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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상에 빠진 박찬호 “화려함은 더 화려한 것에 잊혀져”

[SPECIAL REPORT] 배영대의 명상만리 
명상하는 메이저리거 박찬호. 명상을 했기에 통산 124승에서 멈출 수 있었다고 한다. 그 이상은 집착이라고 했다. LA 다저스에서의 화려함, 텍사스 레인저스에서의 암울한 시간 모두 소중한 경험이라고 했다. [김경빈 기자]

명상하는 메이저리거 박찬호. 명상을 했기에 통산 124승에서 멈출 수 있었다고 한다. 그 이상은 집착이라고 했다. LA 다저스에서의 화려함, 텍사스 레인저스에서의 암울한 시간 모두 소중한 경험이라고 했다. [김경빈 기자]

메이저리거 박찬호 선수는 어려서부터 ‘멍때리기’를 좋아했다고 한다. 아무 판단 없이 특정 사물을 바라보며 머리를 비우곤 했다. 지금 와서 돌아보니 다 명상이었다.
 
매일 공 하나에 승부가 엇갈리는 그라운드. 박찬호의 눈에 다른 선수들도 집중력을 높이는 저마다의 방법을 구사하고 있었다. 어떤 선수는 잔디 위 개미를 찾기도 했다. 명상이란 말을 사용하지 않았을 뿐이다. “답답하면 ‘후유’ 하고 한숨을 내쉬잖아요. 그게 잠시 명상일 수도 있어요.”
 
박찬호에게 명상이란 무엇인가. 간략한 답변을 요구하자 “뇌가 쉬는 시간”이라고 했다. “부정적인 생각이 들 때 잠시 머리를 쉬는 거죠.” 명상을 통해 몸과 마음의 힐링을 체험했다고 한다. 성적도 향상됐다. 하지만 명상은 눈에 보이는 승률 그 이상이었다고 한다. “내가 겪고 있는 상황을 이해하고, 한두 발 물러서서 생각할 수 있는 능력을 키웠다고 할까요.”
 
메이저리그 투수 베리 지토(오클랜드 애슬레틱스) 역시 명상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지토는 저와 같은 세대인데 이 선수도 명상하고 나서 잘했고, 저도 명상하고 나서 성적이 좋았어요. 제가 최고의 성적을 냈던 2000년도 시즌 때는 잠깐 집중해서 앉았다 하면 1시간이 훅 가곤 했어요. 그때는 절체조를 많이 했어요.”
 
공주고를 졸업하고 1992년 한양대에 진학한 박찬호는 2학년까지 다니다 94년 LA 다저스에 정식 입단한다. 한국인 최초의 메이저리거. 97년부터 선발로 등판해 좋은 성적을 거두었지만 98년 무렵부터 남모를 허리 통증으로 고생했다. 박찬호가 이때 처음 접한 것은 불교 참선이었다. 2000년 무렵부터 ‘리탐빌’ 요가명상센터 설립자 서무태씨를 만나 명상을 하게 됐다. 2000~2001년 에이스급으로 활약하며 전성기를 누리다 2002년 FA 자격을 획득하며 텍사스 레인저스로 이적했다.
 
절체조?
“108배 먼저 하고 명상에 들어갔어요. 절체조가 몸의 전체 관절을 구부렸다 폈다 하는 것이거든요. 한 동작을 반복하면 집중력이 생기는데, 집중력은 인내력에서 나옵니다. 그때 108배를 매일 했어요. 몸의 에너지를 통해 정신적인 깨달음도 얻게 돼요. 행복함, 감사함 이런 것들….”
 
일본과 한국 프로야구에서도 활동했다. 일본 프로야구 선수들은 어떤가. 명상은 동양 전통이 원류인 것 같은데.
“글쎄 이게 동양의 문화라고 알려져 있지만 저는 또 반대라고 생각해요. 오히려 서양 사람들이 일상에서 메디테이션(meditation·명상)이란 말을 안 써도 자연스럽게 잘하고 있는 것 아닌가 생각해요. 동양은 외적인 것에 집중해요. 서양에서는 내적인 것, 나 중심적이죠. 어떻게 보면 이기적으로 보이는데 사실 그게 시작이에요. 나 스스로 나에게 집중해 나를 성장시킴으로써 팀이 좋아지고 집단이 좋아지며 사회가 좋아지는 것이죠.”
 
