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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네 사랑방 역할 톡톡 … 공공 건물 대세는 ‘미니’

한은화의 A-story 
서울 도봉구 창2동 골목길에 자리 잡은 ‘도봉 청소년누리터 위드’. 도봉구가 운영하는 청소년을 위한 놀이·교육 시설이지만, 동네 주민 모두의 놀이터로 인기를 끌고 있다. [사진 노경 작가]

서울 도봉구 창2동 골목길에 자리 잡은 ‘도봉 청소년누리터 위드’. 도봉구가 운영하는 청소년을 위한 놀이·교육 시설이지만, 동네 주민 모두의 놀이터로 인기를 끌고 있다. [사진 노경 작가]

지난해 3월 서울 도봉구 창2동 좁은 골목길 안. 가로 10m, 세로 30m의 주차장 땅에 쳐진 공사 가림막에 주민들의 이목이 집중됐다. “아니 이 기다란 땅에 무슨 건물을….” 그해 11월,  창 크기가 모두 다른 우윳빛 4층 벽돌 건물이 땅 모양 대로 얇고 길게 들어서자 또 다른 궁금증이 터져나왔다. “무슨 건물이야? 집이야? 카페야?”
 
기록적인 무더위가 한창인 요즘, 이 건물 앞에는 오후마다 노란색 어린이집 승합차가 선다. 시원한 건물에서 기다리던 엄마들이 나와 아이들을 데리고 다시 건물 안으로 들어간다. 공동 육아방이라도 되는 걸까. 이 건물의 이름은 ‘도봉청소년누리터 위드(이하 누리터)’. 도봉구에서 지은 청소년 시설로, 아이들을 위한 놀이 및 교육 공간이다.
 
원래는 만 9세부터 24세까지 이용할 수 있는 시설로 계획했지만, 아이를 따라 엄마들이 모이면서 자연스레 열린 사랑방이 됐다. 누리터의 이문희 청소년지도사는 “무더위를 피해 단골 손님이 된 엄마들의 요청으로 어린이집 차도 아예 건물 앞에 선다”며 “하교하는 아이들과 퇴근하는 아빠까지 무더위를 피해 이곳에 모였다가 집으로 가기도 한다”고 전했다.
 
 
원래 청소년용, 이젠 엄마·아빠까지 몰려
 
누리터 2층 다목적실에서 요리 수업을 받고 있는 아이들. [사진 노경 작가]

누리터 2층 다목적실에서 요리 수업을 받고 있는 아이들. [사진 노경 작가]

‘누리터’는 작다. 장건수 도봉구청 청소년아동친화도시팀장은 “구내 청소년 시설 중 가장 작은 규모(대지면적 328.3㎡)”라고 전했다. 최근 도심에서 유행하는 협소 주택처럼 공공 건축물도 작게 짓는 요즘 추세를 대변하는 건물이다. 장 팀장은 “크더라도 구 외곽에 있어 접근성이 떨어지는 시설보다 걸어서 다닐 수 있는 작은 공공 공간을 더 지으려 한다”며 “누리터 같은 공간을 동마다 하나씩 짓는 게 목표”라고 덧붙였다. 누리터의 하중래 관장은 “청소년을 위한 강좌를 만들었다가 모인 엄마들을 위한 강좌를 만들었고, 이제 아빠들을 위한 강좌도 만들 계획”이라며 “아이들 시험기간에는 아예 독서실처럼 운영하는데, 작은 공간이다 보니 필요에 따라 프로그램을 탄력적으로 운영할 수 있는 장점이 있다”고 덧붙였다.
 
작다고 짓기 쉬운 것은 아니다. 동네 단위로 들어온 소규모 공공 공간의 경우 부지 매입 단계부터 진통을 겪는다. 외곽 지역보다 땅값이 비싸고, 구청의 매입 소문이 퍼지면 집주인이 매물을 거둬들이기 일쑤다. 대다수 건물이 자투리땅에 지어지는 이유다.
 
작지만 더 알차야 하는 소규모 공공 건물은 건축가 선정방식을 달리하면서 고차 방정식의 답을 찾았다. 과거에는 소규모 관급 공사의 경우 가격 입찰로 공사 업체를 정했다. 하지만 서울시가 설계비 1억 미만의 공사라도 공모전을 치르게 하면서 분위기가 달라졌다. 값싸게 짓는 것보다 질 좋게 짓는 것을 더 높이 평가하면서다.
 
덕분에 아이디어가 풍부한 젊은 건축가들이 공모전에 뛰어들기 시작했다. 누리터의 경우 도봉구의 요청을 받아 서울시 도시공간개선단에서 추천한 5명의 젊은 공공 건축가가 공모전에 참가해 경쟁했다. 그 결과 신호섭·신경미 건축가(건축사사무소 신 공동대표)의 안이 뽑혔다.
 
