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벤츠는 되고 SK 안 돼 … 중고차 사업 해외기업만 배불린다

중고차 판매업은 중기 적합업종으로 지정되면서 대기업이 철수했다. 반면에 규제를 받지 않는 수입차 업체 들은 중고차 판매 사업을 강화하고 있다. 사진은 3월 부산에서 열린 중고차 박람회 ‘부카 2018’ . [뉴시스]

중고차 판매업은 중기 적합업종으로 지정되면서 대기업이 철수했다. 반면에 규제를 받지 않는 수입차 업체 들은 중고차 판매 사업을 강화하고 있다. 사진은 3월 부산에서 열린 중고차 박람회 ‘부카 2018’ . [뉴시스]

지난 6월 세계 최대 전자상거래 기업 아마존은 온라인 약국 ‘필팩(Philpack)’의 인수 계획을 발표했다. 필팩의 지난해 매출 규모는 1억 달러(약 1128억원)에 불과하지만 공급자 중심의 의약품 유통시장을 뒤흔들 잠재력을 갖췄단 평가를 받는다. 미국 50개 주 전체의 의약품 유통 라이선스를 보유한 필팩은 처방전 데이터를 기반으로 가정에 처방약을 배달한다. 매일 같은 약을 장기적으로 먹어야 하는 성인병 환자 등에게 맞춤형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이다.
 
하지만 한국에선 필팩 같은 온라인 의약품 유통 스타트업은 사업 시작조차 불가능하다. 온라인으로 의약품을 매매하는 것 자체가 불법이기 때문이다.
 
이상철 한국경영자총협회 본부장은 “한국에선 의사 처방이 필요하지 않은 의약품마저 온라인에서 살 수 없다”며 “이미 해외 직구 상품의 20.7%가 의약품·건강보조식품이어서 국내 기업과의 역차별 문제가 심각해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정보기술(IT) 업계 역시 역차별 규제가 국내 기업의 경쟁력을 떨어뜨린다고 호소한다. 10년 전만 해도 국내 동영상 서비스 시장은 아프리카TV·판도라TV 같은 국내 기업들이 선도했다. 하지만 2018년 현재 우리나라 동영상 서비스 시장은 유튜브나 페이스북 등 해외 업체의 전유물이 됐다. 이들이 경쟁력 높은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도 사실이지만 국내 기업에 대한 역차별 규제도 큰 역할을 했다. 국내 업체 이용자들은 실명으로만 동영상을 올릴 수 있어 마음껏 방송·영화 영상을 사용하거나 새로운 콘텐트를 창작하기 어려웠다. 그러나 유튜브는 실명 공개가 필요없었다. 사용자들은 더 재밌고 더 편한 유튜브로 옮겨갔다. 사용엔 경계가 없는데, 국내 기업만 경계 안에 둬 엄격하게 통제한 것이다. 이후 규제가 사라졌지만 이미 시장은 빼앗긴 뒤였다.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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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같은 역차별 속에 유튜브는 이미 상반기 기준 국내 동영상 광고 매출의 40.7%(메조미디어 조사)를 잠식했다. 구글이 네이버(8.7%)와 다음(5.7%)이 도저히 따라잡을 수 없는 수준으로 독주하고 있는 것이다. 상황이 이런데도 네이버는 지난달 26일 동영상 시장에서 지배력을 남용했다는 이유로 공정거래위원회의 현장조사를 받았다.
 
한 IT업계 관계자는 “외국엔 없는 높은 수준의 콘텐트 심의 규제가 한국 기업에만 적용된다”며 “일본에선 누구나 즐길 수 있는 등급인데도 게임 안에 슬롯머신이 나온다는 이유로 한국에선 ‘성인용’으로 분류되는 웃지 못할 사례도 있다”고 설명했다.
 
