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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수대] 노무현의 마지막 선물

서경호 논설위원

서경호 논설위원

1987년 31회 행정고시 재경직 2차 재정학 시험에 ‘부(負)의 소득세’의 의미를 묻는 다소 낯선 문제가 출제됐다. 이 시험에 합격했던 박춘섭 조달청장은 “당시 재정학 교과서에도 나오지 않는 개념이어서 당황한 수험생이 많았다”고 회고했다. 부의 소득세는 자유주의 보수 경제학자인 밀턴 프리드먼(1912~2006)이 고안했다. 모든 국민에게 동일한 소득세율을 적용하고 소득세 면제 기준에 미달하는 소득자에겐 차액에 비례해 마이너스 소득세, 즉 정부 보조금을 지급하는 개념이다. 최저임금제나 농산물가격 지지 정책처럼 시장가격에 직접 개입해 시장 메커니즘을 왜곡하는 부작용이 없고, 일하면 할수록 소득이 더 늘어나는 구조이기 때문에 근로의욕을 감소시키는 시혜성 복지와도 다르다. 부의 소득세가 ‘일하는 복지(workfare)’로 불리는 근로장려세제(EITC)의 이론적 기반이 된 것도 이런 이유다.
 
EITC는 75년 미국에서 처음 도입했고, 영국·프랑스 등 선진국이 뒤를 이었다. 아시아 최초로 EITC를 채택한 건 한국이었다. 김대중 정부에서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를 도입했지만 차상위 근로 빈곤층이 복지의 사각지대에 놓여 있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았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출범 초기부터 EITC를 검토한 노무현 정부는 2005년 도입을 결정하고 준비과정을 거쳐 2006년 입법을 완료했다. 근로자부터 시작하되 소득 파악이 쉽지 않은 자영업자는 뒤로 미뤘다. 근로장려금은 2009년 이명박 정부 시절에 2008년 근로소득을 기준으로 처음 지급됐다. 그 후 보수정권 10년간 EITC의 대상과 지급액은 꾸준히 늘었고 2015년부터는 자영업자도 수급대상에 포함됐다. 보수 경제학자의 아이디어를 태평양 너머 한국의 진보정권이 받아들이고 보수정권이 키워 온 셈이다. 현실에서 진보와 보수의 이념적 거리는 생각만큼 멀지 않다.
 
정부가 어제 EITC의 대상과 지급액을 파격적으로 늘리는 세법개정안을 발표했다. 최저임금 인상의 부작용을 지적해 온 보수학자들도 차라리 EITC가 제대로 된 분배정책이라고 지적해 온 만큼 EITC 확대는 이미 예견됐다. 한 가지 짚어야 할 것은 프리드먼이 주장한 부의 소득세는 다른 모든 공공복지 제도의 철폐를 전제로 하고 있다는 점이다. 물론 다른 복지정책 없이 부의 소득세만 도입한 국가는 없다. 하지만 기존 복지정책의 값비싼 전달체계나 과도한 시장가격 개입은 그냥 방치하면서 EITC와 최저임금을 같이 올리는 한국을 보면 지하의 프리드먼이 몹시 씁쓸해할 것 같다.
 
서경호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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