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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 병사 환송…"1937년 대구에도 한국판『안네의 일기』

기자
송의호 사진 송의호
[더,오래] 송의호의 온고지신 우리문화(28)
1930년대 대구공립여자고등보통학교 학생들의 모습. [사진제공 올댓플랜창]

1930년대 대구공립여자고등보통학교 학생들의 모습. [사진제공 올댓플랜창]

 
3월 3일 수요일 비. 3교시부터 수업을 하지 않고 5일 미나미 지로(南次郞) 총독님이 대구를 시찰하시는데 관공서나 개인 기관을 불문하고 대학생‧중학생‧소학생 모두에게 훈화를 한다는 공지가 있었기 때문에 강당에서 그 연습을 약간 하고…. 국어 상용=95%.
 
일제강점기인 1937년 대구의 한 여학생이 쓴 일기의 내용이다. 조선 총독의 지방 시찰을 앞두고 여학생들이 수업을 중단한 채 대비하는 모습이다. 마지막의 ‘국어 상용=95%’란 무엇일까. 여기서 국어는 한글 아닌 일본말을 가리킨다. 일제는 1930년대 들어서면서 황국신민화 정책으로 전환한다. 일본어 상용과 내선일체 의식을 강요하기 시작한 것이 이때다.
 
일본어 사용 90~95%가 무난한 선  
일본어로 쓴 여학생일기. 맨 윗간 끝에 일기를 검사한 담임선생님의 도장이 찍혀 있다. [사진제공 대구교육박물관]

일본어로 쓴 여학생일기. 맨 윗간 끝에 일기를 검사한 담임선생님의 도장이 찍혀 있다. [사진제공 대구교육박물관]

 
학생들은 수업시간은 물론 평소에도 일본말을 써야 했다. 일기장에는 하루 일과 중 일본어를 얼마나 사용했는지 비율을 따져 적었다. 이걸 100%로 쓰다가 야단맞은 친구들이 있어 90∼95%가 무난한 선으로 여겨졌다. 우리말을 쓰다가 들키면 교무실에 불려가 꿇어앉기도 했다. 그런 암울함이 일기에 녹아 있다.
 
일기의 주인공은 이름이 남아 있지 않다. 편의상 K양으로 붙인다. K양은 경북여고 전신인 대구공립여자고등보통학교 4학년이었다. 나이는 15세 전후. 일기는 1937년 2월 28일부터 12월 11일까지 쓴 것이다.
 
7월 16일엔 “아침에 정해진 시간에 구일자동차장 앞에 갔더니 벌써 정렬해 있었습니다. (새벽) 4시경이 되자 용감한 병사들이 나라를 위해 죽음을 무릅쓰고 간다는 것을 알기에 그 병사들이 무사하기를 빌며 열렬하게 우리 일본제국의 국기를 흔들면서 봉축했다”며 병사 환송식에 여학생이 동원된다.
 
병사들의 부적으로 쓰인 ‘천인침’ 
거리에서 천인침 놓는 풍경을 그린 당시의 신문 만평. 뒤로 ‘경상북도청’ 글자가 보인다. [사진제공 올댓플랜창]

거리에서 천인침 놓는 풍경을 그린 당시의 신문 만평. 뒤로 ‘경상북도청’ 글자가 보인다. [사진제공 올댓플랜창]

 
7월30일 일기엔 ‘천인침’을 놓는 이야기도 나온다. 천인침은 1000명의 여성이 천 하나에 한 땀씩 바느질을 하는 것으로 이걸 몸에 지니면 죽지 않는다는 부적이다. 이게 중일전쟁부터 제2차 세계대전 종전까지 유행했다.
 
10월 9일엔 “가사 시간에 재봉을 했습니다. 추위가 다가오는 중국에서 싸우는 용사는 여름옷 한 장뿐이니 경북의 위문품으로 조끼를 드리자고 해서 그 재단을 했다”고 적혀 있다. 10월 16일엔 “벌써 조끼 512벌을 완성했다”는 기록이 나온다.
 
또 “2교시에 두 번 헌납식 노래 연습을 했습니다. 도민의 혼이라고 할 수 있는 보국기(경북호) 헌납식은 오후 2시부터 시작했다”(11월 13일) 등도 나온다. 보국기는 강요된 시민 헌금으로 마련된 군용기다.
 
병사들 위문품을 만드느라 바쁜 여학생과 여성들을 그린 신문 만평. [사진제공 올댓플랜창]

병사들 위문품을 만드느라 바쁜 여학생과 여성들을 그린 신문 만평. [사진제공 올댓플랜창]

 
K양의 일기 후반부엔 공부 얘기는 줄고 병사 환송, 위문품 만들기, 황국신민 이야기가 매일처럼 등장한다. 여학생까지 전쟁 지원에 동원되는 모습이다. 히틀러 치하 유태인 소녀 안네 프랑크가 2년간 은신 생활을 하면서 남긴 『안네의 일기』를 연상시킨다.
 
여학생 일기는 일본 교토 도시샤대학 오타 오사무 교수에 의해 2007년 서울 헌책방에서 발견됐다. 대구교육박물관은 지난해 두 차례 일본을 방문해 이 일기장을 확인했다. K양은 일본어로 일기를 썼다.
 
1930년대 대구공립여자고등보통학교 전경. [사진제공 올댓플랜창]

1930년대 대구공립여자고등보통학교 전경. [사진제공 올댓플랜창]

 
그가 학교를 다닐 때 전교생은 400명 정도에 조선인 선생님은 6명, 일본인 선생님은 11명이었다. 통계에 따르면 1935년 대구는 인구 10만5716명 가운데 일본인이 2만6250명에 달했다.
 
송의호 대구한의대 교수, 중앙일보 객원기자 yeeho1219@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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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급변사태와 안정화 전략’을 주제로 북한학 박사를 받았다. 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ㆍ군사기획연구센터와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북한연구센터에서 군사ㆍ안보ㆍ북한을 연구했다. 2016년부터는 중앙일보에서 군사ㆍ안보 분야 취재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