중고차 거래 사업도 역차별이 표면화된 분야다. SK엔카는 1999년 SK의 사내벤처로 출발했다. 중고차 시장 1위를 달려 나름 ‘알짜’ 소리도 들었다. 그러나 2013년 오프라인 중고차 판매업이 중소기업 적합업종에 지정되면서 ‘국내 대기업’이란 타이틀을 달고는 사업하기 어렵게 됐다. SK는 결국 SK엔카 직영몰을 사모펀드(PEF) 한앤컴퍼니에, SK엔카닷컴을 카세일즈홀딩스에 매각했다. SK 관계자는 “직원 아이디어로 시작된 회사라 애정도 있었고 성과가 나쁜 회사도 아니었지만 ‘골목상권 침해’ 같은 얘기를 들으며 사업을 더 키울 순 없었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메르세데스-벤츠나 폴크스바겐 같은 글로벌 자동차 업체들은 국내 대기업이 떠난 중고차 시장에서 사업을 꾸준히 확대하며 수익성을 다각화하고 있다. SK엔카닷컴에 따르면 전체 중고차 대비 수입차 16개 브랜드의 인증 중고차 판매 비중은 2015년 3.4%에서 올 상반기 7.6%로 늘었다. 벤츠·BMW·아우디 등 판매량이 많은 주요 6개 브랜드의 경우 지난해 인증 중고차 판매량이 전년 대비 72.9% 증가하는 등 성장세가 더 가파르다.
 
수입차 업체들이 중고차 시장에 눈독을 들이는 이유는 당장의 수익뿐 아니라 장기적인 신차 판매에도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중고차 가격을 직접 관리하고 안정시키면 결국 잔존 가치가 올라가고 신차 판매에도 긍정적 영향을 준다. 수입차 업체의 자동차 할부금융 사업도 확대할 수 있다.
 
하지만 신차 시장에서 이들과 직접 경쟁하는 국내 자동차 업체들은 중고차 사업의 시너지 효과를 누릴 수 없다.  
 
식품·유통 업계도 몇 년째 역차별 피해를 호소하고 있다. 제빵사업은 골목상권 침해 논란으로 국내 기업의 출점·성장은 제자리걸음이지만 해외 업체는 자유롭게 사업을 확대하고 있다. 또 대형마트 의무휴업을 복합쇼핑몰·백화점까지 확대하는 방안이 추진되고 있지만 이케아 등 비슷한 형태의 외국 기업 매장은 포함되지 않고 있다. 정용진 신세계그룹 부회장이 “이케아도 쉬어야 한다”고 주장한 이유다.
 
하상도 중앙대 식품공학과 교수는 “적합업종 제도는 역차별 문제도 심각하고 전반적으로 얻는 것보다 잃는 게 훨씬 많다”며 “경제·산업·사회적 측면에서 정교한 손익 분석을 거친 뒤 마련된 제도가 아니라 ‘포퓰리즘’적 제도로, 궁극적으로 철회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중소벤처기업부가 도입을 추진하고 있는 협력이익공유제도 국내 기업에 대한 역차별 여지가 크다. 이익 공유를 위해 국내 기업은 목표치를 설정하고 이를 정부 및 협력사와 공유해야 하는데, 이 과정에서 사업 전략 등이 노출될 우려가 있다는 것이다. 이상호 한국경제연구원 산업혁신팀장은 “삼성전자·현대차는 주요 경영 전략과 목표를 노출해야 하지만 애플·도요타는 그럴 필요가 없다는 점에서 심각한 역차별이 될 소지가 있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유연하고 창의적인 사업을 할 수 있도록 정부가 규제 시스템을 손봐야 한다고 지적한다. 하성용 신한대 자동차공학과 교수는 “중기 적합업종 같은 규제는 대상이 국내 기업에 한정돼 역차별을 유발한다”며 “규제 속에서 점유율을 놓고 싸우게 하기보단 함께 시장을 성장시킬 수 있는 실효성 있는 상생 방안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김도년·윤정민 기자 kim.donyu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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