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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 하사하고 수감자 석방 … 조선시대에도 폭염과 전쟁

조선왕조실록에 나오는 더위 기록. [중앙포토]

조선왕조실록에 나오는 더위 기록. [중앙포토]

한반도를 덮친 폭염이 새 역사를 쓰고 있다. 기상 관측 이래 최악의 폭염이었던 1994년 기록을 속속 갈아치우면서 올해 수은주가 과연 어디까지 올라갈지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정조, 일꾼에게 더위 쫓는 약 지급
성종, 경범죄자 보석으로 풀어줘

우리나라에서 근대적 방식의 기상 관측은 1907년 10월 1일 시작됐다. 서울에 대한제국 농상공부 산하 관측소가 세워진 이후 공식적인 기온 측정이 시작된 지 111년이 됐다. 기상청은 기온이 33도 이상인 상태가 2일 이상 지속될 경우 폭염주의보를, 35도 이상이 2일 이상 지속되면 폭염경보를 발령한다.
 
올해처럼 역사적인 폭염이 기록된 건 1930~40년대가 처음이다. 1939년은 폭염 일수가 19.3일을 기록해 111년 기상관측 역사상 2위를 유지하고 있다. 1942년 8월 1일에는 대구의 기온이 최초로 40도를 넘어섰다. 이 기록은 76년간 깨지지 않았다. 이후 1967년과 1977년이 더웠던 해로 기록돼 있지만 폭염이 사회 문제가 될 정도는 아니었다.
 
1994년은 한반도 폭염의 역사에 획을 그은 해였다. 그해 폭염 일수가 22.8일에 달해 1900년 이래 폭염 일수 1위를 기록했다. 당시 대구의 7월 평균 기온이 30도(30.2도)를 넘는 진기록을 세우기도 했다. 경기도 양평은 그해 7월 11일부터 31일까지 21일 연속 폭염경보가 발령됐다.
 
조선 시대에도 폭염은 백성들을 괴롭혔다. 정조 18년(1794년)에는 폭염이 극심해 공역에 종사하는 백성들이 더위를 먹는 경우가 많았다는 기록도 전해진다. 이에 정조는 “불볕더위가 이와 같은데 공역을 감독하고 종사하는 많은 사람이 끙끙대고 헐떡거리는 모습을 생각하니 일념을 잠시도 놓을 수 없다” 며 ‘속이 타는 자의 가슴을 축여주고 더위 먹은 자의 열을 식혀주는’ 약 4000정을 조제한 뒤 화성 지역 공역소에 하사하기도 했다. 이 약이 바로 더위를 먹었을 때 복용한다는 ‘척서단(滌暑丹)’이다.
 
성종 15년(1484년)에는 더위로 고통받는 죄수들이 늘자 성종이 직접 강력범죄자를 제외한 수감자들에 대한 석방을 명했다. 성종은 “이처럼 호된 더위에 가벼운 범죄로 갇혀 여러 날 형문을 받다 억울하게 목숨을 잃는 자가 반드시 있을 것”이라며 보방(保放·보석)토록 했다. 폭염으로 인해 경범죄를 저지른 죄인에 한해 일종의 ‘불구속 수사’를 지시한 셈이다.
 
미래에는 올해 같은 더위가 더욱 많아질 것이란 우려다. 실제로 영국 기상청 연구팀은 2003년 유럽에서만 7만여 명의 사망자를 낸 대폭염이 앞으로 127년마다 닥칠 것으로 추정했다.
 
김다영 기자, 여경훈 정보검색사 kim.dayoung1@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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