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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찬호 논설위원이 간다] “대권행보? 선풍기? 하이고 … 엉뚱한 소리 마세요”

옥탑방 정치 보름넘긴 박원순 서울시장
박원순 시장이 옥탑방에서 문재인 대통령이 보낸 선풍기가 돌아가는 가운데 인터뷰를 하고 있다. 박시장 측은 옥탑방 임대료 200만원(50일 계약)에 인터넷, 그늘막, 보조키 설치 등으로 76만여 원을 추가로 썼다고 밝혔다. [강찬호 논설위원]

박원순 시장이 옥탑방에서 문재인 대통령이 보낸 선풍기가 돌아가는 가운데 인터뷰를 하고 있다. 박시장 측은 옥탑방 임대료 200만원(50일 계약)에 인터넷, 그늘막, 보조키 설치 등으로 76만여 원을 추가로 썼다고 밝혔다. [강찬호 논설위원]

“와 이리 젖었나. 들어가서 땀이라도 식히고 가라”
 
열대야가 기승을 부리던 6일 밤 10시. 카니발 승합차로 서울 삼양동 주택가의 옥탑방에 귀가한 박원순 서울시장은 그를 3시간 넘게 기다리느라 땀으로 범벅이 된 필자의 손을 덥석 잡았다.
 
부인 강난희 여사가 건넨 얼린 수박 주스를 먹으며 질문을 던졌다. 강 여사는 박 시장 옆의 선풍기를 가리키며 “문재인 대통령이 선물하신 것”이라 설명했다.
 
박 시장이 지난달 22일 옥탑방에 입주한 이래 보수단체 회원들이 아침·저녁으로 옥탑방 앞에서 시위를 벌여왔지만 6일 저녁에는 시위대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민원을 하러온 시민 몇명이 서성일 뿐이었다.
 
박원순 시장 옥탑방 앞에서 박시장을 비난하는 피켓을 들고 시위를 벌이는 보수 인사들. 박 시장이 퇴근하는 야간에 시위가 이뤄지는 경우가 많다. [사진 유튜브 캡처]

박원순 시장 옥탑방 앞에서 박시장을 비난하는 피켓을 들고 시위를 벌이는 보수 인사들. 박 시장이 퇴근하는 야간에 시위가 이뤄지는 경우가 많다. [사진 유튜브 캡처]

옥탑방에 들어온 지 보름째다.
“많이 적응됐다. 지난달 22일 가장 더울 때 들어왔는데, 이젠 고비를 넘긴 듯하다.”
 
‘쇼’라는 비판에 대해선
“와서 한 달 살아보고 그런 소리 하라고 해라. 난 원래 현장 정치인이다. 지난 임기 때 이미 20개 구청을 돌며 1박2일씩 지내봤고 은평 뉴타운이나 용산 국제업무지구 등 문제가 터진 곳마다 달려갔다. 지난 보름간 여기(삼양동)와 관련해 내린 지시만 60개가 넘는다. 나는 삼양동 문제에 이어 강북구 문제를 해결하고 동시에 서울시 전체의 문제를 해결하면서 그것이 대한민국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되어야 한다고 본다.”
 
현장에 살면서 얻은 아이디어는.
“마을 경제가 죽었다. 양장점, 구멍가게,전파상 다 사라졌다. 뭘 먹고 사나. 서울시가 매년 주거개선비로만 약 3000억원을 쓴다. 그러고 나면 기업들이 들어와 (돈을) 다 가져간다. 주민들은 정책의 주체가 아니라 대상이 될 뿐이다. 현장을 돌아보니 답이 나온다. 협동조합을 세워 원래 일하던 분들에게 일터를 주면 된다.”
 
대권 행보한다는 비판엔.
“하이고, 자꾸 그런 것(대권)으로 연결하니까 엉뚱한 소리 하는 사람들이 나온다. 그 자체로만 받아들여 달라.”
 
문 대통령이 선풍기를 선물했는데 청와대와 좋은 관계인가.
“(웃으며) 정치적으로 보지 마세요.”
 
[그래픽=차준홍 기자 cha.junhong@joongang.co.kr]

[그래픽=차준홍 기자 cha.junhong@joongang.co.kr]

보름을 넘긴 박원순 시장의 옥탑방 살이가 화제다. 더불어민주당 내부에서조차 박 시장이 대권 행보에 나선 신호탄이라고 보는 시각이 절대적이다. 2012년부터 1년반 동안 박 시장 밑에서 정무부시장을 지낸 더불어민주당 기동민 의원(성북을·초선)은 “문 대통령 임기가 1년3개월을 지났을 뿐인데 차기 대권 주자 운운은 지나친 얘기”라고 선을 긋는다. 박 시장 본인도 극구 부인한다. 하지만 6·13 지방선거 사흘 뒤 실시된 차기 대선주자 적합도 여론조사에서 박 시장은 16%로 여권 후보들 가운데 선두에 섰다. 지난해 대선을 앞두고 4%대 지지율에 머무른 끝에 민주당 대선 후보 경선에조차 나서지 못했던 것과는 확 달라진 상황이다.
 
