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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시평] 트럼프는 비즈니스맨보다 TV 스타

존 에버라드 전 평양 주재 영국대사

존 에버라드 전 평양 주재 영국대사

전문가들은 오랫동안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대북정책의 목표와 동기를 알아내려고 애써왔다. 많은 전문가는 트럼프 대통령이 예전에 비즈니스맨이었다는 점에 초점을 맞춰 그가 전략적이기보다는 사업을 하듯 한반도 문제에 접근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시간이 갈수록, 특히 최근 몇 주 동안 G7 정상회의, 나토 정상회의, 미·러 정상회담 등에서 보여준 행동을 볼 때 나는 트럼프 대통령에 대한 다른 해석이 지나온 과정을 더 잘 설명해준다고 생각하게 됐다. 바로 트럼프 대통령은 비즈니스맨이었지만 동시에 리얼리티 쇼 ‘어프렌티스(The apprentice·견습생)’의 TV스타였다는 것이다. 그는 끊임없이 쇼에 대한 평가를 체크하면서 청중을 즐겁게 할 새롭고 뭔가 끝내주는 장면을 찾았다. 거래나 협상보다는 청중의 넋을 빼놓을 극적인 장면 연출에 관심이 많았다.
 
내 생각이 맞다면, 트럼프 대통령의 마음속에 정상회담은 협상하는 자리가 아니라 전 세계, 특히 미국 미디어에 뭔가 근사한 장면을 보여줘 자신에 대한 평가를 높이는 자리였다. 싱가포르 회담 이후 트럼프 대통령은 또 한 번 이목을 끄는 회담을 했는데 이번엔 러시아 푸틴 대통령과의 만남이었다. 물론 이 회담에서도 구체적 성과는 거의 없었다. 급기야 7월 30일에는 또 하나의 구경거리로 로하니 이란 대통령을 만날 의사가 있다고 발표했다. 이번에도 ‘전제조건’은 없었다. 아마 트럼프 대통령에게 정상회담은 ‘정치(politics)’가 아니라 ‘무대(Theatre)’인 셈이다.
 
내 생각이 맞다면 공동성명은 그에겐 중요하지 않았다. 카메라 앞에서 서명 장면을 보여주는 게 목적이라면 내용은 크게 상관이 없다. 트럼프 대통령이 공동성명을 준비했던 미국 협상팀에게 북한이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을 빼지 말라고 지시했다는 보도를 보면 더욱 그렇다. 그는 단지 뭔가에 사인하기를 원했고 힘들게 합의를 만들어 내는 데는 관심이 없었다.
 
이런 분석이 맞다면 나아가 미국의 기본 스탠스를 다시 생각해봐야 한다. 아마 트럼프 대통령의 ‘화염과 분노’ 위협은 미디어의 관심을 끌기 위한 것이었을 수 있다. ‘완전하고 검증 가능하며 돌이킬 수 없는 비핵화(CVID)’도 미국 내에서의 파괴를 위해 넘겨받은 북한 핵무기 한 개 옆에서 대중의 박수를 받으며 포즈를 취할 기회 정도였을 수 있다. 이럴 경우 북한 핵 위협을 실질적으로 끝내기 위한 협상은 요원할 수밖에 없다. 왜냐하면 이런 식의 협상은 트럼프 대통령이 원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아마도 북한이 미국으로부터 체제 안전 보장을 받으려면 모든 핵무기를 미국에 넘기는 게 아니라 TV 카메라 앞에서 1~2개의 핵탄두를 건네주기만 하면 될 것이다.
 
평양도 같은 생각일지도 모른다. 평양이 지금 TV스타 도널드 트럼프와 협상 중이라는 결론을 내렸다면 트럼프 대통령 재임 동안 평양이 할 일은 그에게 TV에 나올 장면을 계속 만들어주는 것이다. 미군 유해 송환이 한 예다. 다음엔 지난 5월 핵 실험장을 폭파하는 모습을 공개한 것처럼 미사일 발사장 폐기를 공개할 것이다. 이후 김정은 위원장은 두 번째 정상회담에 ‘출연’할 기회를 주겠다고 제안할 수 있을 것이다. 북한이 그런 TV 장면을 계속 제공한다면 트럼프 대통령은 북한이 대북 제재를 무너뜨리고 한국과 새로운 관계를 맺으면서 이런저런 이익을 챙기더라도 방해하지 않을 것이다. 만약 김 위원장이 트럼프 대통령에게 전화를 걸어 평화협정 체결에 동의할 경우 TV 카메라 앞에서 핵폭탄 한 개를 넘겨주겠다고 제안하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트럼프 대통령이 TV스타식으로 정책을 추진한다는 생각이 맞을 경우 북한은 여러모로 수월하게 일을 진행할 수 있다. 하지만 두 가지 리스크가 있다. 첫째, 트럼프 대통령은 자신이 돋보이는 TV 노출을 좋아하는 것만큼 자신이 나쁘게 보이는 걸 끔찍하게 싫어한다는 것이다. 그는 비판에 매우 민감하고 때로는 비판하는 사람들에게 공격적으로 달려든다. 북한이 아주 주의해야 한다는 말이다. 특히, 북한이 미사일을 계속 만들고 있다는 7월 31일 보도와 같은 뉴스는 위험하다. 왜냐하면 TV스타 트럼프 대통령의 자부심에 상처를 줬기 때문이다. 돌연 180도로 태도를 바꿔 또 한 번 군사행동을 하겠다는 분노의 위협을 할 수 있다. 물론 평양에 폭탄을 떨어뜨리는 것은 눈에 확 띄는 장면이 될 것이다.
 
둘째는 외교가 TV 시리즈화하는 건 트럼프 대통령 재임 중 현상이란 점이다. 아무도 그가 얼마나 백악관에 있을지 모른다. 재선할 수 있을지, 첫 번째 임기를 마치지 못하고 돌연 백악관을 떠날지도 모른다. 펜스 부통령이 대통령이 되면 입장은 달라질 것이다. 솔직히 선과 악의 구분에 불굴의 의지를 갖고 있는 독실한 크리스천 대통령을 상대하는 것은 북한과 중국에겐 악몽 중의 하나일 것이다.
 
싱가포르 회담 장면을 다시 보면서 북·미 간에 격렬한 토론과 긴장이 실제 존재했는지 자문해본다. 아마 김 위원장과 트럼프 대통령은 각자 속셈대로 두 사람이 만나는 장면을 세상에 보여주기를 원했을 것이다. 둘 중 누구도 사적 자리에서 서로에게 한 말이나 공동성명의 내용에 대해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카메라 앞에서 서명할 기회만 있으면 되니까. 그래서 당연히 두 사람은 잘 지낼 수밖에 없었다.
 
존 에버라드 전 평양 주재 영국 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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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급변사태와 안정화 전략’을 주제로 북한학 박사를 받았다. 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ㆍ군사기획연구센터와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북한연구센터에서 군사ㆍ안보ㆍ북한을 연구했다. 2016년부터는 중앙일보에서 군사ㆍ안보 분야 취재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