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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수대] 우리의 붉은 깃발법

고정애 중앙SUNDAY 정치에디터

고정애 중앙SUNDAY 정치에디터

“현재 아무리 나쁜 사례라고 해도 그것이 시작된 원래의 계기는 훌륭한 것이었다.”
 
카이사르의 말을 1500년 만에 재발굴한 건 마키아벨리였다. 시오노 나나미는 “어떤 정치시스템도 당초의 동기는 선(善)이었을 것이고 그 시스템으로 잘돼 가던 시기도 있었다. 그러나 선이 시간이 지나감에 따라 악으로 바뀌어 간다”(『또 하나의 로마인 이야기』)고 해석했다.
 
문재인 대통령이 은산분리 규제를 영국의 ‘붉은깃발법’에 비유한 것을 들으며 떠올린 경구다. 문 대통령은 “자동차 속도를 마차 속도에 맞추려고 자동차 앞에서 사람이 붉은 깃발을 흔들게 했다. 결국 영국의 자동차 산업은 독일과 미국에 뒤처지고 말았다. 규제 때문이었다”고 했다. 동의한다. 다만 문 대통령이 프랑스가 아닌 미국을 언급했는지는 의아하다. 그 무렵 미국은 영국처럼 승합마차의 나라여서다.
 
사실 붉은깃발법이 만들어진 1865년의 자동차는 증기기관을 단 차였다. 1863년 증기기관차가 달리는 일종의 지하철을 개통한 영국이었지만 증기차엔 소극적이었다. 불똥만 잘못 튀어도 화재를 일으킬 수 있었고 매캐한 검은 연기와 귀를 먹먹하게 만드는 소음, 포장도로를 망가뜨리는 육중한 무게도 문제였다. 한마디로 말(馬)보다 못했다는 얘기다.
 
그러다 경구대로 규제가 ‘악’으로 바뀌는 순간이 왔다. 에드워드 버틀러란 발명가가 가솔린 내연기관을 단 운송수단(Petro-cycle)을 선보인 1885년 무렵부터다. 카를 벤츠(motorwagen)와 같은 시기였다. 버틀러는 그러나 5년 뒤 “붉은깃발법 때문에 당국이 도로 주행을 허용하지 않는다”며 기술 개발을 포기했다.
 
영국은 결국 1896년 붉은깃발법을 폐지했다. 독일 차가 영국 내 공공도로를 달리기 시작한 지 1년 만이다. 한 자동차박물관은 “1895년 말 영국 내 자동차 수는 14~15대”라고 했다. 그러므로 문 대통령의 인용으로 ‘우스꽝스러운 규제가 영국 자동차 산업을 망가뜨릴 정도로 지속했다’는 인상을 받았을 순 있겠으나, 실상은 그 정도까진 아니었다고 말할 수 있다. ‘불과’ 수년이다. 그런데도 붉은깃발법은 시대착오적 규제를 상징하게 됐다.
 
은산 분리는 더 심한 경우라고 할 수 있다. 경쟁국과 달리 10년 넘게 제자리다. 문 대통령의 당부대로 풀 때가 됐다. 사실 따지고 보면 은산분리만이랴. 곳곳에 그런 규제들이 있다. 문제는 규제로 인한 폐해만이 아니다. 철 지난 규제를 유지하느라 그 사이 더 고민해야 할 새로운 시대의 문제를 놓치고 있다는 점이다. 풀 건 풀자.
 
고정애 중앙SUNDAY 정치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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