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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주 일요일 커피숍서 만나 수다 떠는 ‘no人’친구

기자
김길태 사진 김길태
[더,오래] 김길태의 91세 왕언니의 레슨(24) 
나이가 90이 넘으니 친구들 대부분이 세상을 떠났거나 외출이 불가능할 정도로 건강이 안 좋아 가끔이라도 만나는 친구가 이제 몇 명 남지 않았다. 그중 매주 일요일이면 특별한 일이 없는 한 꼭 만나는 친구가 있다.  
 
나보다 두 살이 더 많은 그 친구는 유일한 낙이 일요일 오전 교회 예배를 마치고 나를 만나는 일이라고 한다. 나 역시 온종일 집안에 혼자 있는 시간이 대부분이라 이 친구를 만나는 일요일이면 아침부터 기분이 참 좋다. 
 
고향이 함경도인 50년 지기 친구 
고향이 부산과 함경도인 우리는 50년 지기 친구다. 이제 60이 넘은 큰딸이 초등학교에 다닐 때 학부형으로 만나 지금까지 인연을 이어오고 있다. [사진 김길태]

고향이 부산과 함경도인 우리는 50년 지기 친구다. 이제 60이 넘은 큰딸이 초등학교에 다닐 때 학부형으로 만나 지금까지 인연을 이어오고 있다. [사진 김길태]

 
오늘도 우리 두 노인은 매주 만나는 현대 백화점 커피숍의 정해진 자리에 앉았다. 고향이 부산과 함경도인 우리는 50년 지기 친구다. 이제 60이 넘은 큰딸이 초등학교에 다닐 때 학부형으로 만나 지금까지 인연을 이어오고 있으니 서로의 가족사를 다 꿰고 있어 늘 할 이야기가 끊이질 않는다.
 
함께 아이스 커피를 앞에 두고 오늘도 이런저런 이야기를 끝없이 나누며 웃는다. 이곳에는 우리만큼 나이 든 사람은 없다. 둘은 주위의 시선에 개의치 않고 오랜 시간을 한 곳에서 버틴다. 아픈 다리 때문에 이곳저곳 기웃거릴 수가 없다. 입만 살아있는 것이다. 
 
갑자기 친구가 “얘, 우리는 ‘no인(人)’ 이자 노인(老人)이야” 한다. 참 기막힌 발상이다. ‘사람이 아니다’의 no人과 ‘늙은 사람’의 노인. 발음도 같고 뜻 또한 같다. 90을 넘긴 우리 두 사람은 노인이면서 no人인 것이다. “그래 맞아 당신은 천재야. 사람이면서 사람이 아닌 우리가 이 젊은 애들 속에 앉아 있으니 참….” 서로 마주 보고 한참 웃었다.
 
몇 시간을 앉아 있는 동안 아무리 주위를 돌아봐도 우리 같은 늙은이는 오지 않는다. 우리 둘은 이런 곳에 어울리지 않는 no人인 것이다. 이곳에 있는 젊은이들과 달리 우리는 할 일이 없다. 할 수 있는 일도 별로 없다. 눈도 어둡고 귀도 어둡다. 다리가 아파 뛰지도 못하고 걷는 것도 힘들다. 
 
현대백화점 문화센터 옆에 있는 레스토랑에서 딸이 꽃을 보면서 소녀처럼 웃어보라고 하면서 '찰칵'. [사진 김길태]

현대백화점 문화센터 옆에 있는 레스토랑에서 딸이 꽃을 보면서 소녀처럼 웃어보라고 하면서 '찰칵'. [사진 김길태]

 
거울을 들여다보면 내 얼굴은 그 속에 없고 늙은이만 있다. 믿음직스럽지도 않고 예쁘지도 않은, 꿈도 희망도 없는 주름투성이의 늙은 얼굴이 그 안에 있다. 활동력과 아름다움도 없고 일에 대한 추진력 또한 없으니 no人, 즉 老人인 것이다.
 
사람이면서 사람이 아닌 늙은 우리는 그래도 밝고 쾌적한 분위기를 즐긴다. 아무의 간섭도 받지 않고 맛있는 케이크를 먹고 커피를 마시며 이야기한다. 큰 소리로 웃고 떠들면서 몇 시간을 앉아서 즐기다가 오후 3시가 넘으면 주위를 한 번 살펴보고 일어난다. 
 
마치 우리가 자리를 양보해주는 것 같이 뻔뻔하기도 하다. 매주 오다 보니 주인은 친구인 양 미소를 보내준다. 그렇게 일주일간의 회포를 실컷 푼 우리는 젊은 사람들에게 자리를 양보하고 떠난다.

 
헤어지기 전 함께 슈퍼에서 일주일 치 장 봐  
헤어지기 전 우리는 슈퍼에 가서 일주일 치의 장을 본다. 유기농야채, 사과, 배, 토마토, 아보카도, 쇠고기, 파, 마늘 등등. 사는 날까지 건강을 유지하며 사람답게 먹고 살려고 많이도 산다. 장 본 물건들을 배송시킨다. 힘들게 들고 가지 않아도 되니 참 좋은 세상이다.
 
다음 약속을 한다. 지켜질지는 다음 주가 되어봐야 안다. 아무렴 어떤가! 그렇게 지금까지 이어온 만남이다. 지금도 일요일마다 만날 수 있는 두 사람의 건강에 감사하면서 가벼운 마음으로 집으로 돌아간다. 두 노인은 no人답게 아주 편안하게 잘살고 있는 것이다. 
 
김길태 산부인과 의사 heesunp1@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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