한때 냉랭했던 것으로 알려진 친문들과의 관계도 회복 기미가 엿보인다. 이인영계 김종욱 전 서울시 민주당 의원이 맡아온 정무부시장 자리가 문 대통령의 호위무사로 불려온 친문 핵심 진성준 청와대 정무기획비서관에게 주어진 것이다. 진성준은 정무수석실에서 한솥밥을 먹던 동갑내기 한병도 정무비서관이 정무수석에 발탁된 것을 계기로 청와대를 떠나 21대 총선 준비에 들어가려던 참에 박 시장의 러브콜을 받았다고 한다. 그에게 물었다.
 
청와대 친문 핵심인 당신이 박원순의 오른팔(정무부시장)이 된 배경은.
“박 시장은 대통령의 국정철학을 공유하며 시정을 펼치려는 뜻에서 나를 쓰려 한 듯하다. 나는 어차피 8·25 민주당 전당대회를 계기로 청와대를 떠나 지역구(강서 을)로 돌아가는 게 기정 사실이 된 상황이었다. 이 소식을 박 시장이 들었는지 내게 부시장을 맡아달라고 제안해왔다. 나는 ‘지역구에 돌아가려 한다’며 사양했다. 그러자 박 시장이 ‘당신 지역구가 어차피 서울 관내에 있으니 서울시 부시장으로 일하면 그게 지역구를 위해 일하는 것이 되지 않느냐’며 거듭 권했다.”
 
문 대통령은 뭐라 하던가.
“문 대통령에게 보고하니 ‘진성준은 어차피 정치할 사람이니 좋은 기회다. 청와대로서도 좋은 일이니 흔쾌히 보내자’고 했다고 한다. 그래서 서울시에 왔다. 박 시장이 날 쓴 이유는 민주당과 서울시의 일체감을 강화하려는 뜻도 있다고 본다. 박 시장이 의원 경험은 없어 당과 밀착도가 낮으니 그걸 올리는 게 숙제 아니었겠나.”
 
박 시장의 옥탑방 정치가 ‘쇼’라는 지적은.
“깨 놓고 말해 정치에 그런 퍼포먼스적 요소가 어찌 없겠느냐. 야당은 그런 것 안 하나. ‘쇼’라는 주장이 오히려 정치공세다. 정치인은 현장에서 살아봐야 긴급성이 피부로 느껴진다. 진정성을 봐달라.”
 
문 대통령의 선풍기 선물은 당신 작품 아닌가.
“전혀 아니다. 대통령이 박 시장에게 동지적 차원에서 선물을 한 것으로 안다. 나는 청와대에 그런 요청을 한 적이 없고 그런 데 능한 사람도 아니다.”
 
문 대통령의 선풍기 선물은 친문과의 허니문을 원하는 박 시장에게 큰 희소식이다. 청와대는 이 사실을 함구했지만 박 시장은 적극 홍보에 나섰다. 선풍기 사진을 찍어 “문 대통령이 무더위에 수고한다며 보내셨다”는 글과 함께 페이스북에 올린 것이다. 박 시장과 가까운 한 민주당 의원은 “비문계로서 차기 대권을 노리려면 대통령과 친분이 깊음을 과시하는 게 당연한 것 아닌가”라고 반문했다. 이어 “차기 대권 잠룡으로 꼽힌 안희정과 이재명, 김경수가 다 낙마하거나 내상을 입었다. 반면 박원순은 스캔들이 없는데다 문 대통령과 관계도 좋다. 대권 주자 1순위에 오른 것 아닌가”라고 했다.
 
익명을 원한 여론조사 업체 전문가는 “박 시장의 6·13 지방선거 득표율은 52.7%로, 지명도를 감안하면 높은 편이 못 된다. 3선인데도 초선급의 다른 민주당 광역자치단체장들 득표율과 비슷한 수준”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지난 7년간 서울시장을 지내며 쌓은 성과를 인정받았다기보다는 문 대통령의 높은 지지율을 업고 당선된 측면이 크다”고 했다. “박 시장이 2022년 대선에 도전하려면 이번 임기 중 가시적인 성과를 내 지지율을 끌어올려야 한다. 옥탑방 정치는 그런 수요 때문에 박 시장이 꺼낸 카드로 보인다. 앞으로도 이런 이벤트형 정치가 계속 이어질 것이다.”
 
