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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영종 중앙일보 통일전문기자 겸 통일문화연구소장

김정은의 유별난 '메기 사랑'이 왠지 불길한 이유


北, '메기의 추억'은 잊고, 북한 개혁·개방의 큰 틀 짜야
 
[이영종의 평양 오디세이] 김정은의 ‘메기 사랑’ 읽기
북한 김정은의 ‘메기 사랑’이 폭염보다 뜨겁다. 며칠 전 황해남도의 한 메기 양어장을 찾은 그는 “볼수록 희한한 공장”이라며 만족감을 드러냈다. 냉동 창고에 쌓인 열대메기를 본 뒤엔 “마치 금괴를 쌓아놓은 것만 같다”는 말까지 했다. 지난달 중국과의 접경지대 공장·협동농장과 동해안 지역 산업시설을 돌아보고 거친 불만과 질책을 쏟아내던 모습과 확연히 차이가 난다. 열대메기에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유난히 집착하는 이유는 뭘까. 메기 양식에 비춰진 북한 경제의 현주소를 진단해본다.
  
메기(catfish)는 하천이나 호수의 진흙뻘에 주로 서식하는 어종이다. 긴 수염이 인상적인 이 민물고기는 매운탕 등의 음식으로 우리에게도 낯설지 않다. 북한에서 때아닌 메기 붐이 일어난 건 1990년대 후반이다. 1994년 7월 김일성 사망과 기록적 폭염, 그리고 이어진 대홍수로 북한은 ‘고난의 행군’이란 혹독한 식량난을 겪었다. 2400여만 명의 북한 주민 가운데 ‘200~300만 명이 굶어죽었다’(실제로는 46만 명 정도로 우리 당국은 추산)는 얘기가 나올 정도였고, 북한 체제의 붕괴가 점쳐질 정도의 위기 상황에 봉착했다. ‘풀판을 고기로 바꾸자’며 토끼 사육을 강조했지만 별무성과였다. 다급해진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식량난 극복을 위해 빼 든 카드 중의 하나가 메기였다.
 
단백질을 충분히 공급하려면 토착종 메기로는 역부족이었다. 덩치가 크고 적은 사료로 빨리 키울 수 있는 열대메기가 낙점됐다.우리의 경우 수족관에서 관상용으로 선보이는 외래종인 클라라 메기가 바로 북한이 열대메기로 부르는 품종이다. 치어를 8개월 정도만 키우면 길이 60~70cm에 무게가 3㎏ 이상 나가는 성어가 된다는 게 장점으로 꼽혔다.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김정일의 지시로 평양은 물론 지방 곳곳에 열대메기 양식장이 우후죽순처럼 들어섰다. 그는 연일 메기공장을 찾아 “메기 생산을 정상화(頂上化) 하라”고 촉구했다. 김정일 위원장은 일본인 요리사였던 후지모토 겐지에게 해외로 가서 요리법을 배워오라고 해 직접 시식을 할 정도였다. 조선중앙TV 등 관영매체가 총동원돼 열대메기의 영양과 요리법을 알리는 캠페인을 벌였다. 평양 고려호텔을 비롯한 고급 식당가에선 열대메기 메뉴가 등장했다. 한 요리 경연대회에 선보인 메기요리만 70가지가 넘는다는 보도까지 쏟아졌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열대메기는 관심 밖으로 밀려났다.
 
무엇보다 열대 어종 특성상 육질이 푸석거리는 바람에 식감이 우리 입맛에 맞지 않았다. 지나치게 큰 외래 물고기에 대한 시각적·심리적 거부감도 더해졌다. 메기를 기르기 위해서는 사시사철 온수 공급이 필요했다. 통상 25~28℃의 수온이 유지돼야 하고, 겨울에도 10℃ 이상이 돼야 하지만 북한의 열악한 경제 사정으론 역부족이었다. 결국 최고지도자가 기치를 내건 사업임에도 불구하고 흐지부지됐다. 고위 탈북 인사는 “당시 북한 전역에 촘촘히 들어섰던 메기 양어장은 미나리꽝으로 바뀌었다가 곧 폐허처럼 방치됐다”고 전했다. 열대메기는 엉뚱하게도 북한에서 일등 신랑감을 일컫는 말로 통용되기 시작했다. ‘여’자를 열렬히 사랑하며 ‘대’학을 졸업하고 당증을 ‘메’고 있으며, ‘기’술이 있는 남성을 의미한다는 얘기였다.
 
