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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영기의 시시각각] 벌거숭이 임금님

전영기 중앙일보 칼럼니스트

전영기 중앙일보 칼럼니스트

대선전이 불을 뿜던 2017년 3월 문재인 후보가 노량진의 한 빨래방을 깜짝 방문해 만났던 취업준비생 청년이 지난주 문 대통령의 광화문 호프집 행사에 또 등장했다. 이번에는 청와대 의전비서관실(김종천 비서관)로부터 대통령을 만나리라는 연락을 미리 받아 광주광역시에서 상경했다. 그런데도 청와대 국민소통수석실(윤영찬 수석)은 행사 전 브리핑에서 “시민들은 대통령이 오시는 줄 모르고 있다”고 거짓말했다. 사전 각본이 아님을 강조하기 위한 의도적 거짓말인지, 의전비서관실이 제대로 사실관계를 설명해 주지 않아 빚어진 결과적 거짓말인지는 확인할 수 없다.
 
야당은 보여주기식 ‘쇼통’이라고 비판하지만 그보다 심각한 문제가 있다. 거짓을 말하고도 미안해할 줄 모르고 대국민 사과 한마디 안 하는 청와대 참모진의 낯 두꺼운 행태다. 1년4개월 전 빨래방 사진이 온라인에 떠돌아 꼼짝 못하게 되자 청와대가 내놓은 해명이라는 게 ‘딱 그 한 사람만 대통령이 온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는 것이다. 미덥지 못하다. 한 번 거짓말한 사람의 두 번째 말에 신뢰를 주기 어렵다. 그래도 거기서 그치면 괜찮았을 것이다. “과거에 연을 맺은 사람을 다시 만나 현재 생활을 듣는 콘셉트였다”고 둘러대기까지 했다. 논점을 바꾼다고 거짓이 사실로 바뀌나.
 
의도적이든, 결과적이든 거짓말로 판명났으면 경위를 파악해 책임을 가리고 공개 사과를 하는 게 정부 일 하는 사람들의 도리다. 뭐 이리 좁쌀 같은 일에 시시콜콜 시비하느냐는 독자도 있을 것이다. 그렇지 않다.  청와대가 서로 감싸주기에 바쁘면 그로 인해 생기는 부담과 비난은 고스란히 대통령한테 전가된다. 대통령을 보좌하는 일은 그만큼 두렵고 엄숙한 것이다. 청와대가 그렇게 하지 못한 이유는 부문 간 솔직한 소통이 미흡하고 책임 규명이나 비판을 회피하는 끼리끼리 문화가 퍼져 있기 때문일 것이다.
 
‘청와대 거짓말’은 국민뿐 아니라 대통령을 속이는 결과도 낳았다. 문 대통령은 호프집의 수십 명 사람들 앞에서 “다들 좀 놀라셨죠? 제가 보안이나 경호 문제 때문에 일정을 미리 알리지 못했습니다”라고 미안한 마음을 전했다. 그런데 일부 시민은 대통령의 등장을 알고 있었다. 이제 온 세상이 그 사실을 알게 됐다. 거리의 백성들은 다 아는데 당사자만 모르는 ‘벌거숭이 임금님’까지 간 건 아니지만 문 대통령은 머쓱해졌다. 참모들이 정직하게 보고했어야 했다. 앞으로 대통령이 국민들과 깜짝 만남을 가진다 해도 실제로 놀랄 국민은 별로 없을 것이다.
 
안데르센의 1837년 작품인 ‘벌거숭이 임금님’은 허영과 쇼맨십에 가득 찬 권력 세계를 풍자하고 있다. 왕이 백성의 조롱거리가 된 사건은 있지도 않은 옷을 멋지다고 찬양한 신하의 작은 거짓말에서 시작됐다. 나라를 다스리는 데 가장 중요한 자원인 ‘신뢰’에 금이 가고 있다. 책임 있는 청와대 당국자가 국민 앞에서 사과해 주기 바란다. 대통령을 지키기 위해서라도 잘못을 고백할 필요가 있다.
 
수천 년 세월이 흘러도 변치 않는 통치의 진실은 국가 지도자가 국민의 신뢰만은 잃지 말아야 한다는 가르침이다. 공자님은 “나라가 존립하는 데 군사와 식량과 신뢰 세 가지가 있어야 한다. 그중에 무엇인가 버려야 한다면 첫째가 군사요 둘째가 식량”이라고 했다. 안보보다 경제가 중요하다는 얘기다. 그런데 제일 중요한 건 국민의 신뢰다. 공자님은 “믿음을 잃으면 나라 자체가 성립하지 않기 때문(無信不立)”이라고 설명했다. 안보 걱정도 있고 경제 문제도 심각하지만 가장 무서운 건 신뢰의 파탄이다. 신뢰는 거짓이 대충 얼버무려지는 곳에서 자라지 않는다.
  
전영기 중앙일보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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