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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퉁이서 꺼이꺼이 운 남편의 외로움, 그땐 왜 몰랐을까

기자
송미옥 사진 송미옥
[더,오래] 송미옥의 살다보면(34)
엘리자베스 테일러, 록 허드슨, 제임스 딘(왼쪽부터) 주연의 영화 '자이언트'(1956).

엘리자베스 테일러, 록 허드슨, 제임스 딘(왼쪽부터) 주연의 영화 '자이언트'(1956).

 
가끔 한가한 시간을 이용해 오래된 명화를 찾아본다. 내 책장에는 버킷리스트로 볼 영화 DVD가 100편가량 있는데 반을 넘겨보았으니 성공은 한 셈이다. 요즈음은 내 주위의 고개 숙인 아버지들을 보면서 얼마 전에 본 ‘자이언트’라는 영화와 클로즈업되어 마음이 숙연해진다.
 
어제는 이웃 부부가 밭에서부터 투덕거리며 오는 길인가 본데, 집에 거의 다 올 때까지 앞서가는 부인이 바가지를 긁는데도 아무런 말 없이 뒤따르는 남편이 더욱더 애잔하게 보였다.
 
우선 자이언트라는 단어는 거인. 거대조직같이 크다는 의미를 두는 것 같다. 극중에서 자이언트는 2대에 걸친 ‘아버지의 삶’을 이야기한다. 요즘 신식 드라마같이 획 하는 반전이 있는 것도 아니다. 식상한 내용이지만, 교감을 느끼는 나이가 지금의 내 나이라는 것을 새삼 느낀다.
 
처음 학창시절 이 영화를 봤을 때는 주인공을 보러 갔다. 엘리자베스 테일러와 록 허드슨, 그리고 제임스 딘은 우상이었고 선망이었다. 내용은 기억이 없고 광활한 대지와 풍경, 그리고 주인공만 기억에 남은 영화. 지루해서 중간중간 졸다 보니 내용이 전혀 연결이 안 된 영화로 기억한다.
 
내용은 처녀, 총각이 눈이 맞아 사랑하고 열심히 일해 아들과 딸도 낳아 이런저런 갈등과 다툼 의견 차이로 살아가는 우리네 삶의 이야기다. 노예로 있던 일군(제임스 딘 역)이 열심히 일한 대가로 작은 땅을 상속받는데 그 땅에서 석유가 나오고 인생이 바뀌는 대반전이 일어난다. 아이들이 자라서 부모의 뜻과는 반대로 제 인생 제멋대로 살겠다고 나가는, 부모 속을 썩이는 모습도 지금이나 그때나 똑같다.
 
아이들이 배우자를 만나 출가를 하고 손자 손녀를 낳고 또한 할아버지 할머니가 되는, 해피엔딩으로 끝나는 그런 이야기인데 부자가 된 하인의 잔치에 초대받아 가야 하는 아버지의 씁쓸한 마음, 열심히 살았지만 현재 아버지의 모습에 실망하는 자식들의 편견, 인종 차별에 대한, 부모 마음에 안 차는 여인이랑 결혼하겠다는 자식의 배우자에 대한, 이런저런 속마음을 꾹꾹 누르고 살지만 하루도 편한 날이 없는 삶의 일상 속에서도 가끔은 그 마음을 알아주는 단 한 사람이 있어서 묵묵히 살아가는 아버지를 그려놓았다.
 
속마음을 드러내지 않고 앞만 보고 걸어가는 우리네 남편. 그리고 내 아버지가 생각나서 긴 영화의 마지막에는 꾹꾹 눌러 놓아 무거웠던 눈물이 났다.
 
자녀를 사랑하는 마음은 크다. 하지만 말이나 행동으로 표현하는 건 어색하다. 우리네 아버지들은 이런 무뚝뚝한 가장의 모습이었다. 당시 아버지와 자녀가 함께하는 시간은 그저 TV 앞에 앉았을 때 뿐. 이때도 대화는 없었다.   [사진제공='응답하라 1988' 영상 캡처]

자녀를 사랑하는 마음은 크다. 하지만 말이나 행동으로 표현하는 건 어색하다. 우리네 아버지들은 이런 무뚝뚝한 가장의 모습이었다. 당시 아버지와 자녀가 함께하는 시간은 그저 TV 앞에 앉았을 때 뿐. 이때도 대화는 없었다. [사진제공='응답하라 1988' 영상 캡처]

 
병이 걸려서도 술을 참지 못하고 계속 먹는 제 아비에게 내 아들은, 자식을 위해 당신 건강을 좀 챙겨 달라고 울며 소리 지르던 때가 있었다. ‘감히~ 아비에게…’라는, 가장 높은 위치에 있던 아비의 모습은 어디로 가고 아무 말 없이 고개를 끄덕이며 “그래 보지 뭐”라고 혼잣말로 중얼거리던 아들의 아버지.
 
딸아이가 내려온다고 하면 수염을 깎고 옷을 갈아입으며 매무새를 고치던 점점 작아지던 딸의 아버지. 아버지로서 마음 다해 키웠음에도 늘 미안하고, 아무 잘못 한 것도 없지만 늘 죄인 같은 마음으로 산 아버지. 점점 작아지는 아버지의 모습이었다.
 
아이들이 떠나고, 남은 잔소리를 후렴으로 엮어 마누라까지 바가지를 긁으면 남편은 돌부리 걷어차며 산허리 돌아 보이지 않게 사라졌다. 그 산 귀퉁이에서 담배 연기를 벗 삼아 꺼이꺼이 소리 없는 사자 울음을 운다는 것도 훗날 알았다.
 
지금 나는 40년 가까이 이어진 전쟁에서 적군을 물리쳤으나 조금 더 양보하고 이해하며 살지 못한 시간을 반성한다. 전쟁은 혼자서 하는 것이 아니므로 함께 있을 때 잘 싸우며 살라고 이야기해준다.
 
영화를 보면서 웃기는 장면에서 눈물이 나고 남들은 웃고 있어도 눈물이 날 때…. 세월의 나이를 먹고 또 다른 인생을 살아가는 내가 지금 자이언트라는 생각도 해본다.
 
섣달 그믐밤
                                                         이기윤 作
 
함께 덮고 자던 이불을 내 아이가 돌돌 감고 혼자 잔다.
잠결에 나도 아버지 이불을 뺏어 칭칭 몸에 감고 잔다
아버지는 혼자 아버지를 덮고 주무신다
아버지라는 이불이 추우신지 몸을 웅크리고 가끔 마른기침을 하신다
 
송미옥 작은도서관 관리실장 sesu323@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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