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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국 칼럼] 언제까지 적폐만 파먹을 건가

김진국 중앙일보 칼럼니스트

김진국 중앙일보 칼럼니스트

김영삼(YS) 전 대통령의 “모두 놀랬재?”라는 말은 오래 화제가 됐다. 1993년 청와대에 들어간 지 11일 만에 군내 사조직인 ‘하나회’의 김진영(육사 17기) 육군참모총장과 서완수(육사 19기) 기무사령관을 쳐내고는 다음날 수석비서관회의에서 한 말이다.
 
그건 시작에 불과했다. 그들은 하나회의 핵심이었다. 그 이후 군내 하나회는 완전히 소탕됐다. 남아도 남은 게 아니었다. 요직에서는 철저히 배제됐다. 군인 아파트 내 하나회 명단 살포, 쿠데타설, 합참 회식 사건이 적시에 터지며 숙군 작업에 가속도가 붙었다. 육군이 독점해온 합참의장에 공군을, 기무사령관도 육사가 아닌 학군장교(ROTC) 출신을 임명했다.
 
그때만 해도 쿠데타가 먼 나라 이야기가 아니었다. YS가 정권을 인수한 게 쿠데타 세력이다. 그 쿠데타의 주력이 하나회다. 80년 서울의 봄 때는 정치군인들이 기고만장했다. 김대중(DJ)씨에게는 대통령이 되면 안 된다고 노골적으로 경고했다. 지금 생각하면 어이없는 일이다.
 
YS는 자기 덕분에 김대중 대통령이 집권할 수 있었다고 장담했다. 하나회를 해체하지 않았으면 무슨 일이 벌어질지 몰랐다는 말이다. 그 일은 YS였기에 해낼 수 있었다고 인정하는 사람이 많다. 민주주의의 큰 진전이다. 그렇게 정치군인의 뿌리를 뽑은 것으로 알았는데 다시 ‘쿠데타 음모’라니.
 
대통령 지지율이 60%로 떨어졌다. 낮은 게 아니다. 하지만 하락 추이가 심상치 않다. 날씨는 푹푹 찌고, 취직은 안 되고, 물가는 오르고… 정말 짜증이 나는 여름이다. 이게 전부 전직 대통령 때문이다. ‘갑질’하는 대기업, 금수저 재벌 3세 탓이다. 심지어 전직 대법원장, 쿠데타 음모까지 ‘적폐’ 대열에 합류했다. 분노 ‘뿜뿜’이다. 하지만 그것으로는 배고픈 걸 달랠 수 없다. 과거로 현재를 덮는 데는 한계가 있다.
 
김진국칼럼

김진국칼럼

그게 다 적폐 때문이라 생각했다. 6·13 지방선거도 그 덕분이다. 그러나 이제 집권 1년을 넘겼다. 달라진 걸 보여줄 때가 됐다. 과거 탓만 할 수 없다. 살기가 팍팍하고, 일자리가 사라지는데 이전 정권만 쳐다본다고 뾰족한 수가 생길 리 없다.
 
역대 정부가 역사를 바로 세웠다. 세우고, 또 세워도 이 역사란 놈이 자꾸 모로 누워버린다. YS는 광화문 중앙청 청사를 부수고, 청와대 주변 ‘안가(安家)’도 깡그리 없앴다. 군인들을 이어 집권했으니 할 일도 많았다. 당연히 해야 할 일이다. 그렇지만 부술 게 너무 많다 보니 외환위기가 오는 것도 몰랐다. 그로부터 25년이 지났는데 다시 ‘적폐’가 국정의 중심이다. 필요하면 해야 한다. 그렇지만 과거만 파먹고 있어도 되는지 걱정이다.
 
딱히 이념 문제만도 아니다. 노무현 정부는 DJ정부의 대북 송금을 뒤졌다. 박근혜 대통령은 이명박 정부의 4대 강 사업, 자원 외교를 털었다. 노무현 사람은 써도 이명박 사람은 외면했다. 이념보다 증오요, 분노다. 심지어 외교·안보마저 까발리고 뒤집는다. 나라의 무게가 가볍기 짝이 없다. 5년마다 역사를 뒤집고, 부수고, 단절하는 일을 반복한다.
 
민주 정치는 의견이 다른 세력들의 공존이다. 이들의 끊임 없는 대화와 타협을 통해 한 걸음씩 나아간다. 전직 대통령들은 모두 감옥에 있다. 정치의 몫은 절차를 만드는 일이다. 그 절차를 통해 죽이고, 살리는 건 국민의 몫이다. 정치세력이 직접 경쟁세력을 제거하려 들면 보복의 역사만 반복할 뿐이다.
 
사람들은 욕을 하면서 배운다. 한진그룹 총수 일가에 대해 다섯 번이나 구속영장을 청구해 모두 기각됐다. 별건으로 가지를 치다 보니 이제 범죄 혐의가 무엇인지도 모를 지경이다. 검찰뿐 아니다. 모든 사정 당국이 거국적으로 혐의 털기에 나섰다. 한진만도 아니다. 대통령이 먼저 혐의를 단정하고, 검찰이 수사에 착수하는 일이 벌어진다. 나쁜 놈이면 그래도 되는가. 군사정부조차 비난받을까 조심하던 일인데.
 
문재인 정부는 우리 사회의 주류를 교체하겠다고 한다. 조선 시대 ‘노론’을 거론하고, 친일파를 들먹인다. 그때 인물이 남아 있을 리 없다. 그 후손들이지만 뿌리를 뽑겠다는 말이다. ‘나는 선(善)이고 너는 악(惡)’이다. 공존이 아니라 배제의 정치다.
 
완전한 악의 제거는 가능한가. 유생의 입을 틀어막은 ‘분서갱유(焚書坑儒)’, 경제적 파국을 홍위병 난동으로 덮어버린 문화대혁명, 유대인 증오로 민족주의에 불을 지른 나치… 그것이 정말 악이건 아니건 집권자가 그렇게 규정하고 말살하려 했지만 어느 것 하나 성공한 게 없다. 그래도 공감대만 있다면 좋다. 하지만 더 시급하고 중요한 건 분명히 먹고사는 문제다.
 
김진국 중앙일보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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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방연구원 전력발전연구부ㆍ군비통제센터를 거쳐 1994년 중앙일보에 입사한 국내 첫 군사전문기자다. 국방부를 출입한 뒤 최장수 국방부 대변인(2010~2016년)으로 활동했다. 현재는 군사안보전문기자 겸 논설위원으로 한반도 군사와 안보문제를 깊게 파헤치는 글을 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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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급변사태와 안정화 전략’을 주제로 북한학 박사를 받았다. 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ㆍ군사기획연구센터와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북한연구센터에서 군사ㆍ안보ㆍ북한을 연구했다. 2016년부터는 중앙일보에서 군사ㆍ안보 분야 취재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