유교의 수기안인(修己安人·자신을 수양한 후 남을 편안하게 한다), 불교의 자리이타(自利利他·자기가 깨달은 후 남을 구제한다) 정신과 비슷하다.
“같은 느낌일 것 같아요. 그런데 일상적으로는 서양인들이 더 체화하고 사는 느낌이 들어요. 저는 야구를 통해 접목시키는데, 팀 미팅을 할 때 한국은 감독이나 코치·선배·주장 중심이에요. 미국에선 각자가 다 중심이에요. 그 다양함을 매니징해서 한 팀으로 만드는 게 감독과 코치 같은 매니저의 역할이에요. 굳이 그 사람을 숭배할 필요는 없어요. 존경할 수는 있어도.”
 
명상하는 메이저리거 박찬호. 명상을 했기에 통산 124승에서 멈출 수 있었다고 한다. 그 이상은 집착이라고 했다. LA 다저스에서의 화려함, 텍사스 레인저스에서의 암울한 시간 모두 소중한 경험이라고 했다. [김경빈 기자]

명상하는 메이저리거 박찬호. 명상을 했기에 통산 124승에서 멈출 수 있었다고 한다. 그 이상은 집착이라고 했다. LA 다저스에서의 화려함, 텍사스 레인저스에서의 암울한 시간 모두 소중한 경험이라고 했다. [김경빈 기자]

박찬호는 1999년 무렵 슬럼프에 빠졌을 때 다저스의 동료 베테랑 투수 케빈과의 일화를 소개했다. “신시내티로 원정 갔을 때 자기 방으로 오래요. 갔더니 노인 한 분이 계시더라고요. 케빈 브라운의 심리치료사(심리학 박사)였어요.” 케빈 브라운이 다른 주에 있던 심리치료사를 박찬호를 위해 초대했다고 한다.
 
그 심리치료사도 명상을 하는 분인가.
“그런 것 같아요. 저의 커리어가 성공했다면 그분이 만들어 준 스위치 덕분일 수 있어요. 용기의 스위치, 도전의 스위치 등 많아요. 명상하면서 부정적인 스위치를 끄고, 용기 스위치를 켜면 용기의 빛이 생기는 것 같고 몸이 가벼워지고 그래요. 저 말고도 그분이 도와준 다른 많은 선수가 있어요.”
 
어떻게 도움을 주었나.
“처음 만났을 때 30분 정도 제 얘기를 했더니, 그분이 하는 말이 너의 얘기 좀 해보라고 하더라고요. 한국 언론 얘기, 고마운 사람, 밥 사줬던 사람, 어머니 등을 얘기했는데 다 내 얘기가 아니라는 거죠. 결국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한 가지라고 했어요, 마운드에서 포수 미트에 정확히 공을 집어넣는 것. 타자를 못 치게 하는 것이 아니고 정확히 집어넣는 거래요.”
 
투수들은 포수 미트에 공을 넣는 연습을 수도 없이 하지만 게임에 나와서는 타자를 아웃시키려고 한다. 안타를 맞으면 안 된다는 생각이 긴장을 가져온다. “타자는 내가 아니고 게임도 내가 아닙니다. 손끝에서 공이 빠져나갈 때의 느낌이 있어요, 그 느낌만이 제것이에요. 그 감각을 찾기 위해 수없이 연습하는데 정작 마운드에 올라서는 연습한 것을 안 써먹고 다른 것을 쓰는 거죠. 타자 생각, 관중 반응, 언론 반응 등은 내가 할 일이 아니라는 거죠.”
 
메이저리그 개인 통산 124승, 아시아 투수 최고 성적 ‘코리안 특급’. 박찬호 선수에 대한 일반적 소개인데, 은퇴 이후 ‘명상가’라는 설명이 하나 더 늘었다. 둘 중의 하나를 고르라면.
“은퇴 이후의 명상가가 아니고, 그 훨씬 전에 명상을 했어요. 명상가였기에 124승을 할 수 있었고, 또 명상가였기에 124승에서 스톱을 할 수 있었다고 봅니다. 명상을 하지 않았다면 125승, 130승을 향해 달려갔을 거예요. 그건 집착이었고, 여기까지 오는 과정이 중요했다는 것을 명상을 통해 깨달았어요. 아시아 최고 선수 이런 수식어가 달갑지는 않아요. 언젠가는 없어질 것이기에. 안 없어지는 것은 거기까지 가는 과정 속의 저의 깨달음이에요.”
 
메이저리거는 야구를 넘어 ‘인생의 메이저리거’를 꿈꾸는 것 같다. 운동을 통해, 명상을 통해 인간이 어떻게 성숙해 가야 하는지를 보여주는 듯하다.
 
