따스한 돌의 기운이 매순간 다른 시간들을 지배한다. 그래서 제주 사람들의 무의식 깊은 곳에는 불의 기억이 간직되어 있다. 돌의 시간은 불의 시간이고, 그것이 제주에 사는 뭇 존재들을 태어나게 한 자궁이다.
 
삶의 향기 8/11

삶의 향기 8/11

돌의 시간이 맨 밑바닥이라면 그 위로 흐르는 시간의 겹은 바람의 시간이다. 바람의 시간은 희로애락이다. 제주의 바람이 짙은 녹색의 나무들을 키웠다. 푸른 파도 소리를 연주하고, 드높은 제주만의 구름동산을 그려낸다. 그러나 그와 동시에 제주의 바람은 아픔과 슬픔을 가져다준다. 방파제를 삼켜버릴 듯 드높게 일렁이는 파도는 바람의 분노 때문이다. 바람은 달콤하게 속삭이다 이내 화를 낸다. 변덕이 많은 바람소리를 듣는 이들이 제주 심방(무당)들이다.
 
바람의 시간이 희로애락이라면 여인의 시간은 할망의 시간이다. 할망은 돌과 바람의 노래를 듣는다. 할망의 시간은 한의 시간이다. 돌의 시간, 바람의 시간이 ‘자연의 시간’이라면, ‘여인의 시간’은 역사의 시간이다. 할망의 시간은 사람들이 만들어가는 시간이다. 제주도는 천혜의 아름다운 섬이지만 그 역사는 우리 모두가 알 듯 가시밭길이었다.
 
제주는 한반도의 미니어처다. 참 묘한 것이, 용두암의 모양도 한반도와 닮았는데 한라산 꼭대기에 가보면 꼭 그 용두암처럼 한반도를 닮은 작은 현무암들이 무수히 많다. 제주를 보면 땅은 브로콜리처럼 자라는 게 아닌가 여겨지기도 한다. 브로콜리는 아주 잘게 쪼개도 브로콜리다.
 
백두산에 천지가 있고 한라산에 백록담이 있다. 우리 땅의 아래위에 두 신성한 호수가 마치 낙관처럼 찍혀 있다. 이 땅에 깃들어 살아온 사람들의 상상력은 천지의 운무에서 시작해 백록담의 안개로 끝을 맺는다. 산꼭대기의 이 호수들은 저 멀리 북쪽 시베리아 너머 하늘과 맞닿아 있는 바이칼 호수를 연상시킨다. 바이칼 호수가 어머니라면 천지가 그 아들이요 백록담이 딸이다. 제주는 전체가 한라산이기도 하다. 한라산은 모성, 할망이다. 제주는 여성적이다. 그래서 여성의 기운이 상대적으로 더 활발하게 느껴진다. 제주는 배달의 미래, 마침표다. 제주는 백두대간의 화룡점정이다.
 
성기완 밴드 앗싸 멤버·계원예술대 융합예술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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