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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극마크 20년 남현희 “금메달로 100개 채울래요”

결혼·출산 이후에도 선수 생활을 계속하면서 20년째 태극마크를 달고 있는 남현희.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에서 개인·단체전 메달을 노린다. [프리랜서 김성태]

결혼·출산 이후에도 선수 생활을 계속하면서 20년째 태극마크를 달고 있는 남현희.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에서 개인·단체전 메달을 노린다. [프리랜서 김성태]

“이제 딱 2개 남았네요.”
 
한국 여자펜싱 플뢰레 국가대표 남현희(37·성남시청)의 휴대전화에는 그동안 그가 출전했던 국제대회와 메달 목록이 빼곡하게 적혀있다. 이제까지 그가 올림픽·아시안게임 등 9개 주요 국제대회에서 따낸 메달은 총 98개다. 동메달이 40개로 가장 많고, 금메달이 34개, 은메달이 24개다.
 
남현희는 18일 개막하는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에서 개인·단체전에 출전한다. 여기서 메달 2개를 추가하면 꼭 100개가 된다. 지난 6일 충북 진천 국가대표 선수촌에서 만난 남현희는 “메달 100개를 채우면 정말 통쾌할 것 같다. 그동안 힘들었던 기억이 싹 날아갈 것”이라며 “이왕이면 금메달로 100개를 채우고 싶다”고 말했다.
 
그가 2002년 부산 대회부터 4차례의 아시안게임에서 딴 금메달은 모두 6개다. 스피드스케이팅 이승훈(7개)보다 1개 적고, 수영 박태환(6개)과는 같다. 이번에 금메달 2개를 따내면 한국 선수 가운데 역대 아시안게임에서 가장 많은 금메달을 딴 선수가 된다.
 
‘그동안 메달을 너무 많이 따서 새로 메달을 딴다 해도 감흥이 떨어지지 않느냐’고 물었더니 그는 “절대로 그렇지 않다”고 했다. 남현희는 “은퇴한 선배들이 ‘너 정도면 이룰 거 다 이뤄서 선수 생활을 계속하면 마음가짐이 헤이해질 거다’는 말을 많이 했다”며 “나는 끝까지 최선을 다해 마무리하고 싶다. 흔들리는 마음을 다잡기 위해서 동기부여가 필요하다. 그래서 늘 목표를 세운 뒤 이에 도전한다”고 설명했다.
 
남현희 휴대전화

남현희 휴대전화

 
남현희는 이제 마흔을 바라보는 나이다. 4년 전 2014년 인천 아시안게임이 끝난 뒤에도 그는 은퇴하지 않았다. 그는 “그만둘 생각으로 두 달 동안 운동을 쉬었다. 그런데 대표 선발전에 나와달라는 요청을 받았다. 신기하게도 복귀를 결정하는데 아무런 망설임도 없었다”고 말했다.
 
남현희는 내친 김에 2016년 리우 올림픽에 출전한 데 이어 이번 아시안게임도 악착같이 준비했다. 지난 4월 오른 무릎 반월판 연골이 끊어지는 부상을 입었는데도 35일 만에 복귀했다. 그리고는 지난 5월 아시아선수권에서 메달(개인전 동, 단체전 금)을 따냈다. 남현희는 “4년 전 처음 다친 이후 내 무릎은 시한폭탄 같은 존재였다. 무릎 수술은 곧 은퇴로 여겨져 겁을 먹기도 했다”며 “연골 제거 수술을 받았는데 우려했던 것보다 상태가 좋다. 수술을 집도한 의사 선생님이 2년은 더 뛸 수 있다고 말씀하셨다”고 말했다.
 
남현희는 선수 생활 내내 ‘불가능’이라는 편견과 맞서 싸웠다. 1m55㎝의 작은 키는 오히려 장점으로 승화했다. 키가 20~30㎝ 차이가 나는 유럽 선수들 틈바구니에서 빠르면서도 강한 펜싱을 구사해 세계 정상에 섰다.
 
남현희는 2011년 사이클선수 공효석(32)과 결혼해 2013년 딸(공하이)을 낳았다. 그는 출산 이후에도 선수 생활을 계속했다. ‘운동선수에게 출산은 은퇴 선언과 같다’는 말을 보기 좋게 뒤집었다. 4개월 만에 피스트 위에 선 그는 인천 아시안게임 국가대표가 됐고, 단체전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남현희는 “‘키가 작아서, 결혼을 해서, 아이를 낳아서, 나이가 많아서 안 된다’던 사람들이 이제는 ‘네가 펜싱의 역사다’ ‘아직 그만둘 때가 아니다’고 말한다”며 “편한 길을 걸을 수도 있었지만 그렇게 하지 않았다. 당당하게 보이려고 더 노력했다. 그런 마음가짐이 좋은 결과로 이어지면서 자신감을 얻을 수 있었다”고 말했다.
 
10일 오후 충북 진천군 광혜원면에 위치한 진천국가대표선수촌에서 2018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에 출전하는 펜싱 대표 남현희 선수가 훈련을 하고 있다.

10일 오후 충북 진천군 광혜원면에 위치한 진천국가대표선수촌에서 2018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에 출전하는 펜싱 대표 남현희 선수가 훈련을 하고 있다.

 
남현희는 평소에는 당당하지만 다섯살 딸 하이를 생각하면 늘 안타깝다고 했다. 한창 함께 놀아줘야 할 시기인데 또 생이별을 해야 한다. 남현희는 “딸을 낳은 뒤 선수촌에 들어갔을 때는 아이 얼굴이 떠올라 무척 힘들었다”며 “요즘도 하이와 전화통화를 하면 ‘엄마, 이번엔 몇 밤 자면 와?’라고 묻는다”며 “가족과 떨어져 지내는 생활이 힘들지만 그래도 가족의 사랑 덕분에 힘든 시기를 이겨낼 수 있었다”고 했다.
 
1999년 성남여고 2학년 때 처음 국가대표에 뽑혔던 남현희는 20년째 태극마크를 달고 있다. 남현희는 “10년 전만 해도 국제 대회에 나가면 유럽 선수들에게 키 작은 아시아 선수라고 무시당하기 일쑤였다. 만약 나 혼자였다면 자신 있게 맞서지 못했을 것”이라며 “뒷걸음치다가도 가슴에 새긴 태극마크를 바라보며 힘을 냈다. 국가대표의 책임감이란 바로 그런 것”이라고 말했다.  
 
진천=김원 기자 kim.w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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