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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 56년 전무송 … ‘세일즈맨의 죽음’은 나의 분신

서울 금호동 연극 ‘세일즈맨의 죽음’ 연습실에서 만난 배우 전무송. ’젊은 후배들과 함께 뛰어다니다 보니 저절로 건강해진다“고 말한다.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서울 금호동 연극 ‘세일즈맨의 죽음’ 연습실에서 만난 배우 전무송. ’젊은 후배들과 함께 뛰어다니다 보니 저절로 건강해진다“고 말한다.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배우 전무송(77)이 다시 ‘세일즈맨의 죽음’ 무대에 선다. 1984년 극단 성좌의 ‘세일즈맨의 죽음’에 출연한 것을 시작으로 이번이 일곱 번째다. 그는 성실하게 일하면 반드시 성공한다는 신념으로 평생을 산 세일즈맨, 하지만 결국 수명 다한 기계 부품처럼 버려지고 마는 비극적 인물 윌리 로먼을 연기한다. 오는 17∼26일 서울 대학로예술극장 대극장에서의 공연을 앞둔 그를 만나기 위해 6일 금호동 연습실을 찾아갔다. 아내 린다 역의 박순천, 형 벤 역의 한인수 등 익숙한 얼굴도 여럿이었다.
  
왜 다시 ‘세일즈맨의 죽음’인가.
“산업사회에 사는 사람들의 고달픈 삶을 보여주면서 관객들에게 ‘생각하시오’라고 말하는 작품이다. 아서 밀러가 1949년 발표한 작품이지만, 지금 이 시대의 현실과 비슷하다. 부자 관계와 부부 관계 등에 대해서도 감정 이입할 여지가 많다. 또 일거리를 찾지 못하는 아들 비프의 고민은 최근 청년들의 취업난과 닿아있다. 아무리 각박한 사회에서도 생각을 하는 사람은 메마르지 않는다. 생각을 하다 보면 세상을 어떻게 보고 어떻게 느끼고 살아야 할지 길이 보인다. 개인적으로는 34년 전 나에게 이 작품 출연을 처음으로 권유해준 연출가 권오일(1931~2008) 선생의 10주기를 기념하는 뜻에서 이 공연을 준비했다.”
 
그동안 보여줬던 ‘세일즈맨의 죽음’과 다른 점이 있나.
“주인공 로먼의 성격이 조금 바뀌었다. 그동안엔 가부장적 한국 아버지의 모습이 강했다. 하지만 아서 밀러가 쓴 원작의 뉘앙스는 좀 다르다. 가부장적이라기보다는 불안정하다. 이번 작품에선 로먼의 불안한 심리를 더 섬세하게 표현할 생각이다.”
 
극 중에서 젊은 로먼은 “꾸준히만 하면 틀림없이 좋아질 것”이라고 장담하고 그렇게 노력했다. 하지만 그의 한길 인생은 보상받지 못했다.
“꾸준히 해야 하지만 변화에 적응해야 한다. 인간은 스스로 끊임없이 변하면서 또 끊임없이 세상을 변화시킨다. 그 변화에 적응하지 못하면 로먼처럼 무너진다. 산업사회에서 일어날 수 있는 아주 위험한 현상이다. 지금 우리 사회에서도 마찬가지다. 그런 이유에서라도 많은 관객들이 이 작품을 봤으면 좋겠다.”
 
연극 ‘세일즈맨의 죽음’을 함께 만드는 배우 전무송 가족들. 왼쪽부터 사위 김진만, 딸 전현아, 외손자 김태윤, 전무송, 아들 전진우. [사진 극단 그루]

연극 ‘세일즈맨의 죽음’을 함께 만드는 배우 전무송 가족들. 왼쪽부터 사위 김진만, 딸 전현아, 외손자 김태윤, 전무송, 아들 전진우. [사진 극단 그루]

