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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성희의 문화참견] 먹방 규제? 차라리 외로움을 규제하라

양성희 논설위원

양성희 논설위원

마르셀 프루스트의 소설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의 주인공은 홍차에 적신 마들렌 하나로 어린 시절의 기억을 되찾는다. 그러나 음식은 추억만 일깨우는 것은 아니다. “당신이 먹는 것이 당신”이란 말처럼 무엇을, 어떻게 먹느냐가 존재를 규정한다. 진짜 한국인이 되려면 직장 동료와 찌개를 함께 떠먹을 수 있어야 한다. “개인의 감정을 사회적으로 통제하는 문명화 과정에서 오늘날 서양의 테이블 매너가 생겨났다”(독일 사회학자 노르베르트 엘리아스)는 분석도 있다.

 
이같은 음식문화의 역사에서 최근 챕터에 오를 만한 것이 바로 ‘먹방(먹는 방송)’이다. 남이 먹는 모습을 통해 대리만족하는, 일종의 ‘대리식사’다. 국내 인터넷방송에서 시작됐다. 외신도 주목하는 ‘한국산 문화’다. 최근에는 ‘먹방 규제’를 놓고 국가주의 논쟁이 일기도 했다. 어쩌다 대한민국은 ‘먹방 공화국’이 된 것일까. 우리는 왜 이렇게 먹방에 열광할까. 아니 우리는 무엇이 ‘고픈’ 걸까.
 
‘먹방’은 2000년대 후반 인터넷 1인 방송을 통해 처음 등장했다. 해외에도 음식을 소재로 한 유사 장르는 있지만 ‘먹는 모습을 훔쳐본다’는 컨셉은 최초였다. 지금은 해외 팬들도 많고, 해외 유튜버들도 먹방을 한다. 최근에는 구글 트렌드 검색에서 한국어 ‘먹방’보다 영어 ‘mukbang’이 더 상위에 랭크될 정도다. 2016년 CNN은 먹방을 ‘소셜 이팅(social eating)’의 하나로 주목했다.
 
인터넷 먹방이 폭식·괴식·엽기취미·식도락 등을 내세우며 먹는 것 자체에 집중한다면 TV에서는 먹방과 토크·여행·경연 등을 결합한 ‘먹방 예능’이 대세다. 인터넷 1인 방송에서는 먹방으로 연간 10억원을 벌어들이는 밴쯔 등 스타급 크리에이터가 등장하고 81세 할머니 먹방 유튜버까지 나왔다. 먹는 소리에 집중하는 ‘ASMR 먹방’ 등 형태도 다양해지고 있다. TV에서는 ‘전지적 참견 시점’으로 제2의 전성기를 맞이한 개그우먼 이영자, 걸그룹 마마무의 화사 등이 기존 먹방의 틀을 뛰어넘고 있다.
 
[일러스트=여누]

[일러스트=여누]

특히 이영자는 전형적인 대식가 이미지에 더하여, 웬만한 맛 칼럼니스트 뺨치는 현란한 맛 묘사, 타인에 대한 공감 등이 어우러진 새로운 먹방으로 주목받고 있다. ‘식신’ 정준하, ‘맛있는 녀석들’의 ‘뚱4’ 등의 기념비적 먹방을 뛰어넘는다. 인터넷에는 각종 의성어·의태어를 동원해 맛의 수사학을 펼친 ‘영자미식회’ 어록들이 돌아다닌다. 싸구려 음식의 대명사로만 알려진 고속도로 휴게소나 동네식당 등 서민 메뉴의 재발견도 특징이다. 무엇보다 그의 먹방에는 복음을 전파하듯 맛난 음식을 타인에게 알리고 싶어하는 ‘전도사적’ 태도가 있다. 맛있는 음식을 결코 혼자 먹지 않고, 매니저 등 남에게 꼭 먹어보게 하며, 그에게서 자신과 같은 반응을 확인하고 싶어하는 식이다.
 
또 다른 프로그램 ‘밥블레스유’에서는 음식을 매개로 여성들끼리 소통하는 여성주의적 연대도 보여준다. 이영자, 최화정, 김숙, 송은이 등 실제로도 자매처럼 가까운 이들은 억눌린 식욕을 한껏 해방시키며 여성들에게 주어진 고정적 이미지를 벗어던진다. 식탐을 감추지 않고, 시끄럽게 먹고 떠드는 여자들이란, 얼마 전까지만 해도 중년 ‘아줌마’ 하면 떠오르는 부정적 이미지였다. 이들은 음식을 통해 서로 상처를 치유하며 공감하기도 한다. 혈연을 떠나 ‘음식을 같이 먹는 사람’이 ‘식구’임을 다시금 일깨우는 것이다.
 
