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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언의 시선] ‘공정 입시’ 수렁에 빠진 문재인 정부

이상언 논설위원

이상언 논설위원

우리나라 대학 신입생 선발은 두 갈래다. 수시모집 아니면 정시모집이다. 교집합은 없다. 이를 꼭 기억하고 아래 대화를 보자. 지난해 5월 2일 19대 대선 6차 TV토론 발언록이다.
 
유승민 후보: 문재인 후보께 질문합니다. 수시 비중을 축소하겠다고 하셨습니다. 수시 비중을 줄인다는 것은 정시를 늘리겠다는 것 아닙니까?
 
문재인 후보: 논술 전형, 특기자 전형은 없애서 대학 입시를 단순화하고 그것을 통해서 사교육비를 낮추겠다는 것입니다. 그런 전형을 없애면 그만큼 수시 비중은 줄게 되는 것이죠. 수시 비중이 준다고 해서 그만큼 정시 비율이 늘어나는 것은 아닙니다.
 
: 아니죠. 수시가 줄면 정시가 늘죠.
 
: 아니, 그 전형(논술·특기자 전형)을 줄이면 수시 비중은 자연히 줄게 되는 것이죠. 그러나 수시 비중이 준다고 정시가 늘어나는 것은 아니다, 이 말씀입니다.
 
문재인 대통령은 수시 ‘비중’을 줄이겠다면서도 끝내 정시 확대는 아니라고 했다. 많은 사람이 어리둥절해 했지만 그 뒤에 나온 홍준표 후보의 4대강 사업 옹호 발언에 파묻혀 화제가 되지 못했다. 문 대통령은 이보다 두 달 전인 지난해 3월 22일(대선 경선 후보 시절)에는 서울 대영초등학교를 방문해 교육 정책을 밝히는 회견을 열었다. “수시 비중 단계적 축소”가 포함돼 있었다. 언론들은 ‘정시 확대’ 계획으로 해석했고, 문 대통령 측에서 아무런 이의를 제기하지 않았다. 그런데 한 달 뒤에 발표한 공약에는 이 부분이 없었다. 수시와 관련해서는 ‘사교육을 유발하는 수시 전형 대폭 개선’이라고만 쓰여 있었다. 고교 학점제·수능 절대평가 추진이 들어 있었는데, 이 두 가지는 정시 비율 늘리면 성사되기 어려운 일이다.
 
[일러스트=김회룡 aseokim@joongang.co.kr]

[일러스트=김회룡 aseokim@joongang.co.kr]

이 두 달간의 변화를 되짚어 보면 이런 추정이 가능하다. 문 대통령은 수시에 대한 학부모·학생 불만을 알고 있었다. ‘기회는 평등하고 과정은 공정하고 결과는 정의로울 것’이라는 그의 정신에 ‘금수저 전형’이라는 꼬리표가 붙은 수시를 확대하는 건 맞지 않는다고 생각했다(정유라씨 이화여대 수시 특기자 합격은 촛불 집회 도화선이 됐다). 대영초 발언은 그래서 나왔다. 그 뒤 캠프 내 교육 전문가와 진보 진영 교육 운동가들이 수시 축소에 반대했다. "정시는 사교육 산업을 도와주는 것이고, 수시는 공교육 정상화로 가는 길이다. 정시는 금수저들이 많은 자사고·특목고와 강남 8학군 학생들에게 유리하고, 일반고 서민층 학생에게는 불리한 제도다.” 이런 얘기를 했을 것이다. 실제로 대영초 방문 뒤 교육단체들이 비슷한 지적을 했다. 여하튼 공약에서 수시 축소가 사라졌고, 비중을 줄인다는 게 비율을 줄인다는 것은 아니라는 아리송한 말이 TV토론에 등장했다.
 
‘평등·공정·정의’를 앞세운 문재인 정부에서 가장 옳은 대입 제도는 금수저·은수저에 유리하지 않은, 즉 흙수저·쇠수저가 불리하지 않은 제도다. 그게 핵심이다. 문제는 그게 뭔지를 모른다는 것이다. 수시가 금수저들에게 유리한 것 같기도 하고, 정시가 흙수저들에게 불리한 것 같기도 하다. 헷갈린다. 그래서 수시 축소와 정시 확대 사이에서 오락가락한다. 교육부는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정시 확대 요구가 분출된 직후인 지난 4월 대학들에 기존 입장을 뒤집고 수시 축소를 권유했다. 문 대통령이 TV토론에서 극구 부인했던 일이다. 그 뒤엔 급기야 ‘잘 모르겠으니 국민에게 직접 물어보자’를 택했다. 그것이 20억원짜리 ‘공론화’다.
 
시민 490명이 참여한 공론조사에 성과가 전혀 없었던 것은 아니다. 수시, 그중에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학생부종합전형(학종)이 불공정의 상징이 돼 있다는 현실을 재확인했다. 교육 당국이 아주 특별하고 획기적인 방법을 찾지 못하면 이를 ‘불신 지옥’에서 구제하기 어렵게 됐다. 그리고 정부가 사회과학적 분석을 하든, 윤리철학적 논증을 하든 ‘공정 입시’에 대한 답을 스스로 찾아야 한다는 교훈을 얻었다면 그것도 성과다. 지금처럼 우왕좌왕하면 교육 전문가 ‘학종파’와 시민 ‘수능파’의 끝없는 싸움 속에서 정권이 멍들 수밖에 없다.
 
‘무엇이 공정한가’만큼 어려운 질문도 없다. 사교육은 불공정 경쟁의 원흉 같지만 꼭 그렇지만도 않다. 집에 공부 가르쳐 줄 사람 없는 워킹 한부모 가정의 아이에게는 사교육이 부모와 형·누나가 공부 도와주는 아이와 경쟁할 수 있게 하는 ‘공평의 도구’다. 어쩌면 한국 교육현장에서 벌어지는 가장 불공정한 일은 학생들이 교실에서 온종일 잠만 자며 나날이 ‘자아효능감’을 떨어트려도 학교와 교육청이 남의 일처럼 여기는 것일 수도 있다. 세금으로 월급 받으면서 납세자들 기대를 완전히 무시하는 것만큼 불공정한 일도 드물다. 지금 우리 교육에는 정책도, 비전도 없다. 땜질만 있다. 그래서 현재도, 미래 전망도 암울하다.
 
이상언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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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방연구원 전력발전연구부ㆍ군비통제센터를 거쳐 1994년 중앙일보에 입사한 국내 첫 군사전문기자다. 국방부를 출입한 뒤 최장수 국방부 대변인(2010~2016년)으로 활동했다. 현재는 군사안보전문기자 겸 논설위원으로 한반도 군사와 안보문제를 깊게 파헤치는 글을 쓰고 있다.

박용한 연구위원 : park.yonghan@joongang.co.kr (02-751-5516)
‘북한의 급변사태와 안정화 전략’을 주제로 북한학 박사를 받았다. 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ㆍ군사기획연구센터와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북한연구센터에서 군사ㆍ안보ㆍ북한을 연구했다. 2016년부터는 중앙일보에서 군사ㆍ안보 분야 취재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