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eLoad Image preLoad Image
검색 바로가기
주메뉴 바로가기
주요 기사 바로가기
다른 기사, 광고영역 바로가기
중앙일보 사이트맵 바로가기

[삶의 향기] 1.05의 악몽 vs 13.36의 희망

신예리 JTBC 보도제작국장 밤샘토론 앵커

신예리 JTBC 보도제작국장 밤샘토론 앵커

#1.16 → 1.05
 
“국장, 이러다 나라 망하게 생겼어요. 우리 집안 장손이 애를 안 낳겠답니다.” 2004년 가을, 장장 12회에 걸쳐 중앙일보에 연재된 특집 기획 ‘아이 안 낳는 사회’는 당시 편집국장 방에 불쑥 들어가 던진 이 말 한마디에서 비롯됐다. “그거 기사 되는데?” 국장 지시로 당장 특별취재팀이 꾸려졌고 덜컥 발제부터 해버린 나 역시 팀원이 돼서 두 달 가까이 함께 매달리게 됐다. “결자해지(結者解之)하라”는 선후배의 성화에 1회 1면 톱기사를 떠맡고 고민 끝에 첫머리에 소환한 것도 문제의 그 장손 얘기다. “경제가 이리 안 좋은데 뭘 믿고 애를 낳느냐. 회사에서 언제 잘릴지 모르는데 노후 대비가 더 중요하다”던 그의 항변 말이다.
 
그나마 발 빠르게 우리 사회에 닥쳐온 ‘저출산 재앙’에 주목했다고 평가받은 기획이지만 돌이켜보면 왜 그리 굼떴던 건지 의아하기만 하다. 여성 한 명이 평생 낳는 아이 수를 뜻하는 이른바 합계출산율이 세계 최저인 1.16명(2002년 기준)으로 떨어졌다는 통계가 발표된 게 그보다 1년 전이기 때문이다. 1.16이란 수치가 뭘 뜻하는지 별다른 경각심을 갖지 못하다가 막상 가까운 친족의 일이 되고 나서야 뒤늦게 발등의 불로 느끼게 된 거다. 비단 나만 그랬던 게 아니다. 정부의 뒷북 대응도 기가 찰 지경이다. 1983년에 이미 출산율이 2.1명(인구를 현 상태로 유지할 수 있는 수준) 이하로 떨어져 저출산이 본격화됐는데도 그때껏 아무 대책 없이 20여 년을 허송세월했으니 말이다.
 
‘둘도 많다. 하나씩만 낳아도 삼천리는 초만원’이란 1980년대 가족계획 표어를 ‘아빠, 혼자는 싫어요. 엄마, 저도 동생을 갖고 싶어요’라는 출산 장려 문구로 바꾼 게 비로소 2004년의 일이다. 앞선 20년은 그렇다 쳐도 ‘1.16 쇼크’의 의미를 깨닫는 데조차 1년이나 걸렸단 소리다. 이처럼 늦어도 너무 늦은 방향 전환 탓에 돈을 아무리 쏟아부어도 대한민국은 저출산의 늪에서 도저히 헤어나지 못하는 신세가 됐다. 지난해 출산율은 역대 최저인 1.05명. 올해는 지구상에서 유일하게 1명 아래까지 떨어지는 나라가 될 참이다.
 
#1.95 → 13.36
 
“공감도 조사는 저와 함께 진행을 맡아줄 박진, 아니 김진일 기자가 해주겠습니다.” 지난 토요일 새벽 ‘밤샘토론’ 생방송 도중 어이없는 실수를 하고 말았다. 무려 4년 9개월 동안 이 프로그램을 함께 해온 박진규 기자가 얼마 전 개인 사정으로 하차했는데 그만 머리보다 입이 먼저 나서 그의 이름을 부르려 한 거다. 내가 이럴 정돈데 정든 자리를 떠나는 사람이 느꼈을 섭섭함은 오죽할까. 하지만 앞으로 1년간 아들과 함께할 시간이 기대된다며 그는 씩씩하게 웃으면서 갔다.
 
JTBC 보도국에서 남성 육아휴직을 쓰는 첫 기자가 되겠다는 그의 얘길 들으며 말로는 응원한다면서도 속으론 적잖이 놀랐다. 친한 후배가 직접 겪는 일이 되고 나니 남자 육아휴직자가 지난해 전체의 13.36%로 늘었다는 통계가 그제야 실감이 났다. 올해 상반기엔 증가세가 더 두드러져 그 비중이 16.90%까지 이른단다. 무려 여섯 명 중 한 명꼴이다. 휴직 중 급여를 올려주는 제도적 개선, 일과 삶의 균형을 중시하는 사회 분위기의 변화가 맞물린 덕분이다.
 
말 그대로 격세지감을 느낄 일이다. 14년 전 ‘아이 안 낳는 사회’를 연재한 뒤 한동안 온갖 간담회에 불려 다녔다. 저출산 타개책을 찾는 정부가 민간의 목소리를 듣겠다며 마련한 자리들이었다. 그때 입이 아프도록 아빠 육아휴직 활성화를 강조했던 기억이 난다. 성 평등, 일과 가정의 양립, 독박 육아 등 우리 사회의 저출산을 둘러싼 여러 구조적 요인들을 일거에 해결할 ‘치트키(cheat key)’라 여겼기 때문이다. 하지만 전체 육아휴직자 중 남성이 달랑 1.95%에 불과했던 당시로선 메아리 없는 외침일 따름이었다. 부디 1.05명의 악몽을 깨뜨리는 한 가닥 희망이 13.36%에서 싹트기를!
 
신예리 JTBC 보도제작국장·밤샘토론 앵커
AD
온라인 구독신청 지면 구독신청

중앙일보 핫 클릭

PHOTO & VIDEO

shpping&life

뉴스레터 보기

김민석의 Mr. 밀리터리 군사안보연구소

군사안보연구소는 중앙일보의 군사안보분야 전문 연구기관입니다.
군사안보연구소는 2016년 10월 1일 중앙일보 홈페이지 조인스(https://news.joins.com)에 문을 연 ‘김민석의 Mr. 밀리터리’(https://news.joins.com/mm)를 운영하며 디지털 환경에 특화된 군사ㆍ안보ㆍ무기에 관한 콘텐트를 만들고 있습니다.

연구소 사람들
김민석 소장 : kimseok@joongang.co.kr (02-751-5511)
국방연구원 전력발전연구부ㆍ군비통제센터를 거쳐 1994년 중앙일보에 입사한 국내 첫 군사전문기자다. 국방부를 출입한 뒤 최장수 국방부 대변인(2010~2016년)으로 활동했다. 현재는 군사안보전문기자 겸 논설위원으로 한반도 군사와 안보문제를 깊게 파헤치는 글을 쓰고 있다.

박용한 연구위원 : park.yonghan@joongang.co.kr (02-751-5516)
‘북한의 급변사태와 안정화 전략’을 주제로 북한학 박사를 받았다. 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ㆍ군사기획연구센터와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북한연구센터에서 군사ㆍ안보ㆍ북한을 연구했다. 2016년부터는 중앙일보에서 군사ㆍ안보 분야 취재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