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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재승 칼럼] 스마트시티를 위한 100일

정재승 KAIST 바이오및뇌공학과 교수 미래전략대학원장

정재승 KAIST 바이오및뇌공학과 교수 미래전략대학원장

지난 5월 초 스마트시티 국가시범도시인 세종(5-1생활권)의 마스터플래너(총괄기획가)로 선정된 후 100일이 지났다. 올여름은 유난히 더웠지만, 내게도 지난 100일은 그 어느 때보다 뜨거운 시간들이었다. 때론 설레고 흥분되었고, 가끔은 고통스럽고 답답했으며, 줄곧 머리가 깨질 듯 고민스러운 나날들이었다.
 
마스터플래너로 선정된 후 시행사인 한국토지주택공사(LH)를 처음 만난 날, 그들과 나눈 대화를 지금도 잊을 수 없다. 그들에게 간단히 경과보고를 받는 자리에서 스마트시티에 대한 마스터플래너로서의 비전과 구상을 소개하자, 그들이 내게 던진 한마디. “마스터플랜(기본구상)을 직접 만드시게요?” 어리둥절하여 나도 물었다. “마스터플래너가 하는 일이 그거 아닌가요?” 그런데 돌아온 대답은 더욱 황당했다. “마스터플랜은 저희가 용역회사를 통해 만들겠습니다. 마스터플래너는 저희가 만든 마스터플랜을 보시고 자문만 해주시면 됩니다.”
 
실제로 토지주택공사가 수많은 신도시와 유시티(U-city)를 만들었지만, 지금까지 마스터플래너는 마스터플랜을 자문만 했다는 것이다. 실제로 마스터플래너 운영에 대한 규정에도 마스터플래너의 역할이 ‘자문’으로 정의돼 있었다. 그래서는 철학과 비전을 기본구상 안에 제대로 담을 수 없다. 지금까지 만들어진 신도시와 유시티들이 아무런 비전과 철학도 없이 왜 똑같은 모양으로 찍어내듯 만들어졌는지 이제야 이해하게 됐다.
 
마스터플래너로 선정돼 제일 먼저 한 일은 국토부를 통해 ‘스마트도시 총괄기획가 운영에 대한 규정’을 새로 만드는 일이었다. 이 규정의 내용이 뭔 줄 아나? ‘마스터플래너가 마스터 플랜을 만든다’는 내용이다. 이 당연한 걸 만드느라 지난 100일 동안 제대로 임명도 받지 못한 채, 예산 지원도 없이 마스터플랜 초안을 만든 것이다.
 
단언컨대, 어느 도시든 용역회사는 마스터플랜을 제대로 만들 수 없다. 비전을 가진 총괄기획가가 도시에 대한 자신의 철학을 바탕으로 시민을 위한 도시를 만들어야 한다. 그것이 지역 활성화의 시작이며, 관광과 여행 중심의 출발이며, 도시 수출의 근간이다. 어디를 가든 똑같이 생긴 무채색의 도시들로는 서울 혹은 세계의 어느 도시들과도 삶의 터전으로서나 여행지로서 경쟁할 수 없다.
 
마스터플래너가 되어 그간의 도시계획을 들여다보니, 지금까지 한국의 도시계획은 도시를 2차원적으로만 바라봐 왔다. 용도에 맞게 주거지역과 상업·업무지역을 나누고, 최대한 높은 분양가를 받아 땅을 팔 수 있는 도시개발에 치중했다. 도시계획가는 도시를 3차원으로 바라보고 설계해야 한다. 그래서 스마트시티 세종에는 ‘형태 기반 코드’를 사용해 3차원적으로 도시 외형을 관리하고, 용도거래제를 도입하고, 특정 지역은 분양이 아니라 장기임대 방식으로 국가가 토지를 직접 운영하는 방식 등을 넣자고 했다. 사실 도시계획가는 시간 축까지 고려해 도시를 4차원적으로 바라봐야 한다. 그래야 특정 대기업이 공장을 폐쇄하면 곧바로 좀비도시가 되는 오래된 폐해를 막을 수 있다.
 
스마트도시란 도시에서 벌어지는 모든 활동을 데이터로 포착해, 시민의 삶의 질을 높이고 도시의 지속가능성을 향상하며 창조적 기회를 확대하는 도시다. 앞으로 우리는 다음 세대를 어떻게 교육할 것인가를 고민하지 않고 학교를 지을 수 없다. 도시는 어떻게 국민 건강을 증진할 것인가에 대한 이해 없이 도시의 헬스케어 서비스를 기획할 수 없다. 인구 100만명 이하의 작은 도시에서 문화행사가 끊임없이 벌어지게 하려면 어떤 테크놀로지를 사용해야 하는가를 모르고 문화시설을 지을 수 없다.
 
스마트시티의 구상은 도시개발계획이 아니라, 미래 문명에 대한 비전을 구현하는 포괄적이고 총체적인 과정이다. 지금까지 토지주택공사나 국토해양부가 한 번도 고민해본 적 없는 계획을 세워야 하는 것이다. 따라서 과기정통부 등 다양한 부처의 적극적인 협력이 필요하다. 하지만 지난 100일 동안 받은 인상은 스마트시티 사업에 적극적으로 협력하는 부처는 없었다. 내심 ‘국토부가 어디 잘하나 보자’하는 태도뿐이었다.
 
도시민들에게 제대로 서비스를 제공하고 끊임없이 개선하려면, 도시 데이터를 통합해 모으고 운영하며 서비스를 개발할 능력 있는 주체가 필요하다. 민간과 정부, 지자체가 함께 특수목적회사를 만들어 운영할 필요도 있다. 그러나 지금은 규제가 너무 심해서 어떤 것도 시도할 수 없다. 스마트도시 특별법이 발의되고 규제 샌드박스가 필요하다는 얘기는 줄기차게 나오지만, 진도는 턱없이 느리다. 누구나 규제에 제한받지 말고 자유롭게 상상하라 하지만, 여전히 악마는 규제의 디테일에 있다. 결국 현장으로 내려가면 아무것도 바뀌지 않고 있다.
 
기본구성안을 제대로 만들기 위해서는 다양한 부처와 관련 기관의 의견도 듣고, 해외 사례도 철저히 검토하고, 입주할 시민들을 미리 뽑아 그들의 목소리도 들어야 하는데, 시간이 없다고 한다. 첫 입주자가 이번 정부 내에 나와야 한다는 일정에 맞춰져 있기 때문이다. 수백 년을 견뎌낼 도시를 만드는 것을 한 정부 내에서 완성해야 한다면, 도시 문명엔 희망이 없다.
 
정재승 KAIST 바이오및뇌공학과 교수·미래전략대학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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