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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자리 37만 개 달린 원격의료 발목잡기로 19년째 헛바퀴

SPECIAL REPORT
서울 강남세브란스병원에서 담당 의사와 통역사가 인터넷 원격의료를 통해 러시아에 있는 환자와 실시간으로 상담하며 처방을 내리고 있다. [중앙포토]

서울 강남세브란스병원에서 담당 의사와 통역사가 인터넷 원격의료를 통해 러시아에 있는 환자와 실시간으로 상담하며 처방을 내리고 있다. [중앙포토]

경북 산골마을에 사는 김영철(77·가명)씨는 몇 년 전만 해도 한 달에 한 번씩 인근 도시에 있는 병원에 갔다. 지병인 고혈압과 당뇨약을 받기 위해서다. 서너 시간마다 한 대꼴로 오는 버스를 타야 하는 데다 다리도 불편해 병원에 가는 게 여간 부담스러운 게 아니었다. 하지만 요즘은 매달 병원에 가지 않고 있다. 화상 상담 등을 통해 언제나 필요할 때 의사를 만날 수 있어서다. 꾸준히 관리한 덕에 수축기 혈압과 공복 혈당도 정상을 유지하고 있다.
 
김씨처럼 원격의료의 도움을 받는 이들도 있지만 아직 대다수 국민은 원격의료의 혜택을 받지 못하고 있다. 원격의료는 스마트폰 등 정보기술(IT) 기기를 이용해 의사가 환자를 진료하는 것을 의미한다. 국내 IT가 세계 최고 수준인 만큼 원격의료를 위한 여건도 충분히 갖춰져 있다. 하지만 원격의료는 2000년 강원도 16개 시·군을 대상으로 시범사업이 실시된 이래 20년 가까이 제자리걸음이다. 의료법 34조는 현재 의사-의사 간 원격진료만 허용하고 있다. 의료인들이 서로 조언을 구하거나 의료 지식을 지원하는 형식이다. 의사-환자 간 원격의료는 외딴 섬이나 깊은 산속 같은 격오지, 군부대 등 의료 취약지에서만 시범사업이 일부 진행될 뿐이다.
 
그런 가운데 최근 원격의료 허용을 둘러싼 논란이 다시 뜨거워지고 있다. 박능후 보건복지부 장관이 지난달 19일 취임 1주년 기자간담회에서 원격의료를 ‘의사-환자’까지 확대하겠다는 취지로 입장을 밝히면서다. 하지만 박 장관은 여당과 시민단체의 반대에 부딪히면서 자신의 발언을 철회했다. 특히 진보 성향의 정당들은 원격의료를 ‘의료 영리화 사전작업’이란 이유로 반대해 왔다.
 
 
원격의료, 효율성 높아 의료비 상승도 억제
 
[그래픽=박춘환 기자 park.choonhwan@joongang.co.kr]

[그래픽=박춘환 기자 park.choonhwan@joongang.co.kr]

박 장관은 한발 물러섰지만 원격의료 확대는 이미 세계적인 흐름이다. 원격의료를 활용한 디지털 헬스케어 시장도 빠르게 성장 중이다. 일본은 2015년 원격의료를 전면 허용한 데 이어 지난 4월부터는 건강보험까지 적용해 주고 있다. 미국에선 이미 전체 진료 6건 중 1건이 원격으로 이뤄진다. 중국은 원격의료 서비스 이용자가 1억 명을 넘어섰다. 시장조사기관인 IBIS월드가 지난해 5월 내놓은 보고서에 따르면 미국 원격의료 시장은 2012년부터 2017년까지 연평균 45.1%의 빠른 성장세를 기록한 것으로 나타났다.
 
원격의료 확대의 기대 효과는 분명하다. 우선 환자가 아픈 몸을 이끌고 병원을 찾는 수고와 시간을 줄일 수 있다. 직장과 육아 탓에 시간 맞춰 병원을 찾기 어려운 사람은 물론 이동이 어려운 장애인과 만성질환 관리를 위해 정기적으로 병원을 찾아야 하는 노인도 편하게 원격의료를 이용할 수 있다. 진료 효율성이 높아 의료비 상승을 억제하는 효과도 기대할 수 있다.
 
원격의료 관련 산업이 활성화되면 부가가치도 창출된다. 현대경제연구원은 원격의료 이용률이 인구의 20%로 확대되면 2조원 규모의 신규 시장이 생겨날 것으로 추산했다. 한국경영자총협회도 원격의료 허용과 영리병원 설립 등을 통해 최대 37만 개의 새 일자리가 만들어질 것으로 전망했다.
 
원격의료가 실제 환자에게 도움을 준다는 보고도 다수 있다. 2016년 1월 복지부가 148개 참여기관(환자 5300명)을 대상으로 2차 원격의료 시범사업을 벌인 결과 원격모니터링 대상자의 혈당 수준이 비대상자보다 더 낮아지고 복약 순응도 역시 더 높아졌다고 밝혔다. 도서벽지 주민의 88.9%도 “원격의료가 전반적인 건강 관리에 도움이 된다”고 답했다. 시범사업 기간에 원격의료 관련 오진이나 부작용 등 안전성 문제도 나타나지 않았다.
 
 
동네의원 의사-환자 간 원격의료 고민할 때
 
이처럼 원격의료 효과가 뚜렷하지만 이를 전면적으로 시행하지 못하는 건 대형병원 쏠림을 우려하는 의사 단체와 대기업 견제를 원하는 일부 시민단체, 그리고 이들의 눈치를 보는 정부와 정치권의 이해가 맞물린 탓이다. 시민단체와 대한의사협회 등은 원격의료가 의사가 없는 격오지 등에서만 예외적으로만 허용돼야 한다는 입장을 굽히지 않고 있다.
 
하지만 의사-환자 간 원격의료를 허용해야 한다는 목소리는 갈수록 커지고 있다. 의료인 사이에서도 입장이 갈린다. 서울대병원과 세브란스병원 등 대형병원은 “원격의료를 먼저 도입한 일본에서도 의사단체 등이 주장하는 대형병원 쏠림 현상은 나타나지 않았다”며 원격의료 확대에 적극적이다. 전문가들도 “병·의원이 없는 의료 취약지역의 원격의료를 확대하고 동네 의원을 중심으로 의사-환자 간 원격의료가 가능하도록 하는 방안을 고민해야 할 때”라고 지적한다.
 
물론 원격의료 확대 후에도 경증 환자가 대형병원에 집중되지 않도록 원격의료 대상을 노인과 장애인 등으로 한정하는 보완책을 고민할 필요가 있다. 실제로 복지부는 의료법 개정안 등을 통해 동네 의원 중심의 의사-환자 간 원격진료를 추진하겠다고 밝혀왔다. 정광호 서울대 행정대학원 교수는 “원격의료를 확대하면 현재 지역 단위로 이뤄지는 의료 서비스 소비 수준을 파격적으로 뛰어넘는 의료 수요를 낳을 것”이라며 “지금과 같은 규제가 이어진다면 의료와 관련한 새로운 수요를 충족시키지 못할 뿐 아니라 원격의료 관련 기업과 의료기관 등 공급자 측의 혁신도 막히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수기·이에스더 기자 retalia@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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