이번 공연은 한국연극협회가 원로 연극인의 업적을 기리기 위해 개최하는 ‘제3회 늘푸른연극제’의 개막 공연이기도 하다. 그의 가족들이 총출동한다는 점에서도 그에겐 특별한 의미가 있다. 그의 사위인 김진만이 각색과 연출을 맡았고, 그의 아들인 배우 전진우가 극 중에서도 그의 큰아들 비프 역으로 출연한다. 또 그의 딸 전현아는 제작사인 극단 그루의 예술감독으로 제작을 총괄하고, 초등학생인 외손자(김태윤)는 극 중 아이 목소리로 등장한다. 그는 “이렇게 ‘가족극’을 하면 출연료는 하나도 못 받는다”고 농담을 던지면서도  “이오네스코의 ‘왕은 죽어가다’와 셰익스피어 작품들도 한번 같이 만들어보고 싶다”고 말했다.
 
그는 1962년 현 서울예대의 전신인 드라마센터 부설 연극아카데미에 1기생으로 들어가면서 연기 인생을 시작했다. 신구·이호재·반효정·민지환 등이 그와 동기다. 그는 “‘깡통’이었던 내가 연기를 하면서 인생 공부, 철학 공부를 했다”고 했다. 또 “배우 생활을 하며 수많은 선생님을 만났다”고 했다. 연극아카데미를 졸업한 뒤 드라마센터에서 ‘걸식’하고 살았던 시절, “우리 집에 와 있어라”라며 그를 2년 동안이나 먹여주고 재워줬던 당대 최고 배우 김진규(1923∼1998), 그를 먹고사는 문제에 쫓기는 삶에서 벗어나게 해준 영화 ‘만다라’(1981)를 연출한 임권택 감독 등이 그에게 잊을 수 없는 스승이다.
 
그는 드라마센터 설립자인 동랑 유치진(1905∼1974) 선생의 기억도 여러 차례 끄집어냈다. 64년 그가 연극 ‘춘향전’으로 데뷔한 뒤 1년도 안 됐을 때였다. 어느 날 동랑이 그에게  “네가 가지고 있는 최고의 무기는 관객에게 연민을 느끼게 하는 힘”이라고 칭찬했다. 그러면서 “열심히 해서 민들레 씨앗처럼 되라”고 했다. 그는 “그 말이 나에겐 평생 숙제다. 민들레 씨앗은 아무리 척박한 땅에 떨어져도 꽃을 피우지 않나. 나도 그렇게 연극이 꽃 피우는 풍토를 만드는 데 기여하고 싶다”고 말했다. 그 숙제풀이의 일환으로 그는 아들·딸·사위와 함께 올 가을부터 연기 아카데미를 운영할 계획을 세우고 있다. “배우 훈련을 시켜 함께 연극을 만들면서 ‘아, 연극은 이렇게 만들어야 되는구나’를 가르쳐주고 싶다”는 것이다.
 
연극판은 여전히 배고픈 곳이다. 지원책·해결책이 있을까.
“어려워도 스스로 해결해나갈 수밖에 없다. 요즘 젊은 배우들은 정말 재주가 많다. 그 실력을 믿고 더 열심히 하라고 권한다. 지금 힘들어도 자신감을 잃지 마라. 배우로서의 무기를 잘 만들어놓고 있으면, 누군가는 틀림없이 보고 기회를 준다.”
 
반세기 넘게 배우로 살았다. 좋은 배우란?
“바르게 보고, 바르게 듣고, 바르게 느끼고, 바르게 생각하고, 바르게 표현하는 배우다. 그러려면 무엇이 바른 것인가를 깨우쳐야 한다. 죽은 다음에 ‘훌륭한 배우’ 소리를 들으면 다행이고, 지금은 훌륭한 배우가 되기 위해 가는 길이다.”
 
이지영 기자 jyle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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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급변사태와 안정화 전략’을 주제로 북한학 박사를 받았다. 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ㆍ군사기획연구센터와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북한연구센터에서 군사ㆍ안보ㆍ북한을 연구했다. 2016년부터는 중앙일보에서 군사ㆍ안보 분야 취재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