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eLoad Image preLoad Image
검색 바로가기
주메뉴 바로가기
주요 기사 바로가기
다른 기사, 광고영역 바로가기
중앙일보 사이트맵 바로가기

62세에 메가폰 잡은 장난감 대통령 “내 정신연령은 열 살”

[박정호의 사람풍경] 극장판 애니‘헬로카봇’ 최신규 총감독 
‘헬로카봇’에 등장하는 공룡로봇 캐릭터와 함께 한 최신규 총감독.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헬로카봇’에 등장하는 공룡로봇 캐릭터와 함께 한 최신규 총감독.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정신연령이 열 살에 멈춘 건 아닌가.
“그런가. 아니, 그보다 더 어릴 수도 있다. (웃음) 항상 아이들을 생각하고, 아이들 장난감과 함께 사니까. 틈나는 대로 초등학교 문방구를 둘러보고, 대형마트에 가서도 요즘 아이들이 뭘 좋아하는지 살핀다. 사실 어른들은 아이들 마음을 잘 모른다. 아이들은 그들만의 눈으로 세상을 보니까….”
 
결례를 무릅쓰고 정신연령까지 들먹인 건 극장판 애니메이션 ‘헬로카봇-백악기시대’ 때문이다. 꼬맹이들의 단짝 친구인 로봇과 공룡이 어울리는 ‘헬로카봇’을 연출한 최신규 총감독은 올해 만 62세. 예순을 넘은 할아버지의 데뷔작이라는 게 믿기지 않았다. 이달 초 개봉한 ‘헬로카봇’은 9일 현재 전국 관객 72만을 찍으며 메가 히트작 ‘신과함께2’와 할리우드 대작 ‘미션 임파서블6’의 틈새에서 선전하고 있다. 2014년 시작한 동명의 TV 시리즈에 익숙한 아이들을 겨냥한 기획상품 가깝지만 캐릭터·이야기·화면 등 만듦새가 매끈하다. 현대와 1억년 전 백악기를 넘나드는 시공이동, 로봇으로 순간 변신하는 공룡 등 아이들이 빠질 만한 요소를 두루 갖췄다.

 
작품을 보면 사람을 알 수 있을까. 신 감독은 60대 나이보다 훨씬 어려 보였다. 짧은 머리에 청바지, 운동화 차림이 경쾌했다. 그는 뜻밖에 사회환원이란 묵직한 단어를 끄집어냈다.

 
영화도 사업이다. 환원이라니….
“지금까지 내 머리 속에 있는 것, 즉 그간 쌓은 노하우를 모두 돌려줘야 한다는 뜻이다. 그래서 경영 현장에서 물러나 크리에이터(창작자)가 되기로 마음먹었다. 그 첫 번째 작품을 내놓았다.”
 
그래서 총감독이란 말을 썼나.
“‘하얀 마음 백구’ 등 TV애니를 만든 지 20년이 넘어간다. 그간 기획·제작한 게 30여 편이다. 영화 ‘용가리’에도 투자했고, 극장용 애니 ‘오세암’도 선보였다. 장난감 제작·유통을 30년 넘게 했다. 캐릭터 상품·온라인 게임 등 다양한 시도를 했다. 이런 경험을 모아 우리 고유의 콘텐트를 만들려고 한다. 음악·영상·CG 등 애니 제작의 모든 것을 총괄했다. 오케스트라 지휘자 비슷하다.”
 
 
지금껏 휴가·여행 한 번도 간 적 없어

 
최씨가 만들어 히트한 탑블레이드 팽이 장난감. [중앙포토]

최씨가 만들어 히트한 탑블레이드 팽이 장난감. [중앙포토]

최 감독은 ‘장난감 대통령’으로 불린다. 외국 유명 캐릭터를 사와서 팔던 장난감 시장에 자체 상품을 기획한 ‘1세대 콘텐트 리더’로 꼽힌다. 2001년 나온 ‘탑블레이드’가 대표적이다. 줄을 당기면 팽이가 발사되는 신개념 팽이를 내놓았다. 아파트 숲에 갇힌 도시 아이들이 환호했다. 국내 완구시장 규모가 연 5000억원 규모인 시절, 2001~2002년 두 해 동안 국내외에 1조원어치나 팔았다.

 
2014년 ‘터닝 메카드’도 히트작이다. 자동차에 전자카드를 가까이 대면 바로 로봇으로 변신하는 세계 최초의 장난감이다. ‘터닝 매카드’의 성공은 ‘헬로카봇’ ‘공룡 메카드’로 이어졌다. 그가 창립한 손오공은 우리 완구산업의 견인차 역할을 했다. 그가 7년 전 펴낸 자전 에세이 제목은 『멈추지 않는 팽이』. 그는 “지금껏 휴가나 여행을 간 적이 한 번도 없다. 팽이는 멈추면 바로 죽는다. 눈을 감는 순간까지 좋아하는 일을 할 수 있으니 이보다 더 행복할 수 있을까”라고 했다.

