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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트북을 열며] 하나후사 부부의 용기와 신뢰

이가영 국제외교안보팀 기자

이가영 국제외교안보팀 기자

“그분들의 사연을 듣다 눈물보가 터져 버렸어요. 돕는 것이 도리라고 생각했습니다.”
 
40도를 오르내리는 무더위가 끓던 지난달 초 일본 후쿠오카의 한 주택가. 가정집을 개조한 식당 ‘하나후사’에서 만난 하나후사 에미코(73)는 이렇게 말했다. 최근 영화 ‘허스토리’를 통해 널리 알려진 관부재판을 지원하게 된 계기에 대한 설명이었다. 관부재판은 부산의 위안부 및 근로정신대 피해자들이 일본 정부를 상대로 낸 배상청구 소송이다. 에미코와 남편 하나후사 도시오(74)는 ‘관부재판을 지원하는 모임’을 결성해 원고들을 도왔다.
 
영화는 비중 있게 다루지 않았지만 전문가들은 관부재판의 주역으로 이들을 꼽는다.
 
1960년대 명문 도호쿠대 캠퍼스 커플로 만난 둘은 사회운동에 적극 나섰다. 졸업 후엔 오사카로 옮겨 노동운동에 투신했다. 심신이 지칠 즈음 건강도 되찾을 겸 연고가 없는 후쿠오카로 이주해 식당을 열었다. 우연한 기회에 지인을 통해 에미코가 관부재판에 발을 들였다. 아내를 뒤따른 도시오는 지원 모임 사무국장을 맡는 등 더욱 적극적이었다. 재판 지원을 위해 번화가에서 잘나가던 식당을 한적한 주택가로 옮겼다. 한푼 두푼 모아 할머니들의 체재비와 재판비용을 보탰다. 2011년엔 후쿠오카 시내에서 할머니들의 피해를 알리는 집회도 열었다. 무엇이 이들을 움직이게 한 걸까.
 
도시오는 “처음 피해자들을 만났을 때 일본 때문에 고통을 겪었음에도 따뜻하게 대해 주셔서 놀랐다. 정부가 지지 않는 전쟁책임을 내 개인이 풀 방법을 찾아야 했다”고 말했다.
 
순수한 열정으로 걸어왔지만 어려움도 많았다. 일본 우익들의 비난에 시달렸고, 가게 운영이 위협받기도 했다. 한국 측 시민단체와 의견이 맞지 않을 때 마음고생도 심했다. 그럼에도 이들은 스스로 세운 원칙을 어긴 적이 없다. 지금껏 한 해도 거르지 않고 자비로 매년 부산을 찾아 생존 피해자들과 가족을 만났다. 올해도 지난 5월 다녀갔다. 한국 정부 차원의 감사 인사는 없었지만 부부는 외려 “2015년 위안부 협의는 논란이고 생존자들은 줄어 가는데 한·일 관계는 꼬여 있다”며 피해자들과 양국의 앞날을 걱정했다. “지난 활동을 반성하고 어떻게 정리할지 고민 중이다”는 대목에선 고개가 숙여졌다.
 
후쿠오카는 일본 강점기 1만여 명의 한국인들이 강제징용돼 혹독한 고초를 겪은 아소 탄광이 있던 곳이다. 요즘엔 미식과 온천을 즐기기 위해 찾는 한국 관광객들이 넘쳐난다. 이 모순된 도시에 생업을 희생해 가며 한국인들을 도운 하나후사 부부가 있다. 주변의 시선보다는 소신을 믿었던 하나후사 부부의 용기와 그들이 피해자들에게 끝까지 잃지 않았던 신뢰를 이제는 부부가 걱정하는 양국 정부가 보여야 할 때다.
 
이가영 국제외교안보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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