“언젠가 일본 선수 누군가가 125승을 하면 한국 사람들은 또 다른 수치, 실망을 느낄 수도 있어요. 그런 것은 정말 아무것도 아니라는 생각이 들어요. 정말 중요한 것은 한국 선수가 메이저리그에 처음 진출해 124승 기록을 세우기까지 그 과정에 어떤 일이 있었는지, 다저스에서의 화려함도 있었지만 텍사스에서의 어두운 암울한 시간도 있었는데, 오히려 사람들과 진정성 있는 소통을 할 수 있는 것은 뭘까요. 암흑 속에서 극복한 정신과 경험 이런 것들입니다. 다저스에서의 화려함은 언젠가 더 화려한 것 속에서 잊혀 가요.”
 
박찬호가 만든 명상 ‘미안해, 고마워, 사랑해’ 긍정 에너지 퍼뜨려
박찬호 선수와 명상에 관해선 지금 글을 쓰는 기자와도 오래전 ‘작은 인연’이 있다. 2003년 어느 날 중앙일보에서 야구전문기자로 이름을 날리던 이태일(전 NC 다이노스 대표)씨가 학술기자이자 동기인 내게 찾아와 이렇게 말했다. “박찬호 선수가 요즘 마음공부 명상에 관심이 많은 것 같아. 미국 출장 가는데 그에게 소개해 줄 만한 책 좀 없을까?”
 
당시 나는 숭산 스님의 책을 권해 주면서 이렇게 생각했었다. ‘최고 수준에 오른 강한 체력의 메이저리거가 명상을 한다니… 너무 나약한 것 아닌가.’ 명상의 마음공부가 결코 나약한 것이 아니라 진정 강한 자만이 할 수 있는, 아니 강함과 약함의 이분법 경계를 뛰어넘는 자만이 할 수 있는 수행임을 어렴풋이라도 느끼게 된 것은 그로부터 많은 시간이 흐른 후였다.
 
사상 최고의 찜통더위가 기록을 연일 경신하던 8월 1일 오전 10시. ‘코리안 특급’ 메이저리거 박찬호는 천천히 눈을 감았다. 이날 그가 찾은 곳은 서울 이태원동에 있는 ‘리탐빌’ 요가명상센터.  
 
은퇴 이후 명상은 이제 그의 일상이 됐고, ‘박찬호만의 명상’도 하나 만들었다고 한다. ‘미안해, 고마워, 사랑해’ 명상이다. “제가 상당히 힘든 적이 있었어요. 극단적인 생각도 하고 그랬습니다. 내 몸에게 미안하단 생각이 들었어요. 너무 아프니까. 여기저기 매일 파스를 붙여야 하고. 내 몸에게 미안하다고 그랬어요. ‘미안해’ 한 번 하고 호흡 길게 하고, 그렇게 하다가 나중에는 고맙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래서 ‘고마워’ 그러고 호흡 한 번 하고 그럽니다. 지금까지 내 생각을 100% 따라준 것은 내 몸밖에 없다는 생각을 하니까 내 몸이 굉장히 고맙고 사랑스러웠어요. 그래서 ‘사랑해’ 하고 호흡 한 번 하고 그러지요.”
 
4년 전 남해 바닷가 소나무 울창한 사이에 앉은 사람들 앞에서 이 같은 명상 이야기를 하는데 어떤 젊은 여성이 막 우는 것을 보고 깨달은 바가 있었다. “여기 온 분들이 박찬호 보러 온 것이 아니라 자기 자신의 힐링을 하러 온 것이구나. 모든 사람이 다 상처와 고통을 겪는구나. 어떤 사람은 그걸 가볍게 생각하고, 어떤 사람은 깊게 생각해 아프고 하는구나…. 명상을 통해 그게 뭔지를 알면 그런 고통의 상황이 또 올 때 그걸 가볍게 생각하고 이해할 수 있는 노하우가 생기거든요. 생각의 차이인데, 그 생각의 차이 하나가 굉장히 큰 에너지를 만들어요. 그래서 자신의 몸과 마음을 힐링하고, 자기가 알게 된 어떤 성장이나 통찰력의 이로움을 다른 사람에게 전달할 수 있게 됩니다. 에너지의 패싱이라고 하죠.”
 
배영대 문화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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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8년 중앙일보 입사 이래 북한 문제와 양자 외교 관계를 비롯한 외교안보 현안을 오래 다뤘다. 편집국 외교안보부장ㆍ국제부장과 논설위원ㆍ도쿄총국장을 거쳤고 하버드대 국제문제연구소(WCFIA) 펠로우를 지냈다. 부소장 겸 논설위원으로 외교안보 이슈를 추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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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급변사태와 안정화 전략’을 주제로 북한학 박사를 받았다. 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ㆍ군사기획연구센터와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북한연구센터에서 군사ㆍ안보ㆍ북한을 연구했다. 2016년부터는 중앙일보에서 군사ㆍ안보 분야 취재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