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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읽기] 현대문명이라는 기계

장강명 소설가

장강명 소설가

‘오류 0x8007045D: I/O 장치 오류로 인해 요청이 수행될 수 없습니다.’
 
노트북 화면에 이런 메시지가 뜨기 시작했다. 무슨 말인지 알아먹을 수가 없다. 검색해보니 하드디스크에 손상이 생겼다는 뜻이란다. 왜 메시지 문구를 저런 식으로 쓰는 걸까. 그냥 ‘하드디스크에 손상이 생겼습니다’라고 알려주면 안 되나.
 
이리저리 방도를 알아봤으나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거의 없었다. 이틀 정도 마음고생을 하다 결국 새 노트북을 장만하게 됐다. 중요 자료는 백업을 해놓은 터라 피해가 크진 않지만 마음은 찜찜하다. 5년에 한 번꼴로 이런 일을 겪을 때마다 내가 쓰는 이 도구가 얼마나 불완전하고 불안전한가를 새삼 깨닫는다.
 
세상일이라는 게 원래 모두 계획이 틀어지고 어디선가 사고가 발생하기 마련이지만, 컴퓨터와 관련한 문제에는 특별한 구석이 있다. 사람 기운을 쭉 빼는.
 
우선 첫째로 나는 그 기계에 삶의 상당 부분을 맡기고 있다. 내가 썼거나 쓰고 있는 글은 전부 거기 저장돼 있으니, 과장이 아니다. 그 기계에 오류가 생기면 내 삶도 탈이 난다. 서랍 손잡이가 부러졌다든가, 의자 다리가 헐거워졌다든가, 형광등 불빛이 깜빡거린다든가 하는 문제와는 다르다.
 
둘째, 그러나 나는 그 기계를 통제하지 못한다. 하드디스크는 분해하면 안 되는 물건이다. 비전문가인 나는 물론이고 전문가도 마찬가지다. 나는 그 기계가 어떤 원리로 작동하는지 모른다. 어떻게 작동하는지 볼 수도 없다. 그저 불량품이 아니길 믿고 살살 다루며 쓸 뿐이다. 그러다 아주 작은 티끌이 그 안에 생겨 얇은 자기(磁氣) 원판에 흠집을 내기 시작하면, 그걸로 그냥 끝이다.
 
셋째, 그 기계는 무척 합리적인 것처럼 포장돼 있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 나는 그것이 이치에 맞게 작동한다고 믿는다. 그러나 기계는 어느 순간 암호 같은 메시지를 내보내면서 나와 맺었던, 또는 맺었다고 생각했던 약속들을 제 마음대로 어긴다. 어떤 파일은 불러올 수 없고, 복사할 수 없고, 지울 수도 없게 된다. 그 앞에서 아무리 화를 내고 ‘이치’를 따져 봐야 소용이 없다.
 
[일러스트=김회룡 aseokim@joongang.co.kr]

[일러스트=김회룡 aseokim@joongang.co.kr]

이는 그 기계가 정교하고 복잡하고 자체적인 작동원리를 지녔기 때문이다. 알 수 없는 이유로 고장이 나고, 내게 타격을 입히고, 그때마다 내가 속수무책으로 당하게 된다는 것은 이 기계장치의 본질, 적어도 그 본질의 일부다. 이 기계는 점점 더 정교하고 복잡한 자동시스템으로 발전할 것이고, 꾸준히 오작동할 것이고, 나는 참아야 한다.
 
적어놓고 보니 이는 곧 현대를 살아가는 일에 대한 비유 아닌가. 현대인은 참으로 정교하고 복잡하며 자체적인 작동원리를 지닌 시스템들에 의존해서 살아간다. 정치, 경제, 행정, 사법, 산업, 금융, 복지, 교육, 조세, 교통…… 그 시스템들 중 어느 것 하나라도 내 앞에서 고장이 난다면 내 삶은 치명상을 입는다.
 
동시에 현대의 사회시스템들은 너무나 크고 혼란스러워서, 한 개인이 그걸 다 파악하기란 불가능하다. 우리는 그 시스템들이 이치에 맞게 작동하기를 바라지만, 막상 몸으로 경험하는 현실은 부조리로 가득하다. 물가는 오르고, 도로는 막히고, 건강보험료는 불공평하고, 대학입시제도는 어이없고, 범죄자는 쉽게 풀려난다.
 
제대로 된 설명조차 듣기 힘들다. 전문가들은 “원래 그런 거예요”와 “그러니까 틈틈이 백업을 해놓으세요”라는 뻔한 말을 반복한다. 실은 그들도 별반 아는 게 없는 듯하다. 가끔 확신에 찬 목소리로 “신제품을 사세요”라든가 “어느 정치인을 지지하세요” 같은 해결책을 제시하는 이들이 있긴 한데, 가장 믿어서는 안 되는 자들이다.
 
그래서 현대인은 누구나 마음속 깊이 무력감을 느낀다. 고대인들은 전혀 다른 삶을 살았다. 고대인에게는 시스템이 없었고, 대신 변덕스러운 신과 정령, 광포한 자연과 폭군이 세상을 지배했다. 그들은 세상이 이치에 맞게 돌아간다는 생각 자체를 품지 않았다. 사방을 향해 생존을 빌며 살았다. 폭력적인 죽음과 신비로운 현상들이 너무 많았기에 역설적이게도 짜릿한 투쟁과 영광, 환희, 영적 충만의 순간을 현대인보다 더 자주 경험했다.
 
현대문명은 점점 더 정교하고 복잡하고 자체적인 작동원리를 지닌 기계가 되어간다. 우리는 생존과 안전에 대한 걱정을 더는 대가로 그 회색기계 속 부품으로 살기를 선택했다. 변덕쟁이 신과 사나운 야생보다는 그편이 좀 더 우리의 이치에 가까우리라 믿고. 우리는 오늘도 그렇게 다른 부품들 사이에 옴짝달싹 못 한 채 서서, 이 무표정한 기계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조종자가 있기나 한 건지를 궁금해한다. 그러다 속으로 중얼거린다.
 
‘그런데 이 기계는 늘 어딘가 고장이 나 있는 것 같아.’
 
장강명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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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용한 연구위원 : park.yonghan@joongang.co.kr (02-751-5516)
‘북한의 급변사태와 안정화 전략’을 주제로 북한학 박사를 받았다. 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ㆍ군사기획연구센터와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북한연구센터에서 군사ㆍ안보ㆍ북한을 연구했다. 2016년부터는 중앙일보에서 군사ㆍ안보 분야 취재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