 
그가 투자한 애니메이션 ‘오세암’의 한 장면. [중앙포토]

그가 투자한 애니메이션 ‘오세암’의 한 장면. [중앙포토]

공식 학력이 초등 3학년이다.
“아버지가 세 살 때 돌아가시고 어머니가 행상을 하며 5남매를 키웠다. 학교를 마칠 수 없었다. 열세 살 때 서울 영등포 금은방에 들어가 세공기술을 배웠다. 3년을 다녔다. 이후 주물공장에 들어가 금형·주조기술을 익혔다. 열아홉에 형과 함께 주물공장을 차려 수도꼭지를 만들었다. 83년 한 완구업자의 부탁으로 장난감 자동판매기를 만들면서 아이들과 인연을 맺게 됐다.”
 
어린 시절 장난감도 없었을 텐데.
“딱지와 구슬밖에 더 있었겠나. 당시 라디오 폐건전지를 주로 갖고 놀았다. 자동차도, 기차도, 비행기도 만들었다. 상상력을 펼쳤다. 초등 3학년 때의 즐거운 기분, 정신연령도 그때에 멈춘 것 같다.(웃음)”
 
어떻게 지금까지 올 수 있었나.
“80년대 중반 무독성 끈끈이 장난감이 대박을 쳤다. 벽에 던지면 착 달라붙어 꿈틀거리며 내려오는 ‘도깨비 손’을 기억할지 모르겠다. 사글셋방 부엌에서 연탄불에 재료를 녹이느라 화상도 숱하게 입었다. 얼추 3000만 개는 판 것 같다. 내 발명품 1호로 꼽는 작품이다.”
 
이후 승승장구를 한 모양이다.
“뒤집으면 톡하고 튀는 팝콘 장난감(점핑아이)도 히트작이다. 1300만 개 정도 나갔다. 독창성이 왜 중요한지 깨달았다. 2000년대 들어 IT완구와 온라인 게임에 투자하다 수백억 손해를 봤다. 그렇다고 좌절하지 않았다. 자신감을 잃지 않았다. 돈은 있다가도 없는 것이다. 어린 시절 가난의 밑바닥을 봤다. 더는 내려갈 데가 없었다. 신혼 때 여관방에서도 살았다.”
 
사업감각이 남다른 것 같다.
“초등학교 졸업장이 없으니 어디 받아주는 곳이 있겠나. 내가 사장이 되는 수밖에 없었다. (웃음) 부단히 궁리하고, 공부했다. 인생의 모토가 ‘살아 생전 성공은 없다’다. 많이 가진 사람은 조금만 잃어도 상실감이 크지만 없이 자란 사람은 낙담하지 않는다. 쓰러져도 어딘가 다시 일어설 방법이 있다. 문제는 창의력·상상력이다.”
 
그렇게 콘텐트에도 눈을 뜨게 됐고.
“인형·로봇 등 여태껏 만든 완구가 1000여 종에 이른다. 앞으로는 융합만이 살 길이다. 애니를 만드는 걸 놓고 장난감을 더 팔려 하는 게 아니냐는 시선이 있다. 억울하다. 그렇다면 마블이나 디즈니는 뭔가. 트랜스포머는 또 뭔가. 좋은 제품을, 훌륭한 작품을 내놓으면 돈은 따라온다. 돈이 목적이 되면 곤란하다.”
 
 
20~30년 내다보고 ‘애니’에 투자할 것

 
한국판 마블·디즈니를 꿈꾸나.
“그렇다. 20~30년 앞을 내다보고 투자하겠다. 극장용 ‘헬로카봇’ 2탄과 ‘공룡 메카드’를 준비 중이다. 지금은 유아용 애니지만 앞으로 가족용 애니로 키워갈 작정이다. 허황된 얘기라고 여겨도 좋다. 제 머릿속엔 성공과 실패의 경험이 들어있다. 그 보따리를 풀어놓겠다. 후배들을 위해 길을 닦겠다는 것이다. 무학인 나도 여기까지 왔는데 후배들은 분명 더 큰 길을 낼 것이다.”
 
결코 만만한 길이 아니다.
“한국영화가 몰라보게 커졌다. 20년 전 강제규 감독의 ‘쉬리’가 기폭제가 됐다. 산업적 기초가 단단해졌다. 외국에서 ‘아이돌 인형공장’으로 비판받던 K팝도 세계를 넘보고 있다. 애니도 마찬가지다. 잠재력이 충분하다. 곳곳에 흩어진 인력을 연결하면 된다. 아이를 덜 낳으니 애니 시장도 쪼그라들 것이라는 비관론도 있다. 정말 그럴까. 출산율이 높은 아프리카로 진출하면 되지 않은가. 아이들의 감성을 꿰는 눈을 길러야 한다.”
 
