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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5 때도 기록적 폭염···부패한 시신 '펑펑' 폭발했다

Focus 인사이드 
 
서울이 모스크바보다 춥다고 해서 뉴스가 되기도 하고 반대로 혹서기에는 사막보다 온도계 숫자가 낮더라도 습기로 인해 사람의 혼을 빼놓기 일쑤다. 111년 전 한반도에서 현대식 기후 관측을 시작한 이후 최고라는 올해 더위는 아프리카나 동남아에서 온 사람들조차 버티기 힘들 정도다. 지구 온난화와 맞물려 이제는 가정에서 1개월 정도나 사용하는 에어컨이 생활필수품이 되어가는 추세다.

 
낙동강 전투에서 생포한 북한군 포로와 미군 [사진 AP]

낙동강 전투에서 생포한 북한군 포로와 미군 [사진 AP]

 
이처럼 무더위는 사람의 활동을 극도로 위축시킨다. 사람은 물론 각종 장비들도 날씨의 영향을 많이 받는데, 군도 마찬가지여서 상황에 따라 훈련이 취소되거나 조정될 정도다. 그렇다고 국방이라는 본연의 임무가 바뀌지 않는다. 특히 전시라면 날씨는 장애 요소가 될 뿐이지 전쟁을 막지는 못한다. 그냥 서 있기 힘들 만큼 태양이 붉게 타오르고 대지가 끓어오르는 한여름에도 싸워야 하는 것이 전쟁이다.
 
1950년 7월 한국전쟁에서 포격 중인 미군 [사진 미군]

1950년 7월 한국전쟁에서 포격 중인 미군 [사진 미군]

 
그중 1950년 7ㆍ8월에 벌어진 낙동강 방어전은 우리 역사에서 가장 뜨거웠던 전쟁터였다. 방어선이 뚫리면 그것으로 끝이었으므로 전선 상황도 치열했지만 여기에 더해 엄청난 폭염은 적과 아군을 구분하지 않고 전선을 최악의 지옥으로 만들어 버렸다. 참전 용사 수기에는 잠시 교전이 멈추면 치우지 못한 시신들이 부패하여 펑펑 터지는 소름끼치는 소리가 전선의 적막을 깼다고 했을 정도다.
 
1950년 8월 낙동강 방어전 당시에 양산을 들고 햇볕을 피하며 배식을 받는 미 25사단 장병의 모습. 이처럼 모든 수단을 동원하여 더위를 피하면서 전투를 벌였다. [사진 미 육군]

1950년 8월 낙동강 방어전 당시에 양산을 들고 햇볕을 피하며 배식을 받는 미 25사단 장병의 모습. 이처럼 모든 수단을 동원하여 더위를 피하면서 전투를 벌였다. [사진 미 육군]

 
살아있는 사람도 싸워 보지도 못하고 쓰러질 만큼 환경이 나빴다. 음식물이 쉽게 상해 제때 먹지 못하거나 환경이 불비하여 툭하면 질병을 얻었고 장비들도 작동이 멈추고는 했다. 한마디로 전투로 인한 어려움 못지않게 비전투 손실 또한 컸던 최악의 상황이었다. 특히 한반도가 낯선 유엔군에게 지리적으로 가장 무더운 대구를 정점으로 하는 낙동강 방어선 일대의 여름 기후는 당혹스러울 정도였다.
 
대표적인 사례가 미 25사단 킨(Kean)특임대의 낭패다. 마산에 위기가 고조되자 전선을 사천까지 밀어붙이기 위해 8월 7일, 101대의 전차를 증강한 킨 특임대가 역공을 시작했다. 한국전쟁 최초로 미군이 벌인 공세였지만 위치를 선점하고 있던 북한군의 반격을 받았고 여기에 더해 불볕더위로 전투 손실의 6배에 이르는 일사병 환자가 속출하면서 결국 더 이상 작전을 지속할 수 없었다. 이처럼 8월 초의 폭염은 적보다 무서운 존재였다.
 
제빙공장에서 얼음을 제작하는 모습. 폭염에 고생하는 병사들을 위해 얼음이 공급되었는데 일부는 공수를 통해 보급되었다. 이런 노력으로 낙동강 방어선을 지켜 냈다. [중앙포토]

제빙공장에서 얼음을 제작하는 모습. 폭염에 고생하는 병사들을 위해 얼음이 공급되었는데 일부는 공수를 통해 보급되었다. 이런 노력으로 낙동강 방어선을 지켜 냈다. [중앙포토]

 
당연히 계속 싸우기 위해서는 더위를 극복할 방법이 필요했다. 우선 안심하고 마실 수 있는 식수를 최전선까지 신속히 공급해 주어야 했는데, 운반 도중 물을 담은 통이 파손되는 경우가 비일비재했다. 이에 미 8군은 대구에 있던 제빙공장을 징발해 얼음을 제작한 후 각 부대에 공급하기로 했다. 그러나 당시 교통 여건이 몹시 열악해 모든 부대에 제때 얼음을 공급하기는 어려웠다.
 
그래서 격오지의 부대에는 수송기로 투하하는 방법을 사용하기도 했다. 대구 북쪽에서 격전을 벌이는 영국군 제27여단에 20파운드 내외의 얼음덩어리들을 큰 상자에 넣어서 공수 낙하했다. 8월 초의 극심한 무더위에 하늘에서 쏟아진 수많은 얼음들이 병사들의 갈증과 열기를 식혀준 최고의 선물이 되었던 것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이처럼 다양한 방법으로 그해 폭염을 극복하고 낙동강 방어선을 지켜 낼 수  있었다.
 
남도현 군사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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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급변사태와 안정화 전략’을 주제로 북한학 박사를 받았다. 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ㆍ군사기획연구센터와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북한연구센터에서 군사ㆍ안보ㆍ북한을 연구했다. 2016년부터는 중앙일보에서 군사ㆍ안보 분야 취재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