현역 아이돌 화사는 ‘여자 대식가=비만형 코미디언’이란 도식을 깼다. 무려 5인분의 곱창·박대 같은 서민적 음식을 먹어치우며 ‘여자 아이돌 대식가’ 1호가 됐다. 여전히 볼륨감 넘치는 몸매를 자랑하지만, 일명 ‘소녀시대 식단(하루 800㎈)’ 등 극단적 다이어트로 상징되는 아이돌계의 이단아다.
 
유튜브 구독자 260만명, 해외 팬들까지 확보한 밴쯔는 유튜브 성공신화의 주인공이다. 그야말로 폭식의 ‘끝판왕’이다. 인간적 한계에 도전하고, 하루 8~10시간 혹독한 운동으로 날렵한 몸매를 유지한다. 심야에 라면 7개 먹기 등 건강이나 자기관리를 위해서는 절대 할 수 없는, 가학적 식탐의 무한 질주가 인기 요인이다.
 
여러 변주에도 불구하고 먹방의 기본은 비정상적 식욕에 기초한 일탈의 쾌감이다. 이상 식욕을 자극하는 ‘푸드 포르노’와 건강·외모를 위해 일상화된 다이어트로 억눌린 식욕의 해방감 사이에 위치한다. 스트레스가 폭발할 때 먹을 것을 찾듯이, 사회적 좌절을 ‘미친’ 식탐으로 해소하려는 심리적 기제도 작용한다. ‘워라밸’과 ‘소확행(小確幸)’ 시대 가장 일상적인 먹는 행위에 새로운 가치를 부여하려는 측면도 있다. 사회적 양극화는 심화되고 사회적 이동성은 낮아지는 가운데, 먹는 즐거움이라는 ‘작은 사치’에 탐닉해 스스로 위로하려는 전략이다. 1인 가구의 등장 등 혼밥 문화가 일반화되면서, 먹방은 외로운 나홀로 식사의 동반자가 되기도 한다.
 
이번 정부의 ‘먹방 규제’(정확히는 미디어 가이드라인 마련) 방침이 큰 논란을 일으킨 것도 이 때문이다. 국민 건강 보호 차원이라지만, 한국에서 먹방은 그저 먹는 문제가 아닌 것이다.
 
지난 2011년 여성가족부가 심야에 청소년의 게임 이용을 제한하는 ‘게임셧다운제’를 실시한 것이, ‘반 페미니즘 정서’ 확산에 기여했음은 잘 알려져 있다. 청소년의 게임 과몰입(중독)을 우려한 조치였지만, 게임의 즐거움을 빼앗긴 남성 유저들은 반발했고, 자신들의 사회적 좌절을 ‘여가부=페미니즘’에 대한 분노로 치환시켰다. 과몰입의 근본 원인은 따로 둔 채 국가가 개인의 취향에 과도하게 개입하고 통제하려 한다는 비판도 컸다. 직후 “페미니스트가 싫어서 IS(이슬람국가)로 간다”는 18세 김모군까지 나왔다. 마찬가지로 누군가 이렇게 말했다. ‘먹방을 규제한다고? 차라리 내 외로움을 규제하라고 해!’ 먹방의 인기 뒤에 숨은 사회적 허기를 함께 봐야 한다는 것이다. 
 
양성희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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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방연구원 전력발전연구부ㆍ군비통제센터를 거쳐 1994년 중앙일보에 입사한 국내 첫 군사전문기자다. 국방부를 출입한 뒤 최장수 국방부 대변인(2010~2016년)으로 활동했다. 현재는 군사안보전문기자 겸 논설위원으로 한반도 군사와 안보문제를 깊게 파헤치는 글을 쓰고 있다.

박용한 연구위원 : park.yonghan@joongang.co.kr (02-751-5516)
‘북한의 급변사태와 안정화 전략’을 주제로 북한학 박사를 받았다. 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ㆍ군사기획연구센터와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북한연구센터에서 군사ㆍ안보ㆍ북한을 연구했다. 2016년부터는 중앙일보에서 군사ㆍ안보 분야 취재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