톰 행크스 주연 ‘빅’이 떠오른다.
“나도 봤다. 어린이가 원하는 장난감을 만들어 성공하는 30년 전 영화다. 거기에 답이 있다. 장난감은 교육이 아니다. 학습을 내세우면 쉽게 질린다. 무엇보다 즐거워야 한다. 그게 ‘아이의, 아이에 의한, 아이를 위한’ 일이다. 롤 모델이 피노키오의 제페토 할아버지다. 명함 뒷면에 ‘피노키오를 만든 제페토처럼…’ 문구를 찍어 넣었다. 제페토는 인생 말미에 걸작 피노키오를 빚어냈다. 나의 피노키오는 아직 탄생하지 않았다. 그날이 올 때까지 만들고, 만들고, 또 만들 것이다.”
 
‘헬로카봇’ OST도 직접 작곡·작사
헬로카봇-백악기시대

헬로카봇-백악기시대

‘엄마 엄마 부르는 아기염소 울음소리. 자장자장 자장가로 달래주세요.’ 극장판 ‘헬로카봇’에 나오는 노래 ‘엄마얼굴’이다. 시간을 거슬러 백악기로 건너간 주인공 꼬마가 한밤중에 눈가를 훔치며 멀리 떨어진 엄마를 그리워한다. ‘공룡 보러 가자’ 노래도 있다. ‘엄마 하고 가자 공룡 마을 가자. 아빠 하고 가자 공룡놀이 하자.’ 공룡을 직접 보고 싶어 하는 아이들의 마음을 건드렸다.

 
최신규 감독은 ‘헬로카봇(사진)’ OST도 직접 작곡·작사했다. “오지랖도 참 넓다” 했더니 그가 스마트폰을 꺼내 보였다. 그간 짬짬이 완성한 노래 목록이 떴다. 40개 가까이 된다. 대부분 녹음까지 마쳤다. 동요 ‘가위 바위 보’가 있고, 성인가요 ‘인사동’도 있다. “습작곡을 합하면 수백 곡은 되지 않을까요. 하하하.”

 
최 감독은 젊은 시절 한때 가수를 꿈꿨다. 1970년대 통기타가 유행하던 시절이었다. 틈날 때마다 뚱~땅 대며 기타를 독학했다. 피아노도 살짝살짝 쳤다. 이후 사업이 자리를 잡으며 여유가 생기자 인기 작곡가 정진석씨를 찾아가 발성·작곡 등도 배웠다.

 
“노래는 아니었어요. 제가 아무리 해도 송창식·이장희는 될 수 없잖아요. 분수를 안 거죠. 대신 작곡·작사는 할 수 있더라고요. 낮이든 밤이든 악상이 떠오르는 대로 적었습니다. 요즘은 컴퓨터로 웬만한 건 다 할 수 있어요. 음악가 명함을 내밀 정도는 아니지만 제가 즐거우면 되지 않나요. 앞으로 만들 애니메이션 음악도 제가 맡을 생각입니다. 저만큼 오래 아이들과 함께해온 이도 드물 테니까요.”
 
박정호 문화·스포츠 에디터 jhlogos@joongang.co.kr

구독신청

AD
온라인 구독신청 지면 구독신청

중앙일보 핫 클릭

PHOTO & VIDEO

shpping&life

뉴스레터 보기

김민석의 Mr. 밀리터리 군사안보연구소

군사안보연구소는 중앙일보의 군사안보분야 전문 연구기관입니다.
군사안보연구소는 2016년 10월 1일 중앙일보 홈페이지 조인스(https://news.joins.com)에 문을 연 ‘김민석의 Mr. 밀리터리’(https://news.joins.com/mm)를 운영하며 디지털 환경에 특화된 군사ㆍ안보ㆍ무기에 관한 콘텐트를 만들고 있습니다.

연구소 사람들
김민석 소장 : kimseok@joongang.co.kr (02-751-5511)
국방연구원 전력발전연구부ㆍ군비통제센터를 거쳐 1994년 중앙일보에 입사한 국내 첫 군사전문기자다. 국방부를 출입한 뒤 최장수 국방부 대변인(2010~2016년)으로 활동했다. 현재는 군사안보전문기자 겸 논설위원으로 한반도 군사와 안보문제를 깊게 파헤치는 글을 쓰고 있다.

오영환 부소장 : oh.younghwan@joongang.co.kr (02-751-5515)
1988년 중앙일보 입사 이래 북한 문제와 양자 외교 관계를 비롯한 외교안보 현안을 오래 다뤘다. 편집국 외교안보부장ㆍ국제부장과 논설위원ㆍ도쿄총국장을 거쳤고 하버드대 국제문제연구소(WCFIA) 펠로우를 지냈다. 부소장 겸 논설위원으로 외교안보 이슈를 추적하고 있다.

박용한 연구위원 : park.yonghan@joongang.co.kr (02-751-5516)
‘북한의 급변사태와 안정화 전략’을 주제로 북한학 박사를 받았다. 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ㆍ군사기획연구센터와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북한연구센터에서 군사ㆍ안보ㆍ북한을 연구했다. 2016년부터는 중앙일보에서 군사ㆍ안보 분야 취재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