건축가는 주민들이 더 쉽게 건물 내부로 들어올 수 있게 경계를 없애는데 주력했다. 작은 건물인데도 앞쪽 공간 일부를 광장으로 내어 놓아, 좁은 골목길에 숨통이 트이게 했다. 건물의 맨 앞쪽에 큼직하게 삼각형 모양의 계단실을 둔 것도 이색적이다. 신호섭 건축가는 “작은 건물의 경우 계단실을 최대한 줄이지만 누리터에서는 오히려 계단실을 공용공간으로 쓸 수 있게 디자인했다”고 말했다.
 
 
‘정든마을’ 부지 매입·건축비 서울시 지원
 
그래피티가 그려진누리터의 계단실. [사진 노경 작가]

그래피티가 그려진누리터의 계단실. [사진 노경 작가]

1층부터 4층까지 뚫려 있는 계단실 벽면에는 알록달록한 그래피티가 그려져 있다. 국립현대미술관 창동레지던시 입주 작가로 있던 네덜란드 그래픽 디자인 듀오 ‘팀 써즈데이’의 작품이다. 건축가와 구청 공무원들이 무작정 찾아가 부탁했다고 한다.
 
지난달 31일 찾은 누리터의 1층 카페에는 게임을 하는 아이들로 북적였고, 2층의 넓은 계단 참에는 엄마들이 모여 앉아 있었으며, 3층 밴드실에서는 밴드 동아리의 드럼 소리가 울려퍼졌고, 4층 강의실에서는 미술 수업이 한창이었다. 아이의 미술 수업이 끝나길 기다리고 있던 창2동 주민 이미정(41)씨는 “시끄럽게 떠들어도 눈치 주지 않고, 편하게 놀게 해주니 이보다 더 좋은 놀이터가 없다”며 웃었다.
 
성북구 정릉3동의 ‘정든마을 주민공동이용시설’은 오래된 동네 안에 지어졌다. [사진 김지욱 작가]

성북구 정릉3동의 ‘정든마을 주민공동이용시설’은 오래된 동네 안에 지어졌다. [사진 김지욱 작가]

지난해 6월 완공된 성북구 정릉3동 ‘정든마을 주민공동이용시설’은 더 작다. 땅 면적이 109㎡인데 1.8m에 불과한 골목길을 끼고 있다. 정든마을은 1950년대 지어진 일명 ‘부흥주택’과 한옥이 뒤섞인 마을이었다. 부흥주택은 한국전쟁 이후 도시 재건을 목적으로 지은 일종의 공공주택이다. 아파트 단지가 될 뻔했던 동네는 부흥주택과 한옥의 영향으로, 도시재생 지역으로 선정됐다. 마을을 살리자니, 공동체의 구심점이 되는 공간이 필요해졌다. 최근 들어 구도심의 낙후된 동네마다 주민공동이용시설이 들어서고 있는 배경이다. 부지 매입 비용과 건축비는 시가 지원하고, 공간 관리비는 주민이 마련해 운영한다.
 
정든마을의 사랑방 설계는 서울시 공공건축가로 활동하고 있는 구선주 건축가(구우 건축사사무소 대표)가 맡았다. 구 대표는 “주민들과 함께한 회의 횟수만 20차례가 넘다 보니, 설계 기간만 1년 걸렸다”고 전했다. 오래된 동네에 들어서는 새 건물이 너무 튀지 않도록 건축가는 잿빛 전벽돌을 골랐다. 벽돌색은 주민 투표를 거쳐 정했다.
 
주민들이 건축주로 나서 이렇게 설계 단계부터 참여하며 건축가와 소통한 결과, 정든마을 사랑방은 작지만 필요한 시설은 다 있는 공간이 됐다. 할머니 사랑방, 묵화 수업이 열리는 교실, 카페, 작은 도서관 등 3층 규모의 건물에 다락을 포함한 공간 갯수만 6개다. 특히 건물 2~3층의 작은 도서관에서는 방과 후 돌봄 교실이 열려 9명의 동네 어린이들이 이용하고 있다. 김정선 정든마을 주민공동체 운영위원회장은 “층고가 3.5m인 1층에서는 한 달에 한 번 영화도 상영한다”며 “건물 크게 지으면 활용도 못 하고 관리비만 많이 나오는데, 작아서 집 같고 내용도 알차 다른 마을에서 답사도 많이 오고 있다”고 말했다.
 
한은화 기자 onhwa@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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