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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훈범의 시시각각] 쇼는 계속돼야 한다

이훈범 논설위원

이훈범 논설위원

록그룹 퀸의 기타리스트 브라이언 메이는 막 작곡을 마친 악보를 내려놓으며 고개를 저었다. 후반부 고음이 너무 높아서 가성을 쓰지 않고는 누구도 부를 사람이 없을 것 같았다. 더구나 보컬인 프레디 머큐리는 에이즈로 체력이 떨어질 대로 떨어진 상태였다. 메이는 머큐리에게 조심스럽게 물었다. “음을 좀 낮출까?” 한입에 털어 넣은 보드카 잔을 내려놓으며 머큐리가 대답했다. “젠장, 해보지 뭐(I’ll fucking do it).” 머큐리는 마이크를 잡았고, 단 한 번에 녹음을 끝냈다. 이 노래가 머큐리 생전 마지막 앨범의 마지막 트랙인 ‘쇼는 계속돼야 한다(The show must go on)’다.
 
이 노래가 떠오른 건 요즘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는 ‘쇼’ 때문이다. 서울시장이 뒤떨어진 강북의 현실을 파악하겠다며 옥탑방살이를 시작했고, 대통령은 시민들의 말을 듣겠다고 광화문 호프집에서 맥주를 마셨다. 이를 두고 말들이 많았다. 역시나 사람들은 자기가 보고 싶은 것만 봤다. 누구는 “정치인들에 흔한 ‘서민 코스프레’”라 마뜩잖아 했고, 누구는 “현장에 답이 있음을 안다”고 박수를 쳤다.
 
양쪽 모두 틀리지 않는다. 강북의 현실은 옥탑방에 있지 않다. 강남 땅값이 가장 비싼 건 강남에 일자리가 가장 많기 때문이다. 그래서 부자건 빈자건 강남으로 몰리는 거다. 부자들을 위해 요새 같은 아파트 단지가 생기는 거고, 강남에 터전을 마련할 엄두를 못 내는 빈자들은 꼭두새벽에 고 노회찬 의원이 말한 강남행 ‘6411번’ 버스에 오르는 거다. 강남·북 균형발전을 위한다면 옥탑방 체험보다 강북에 일자리를 만들 궁리를 해야 한다는 말이다.
 
대통령의 호프집 행사는 ‘탁현민도 맛이 갔나’ 갸우뚱하게 만드는 권위주의적 구태다. 특히 예전에 써먹었던 인물을 다시 섭외했다 탄로 나는 실수는 하지 말았어야 했다. 무엇보다 시민들을 모아놓고 100분 동안 “돌아가며 말해보라”는 식으로 소통할 수 있다고 믿는 게 오만이다. 진정 국민 목소리를 듣고 싶다면 몇 날 며칠이고 현장을 찾아가 보고 또 확인했어야 한다. 과거 전제군주들이 왜 미복잠행을 했겠나.
 
하지만 방법은 잘못됐어도 시민들의 삶을 느끼고 국민들의 애로를 듣겠다는 시도 자체는 평가할 만하다. 많은 걸 바꿀 수 있는 권력자가 되고서도 아무것도 안 하고 편안한 관저에만 틀어박혀 있는 것보다는 낫다. 그런 보스에게 입도 벙끗 못 하고 심지어 보스가 어디 있는지도 모르던 참모들보다는, 성에 안 차도 이것저것 아이디어를 제공하는 참모들이 나은 것이다.
 
중요한 건 그런 ‘쇼’가 계속돼야 한다는 거다. 머큐리에게 쇼가 곧 삶이었던 것처럼 대통령과 서울시장의 쇼도 서민들의 더 나은 삶을 가능하게 만드는 현실 정책으로 이어져야 한다는 말이다. 노회찬과 진보정권의 노선 차이는 현 정권의 이론가들이 사회주의 이념의 실현 도구로서 노동자를 봤다면, 노회찬은 노동자들의 고단한 삶을 공유하며 사회주의 이념의 실현으로 나아간 데서 비롯될 것이다. 그래서 같은 최저임금을 말해도 둘은 온도 차이가 있었다. 그것이 노회찬에게 대중이 열광한 이유일 터다.
 
현 정권의 진보 이론가들도 책상머리에서 내려와 현장을 봐야 한다. 내 생각이 현장에서 잘 먹히고 있는지, 생각지도 못했던 결과를 낳고 있지는 않은지 살펴야 한다. 그렇지 못하면 반대쪽의 기득권층에 불과할 뿐이다. 머큐리는 노래했다. “쇼는 계속돼야 해. 내 심장이 부서져도, 내 화장이 지워져도 내 미소는 영원히 남을 거야.” 현실과 생각의 이격을 현장에서 계속 조정하고 보수해야 한다. 그런 쇼가 계속돼야 한다. 그래야 결국 웃을 수 있다.
 
이훈범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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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용한 연구위원 : park.yonghan@joongang.co.kr (02-751-5516)
‘북한의 급변사태와 안정화 전략’을 주제로 북한학 박사를 받았다. 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ㆍ군사기획연구센터와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북한연구센터에서 군사ㆍ안보ㆍ북한을 연구했다. 2016년부터는 중앙일보에서 군사ㆍ안보 분야 취재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