전직 민주당 의원은 “우리나라 대통령은 통상 집권 2기에 들어서면 차기 대권 잠룡들을 ‘갈라 치기(Divide and Rule)’하며 권력을 유지하려 한다. 문 대통령은 박 시장과 임종석 대통령 비서실장, 김부겸 행정안전부 장관, 이낙연 총리 등을 잠룡으로 점찍고 관리하는 형국”이라고 했다.
 
“박 시장이 잘한 것이 지난해 대선 경선 출마 포기(2017년1월26일) 결단이다. 그와 달리 경선에 출마해 문재인 후보와 끝까지 맞서 싸운 탓에 ‘문빠’들에게 찍힌 안희정·이재명·최성을 보라. 안희정은 성폭행 의혹, 최성은 지방선거 낙천으로 몰락했고 이재명도 잇따른 스캔들로 고전 중 아닌가. 이런 사건들이 정권의 ‘기획’이란 루머는 사실이 아닐 것이다. 하지만 적어도 김경수와 달리 정권이 이들 3인을 적극 보호하지 않은 점은 눈여겨 봐야 한다. 그 점에서 정권의 미움을 사지 않은 박원순의 처신은 적절했다고 본다”
 
박원순의 옥탑방 정치를 바라보는 야당의 시선은 착잡하다. 김용태 자유한국당 사무총장은 “민주당이 6·13 지방선거에서 서울시 의회 의석의 90%를 싹쓸이한 것이 박 시장에게 날개를 달아준 셈”이라고 했다. “야당이 어느 정도 의석을 확보했다면 박 시장이 시청을 떠나 옥탑방으로 가지 못하게 견제했을 것”이라는 것이다. 박 시장의 옥탑방이 위치한 강북구가 지역구인 자유한국당 정양석 의원(강북갑·재선)은 “강남북 균형개발을 위해 강북구에서 한 달 간 지낸다는 취지는 좋다”면서도 “같은 편만 만나지 말고 야당 사람들도 만나 고충을 들어야 한다. 나와 강북구 한국당 구의원들이 박 시장 옥탑방을 찾아가려고 신청했으나 답이 없었다. 지난 주말 강북구 번동에 시찰 나온 박 시장을 찾아가 현장 인사를 한 게 전부”라고 했다.
 
익명을 원한 전직 한국당 의원의 전언이다. “박 시장은 무섭도록 집요한 현실주의자다. 그는 구청마다 합법적인 지원금을 내려보내 독서나 숲체험 같은 주민 모임을 만든 뒤 자신과 가까운 시민단체 인사를 리더로 들여보내곤 했다고 한다. 그 결과 서울시 전체에 광범위한 박원순 지지 라인이 생긴 걸로 안다. 또 박원순은 6·13 지방선거 운동 기간 중 서울 시내를 동 단위까지 샅샅이 돌며 민주당 구·시의원과 구청장 후보들 유세를 도왔다. 이제 서울시를 장악한 민주당 구·시의원과 구청장들이 전부 박원순 원군이 될 것이다.”
 
하지만 친문들과 가까운 여권 소식통은 “박원순은 아직 갈 길이 멀다”고 진단했다. 그는 “민주당 친문 의원들이 박원순을 지지하기 시작한 기류는 없다. 여전히 경계하는 분위기”라고 했다. 특히 박 시장이 현 정부의 부동산 정책 기조와 결이 다른 ‘여의도와 용산 통개발’을 선언하자 친문들 사이에선 “3선 시장이 되면 청와대와 각을 세우며 대권 행보를 할 것이란 우려가 현실화됐다”는 비판이 나왔다고 이 소식통은 전했다. 그는 “김현미 국토교통부 장관이 격분한 끝에 공개 경고장을 날렸다는 얘기도 있다”고 덧붙였다. 이어 “대통령은 자신이 원하는 사람을 차기 대권 후보로 만들 힘은 없을 지 몰라도 원하지 않는 사람을 낙마시킬 힘은 있다. 그걸 잘 아는 박 시장은 당분간 대통령·친문과 최대한 우호 관계를 유지하면서 때를 기다리는 행보를 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강찬호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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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방연구원 전력발전연구부ㆍ군비통제센터를 거쳐 1994년 중앙일보에 입사한 국내 첫 군사전문기자다. 국방부를 출입한 뒤 최장수 국방부 대변인(2010~2016년)으로 활동했다. 현재는 군사안보전문기자 겸 논설위원으로 한반도 군사와 안보문제를 깊게 파헤치는 글을 쓰고 있다.

박용한 연구위원 : park.yonghan@joongang.co.kr (02-751-5516)
‘북한의 급변사태와 안정화 전략’을 주제로 북한학 박사를 받았다. 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ㆍ군사기획연구센터와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북한연구센터에서 군사ㆍ안보ㆍ북한을 연구했다. 2016년부터는 중앙일보에서 군사ㆍ안보 분야 취재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