2012년 초 집권한 김정은 위원장은 메기를 부활시켰다. “물고기 양식은 주민 식생활 향상에서 절대 양보할 수 없는 중요한 사업”이라며 다시 메기양식을 강조하고 나선 것이다. 북한의 기후 환경에 맞지 않고 주민으로부터 외면받는 상황임에도 김 위원장은 “지금 일부 일꾼(북한에선 간부를 지칭)들이 아직도 이런저런 조건타발(불평·불만)만 하면서 양어에 혁명적으로 달라붙지 않고 있다”고 질책했다. 이런 분위기 때문에 어느 누구도 김정은의 지시에 문제를 제기하거나 바른말을 할 수 없었다. 메기 소비에 대한 선전·선동도 강화돼 북한의 대외선전 사이트인 ‘조선의 오늘’은 메기된장구이와 깨튀기(튀김)·찹살완자찜·빵가루튀기 등 6종의 메뉴를 ‘조선특산요리’로 소개하고 있을 정도다.
 
메기 양식을 강조하는 김정은의 최근 통치 행보에선 돌파구를 찾지 못하는 북한 경제의 문제점이 고스란히 드러난다. 첫째는 군부에 의존하는 낡은 관행에서 탈피하지 못하는 모습이다. 지난 5일 황해남도의 삼천을 방문한 김정은 위원장은 “내각이나 성(省·부처)·중앙기관이 아니라, 물불 가리지 않고 결사관철로 대답하는 것을 체질화한 인민군대가 (공장 운영을) 맡아보고 있기에 당에서는 마음을 푹 놓고 있다”고 말했다. 경제 전문부서나 공장·기업소가 아닌 군부의 인력이나 설비·자재에 맡겨 모범단위를 만들고 내고, 이를 다른 기관이 따라 하도록 하는 방식에 북한 경제를 묶어두고 있는 것이다.
 
둘째는 여전히 선대(先代) 수령의 경제노선이나 신화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형국이다. 이미 대실패로 결론 난 메기양식에 집착하는 건 최고지도자를 ‘무오류의 존재’로 여기는 수령 절대주의의 그늘에 머물고 있음을 보여준다. 통일부 당국자는 “2년 전 여름 함북 지역 대수해 때 북한이 구호물품으로 냉동 생선을 현지에 보낸 건 김정은의 ‘물고기 사랑’ 지침에 당국이 얼마나 경직된 상태인지를 보여주는 사례”라고 귀띔했다.
 
셋째, 김정은 위원장이 북한 경제의 회생이나 개혁·개방을 위한 보다 큰 틀의 그림을 그리지 못하고 있다는 비판도 제기된다. 지난 6월 북·미 정상회담 개최지인 싱가포르의 발전상을 목도하고, 그 직후엔 베이징을 방문해 궤도교통지휘센터 등 첨단설비를 참관했다. 그런데 북한 귀환 후 김정은이 찾은 곳은 변경지역의 시범 협동농장이나 경공업 생산라인에 그쳤다.
 
김정은 위원장은 북·미 정상회담 공동성명에 서명한 뒤 “앞으로 세상은 아마 중대한 변화를 보게 될 것”이라고 공언했다. 이런 언급은 “나의 사상은 붉다. 나에게서 변화를 바라지 말라”던 아버지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집권 초기 다짐과 궤를 달리한다. 남북 및 북·미 정상회담 테이블에 선뜻 응한 김정은에게 기대가 쏠린 것도 이런 배경에서다. 하지만 국제사회를 향한 김정은의 약속은 두 달 가깝도록 실행되지 않고 있다. 그가 보여준 건 ‘비핵화’를 둘러싼 지루한 입씨름과 변죽만 울리는 듯한 태도다. 풍계리 핵 실험장 폐쇄와 미사일 시험장 해체, 미군 유해 일부 송환 등에선 합의 이행의 진정성이 감지되지 않는다. ‘중대한 변화’와는 더욱 거리가 멀다.
 
예고편이 길면 채널은 돌아간다. 이대로 가다간 북한의 변화를 고대하던 국제사회는 실망할 공산이 크다. 대북압박을 통해 김정은 체제에 변화를 강요하는 상황이 닥칠 수도 있다. 북한 체제를 감싸는 문재인 정부의 열정도 고갈될 수밖에 없다. 북한 최고지도자가 하루빨리 ‘메기의 추억’을 떨쳐버리고 개혁·개방의 통 큰 전략을 결단해야 하는 이유다.
 
이영종 통일북한전문기자 겸 통일문화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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