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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묵 속 기립박수…밥 딜런, 정녕 이렇게 헤어지는 건가요

무대에서 공연하고 있는 밥 딜런. 이번 내한 공연은 사진 촬영이 금지됐다. [중앙포토]

무대에서 공연하고 있는 밥 딜런. 이번 내한 공연은 사진 촬영이 금지됐다. [중앙포토]

모른 것은 아니었다. 미국을 대표하는 음유시인이자 포크록 가수인 밥 딜런(77)의 공연을 보는 것이 쉽지 않은 일임을 말이다. 2016년 10월 13일 뮤지션 최초로 노벨문학상을 받았을 때도 스웨덴에서 열린 시상식에 참석하는 대신 “선약이 있다”며 미국 라스베이거스의 콘서트 무대에 올랐던 그였다. “노벨상 수상을 축하한다”는 청중의 환호에도 일절 답이 없던 그에게 음악 외적인 소통을 기대하는 것 자체가 무리였던 걸까.
 
딜런은 27일 서울 올림픽공원 체조경기장에서 열린 ‘밥 딜런 & 히스 밴드’ 콘서트 무대에도 인사 없이 올랐다. 8년 만에 한국을 다시 찾은 그는 기타를 메고 ‘올 얼롱 더 워치타워(All Along The Watchtower)’와 ‘돈트 씽크 트와이스, 잇츠 올 라이트(Don’t Think Twice, It’s All Right)’를 불렀다. 김광석이 ‘두 바퀴로 가는 자동차’로 번안해 불러 국내 관객에도 친숙한 곡이었지만 객석은 침묵했다. 물기 없이 쩍쩍 갈라진 목소리에 원곡과 전혀 다른 편곡이 그가 지금 무슨 노래를 부르는지 짐작하기 조차 어렵게 만든 탓이다. 지난 4월 27일 이탈리아 베로나 공연 이후 석 달 만에 무대에 오른 그는 무대 위에서 찬찬히 밴드와 합을 맞춰 나갔다.  
 
2012년 미국 LA에서 공연하고 있는 밥 딜런. 백발이 성성한 그는 자유롭게 노래했다. [AP=연합뉴스]

2012년 미국 LA에서 공연하고 있는 밥 딜런. 백발이 성성한 그는 자유롭게 노래했다. [AP=연합뉴스]

세 번째 노래부터 건반 앞에 앉은 그는 앉은 자리에서 15곡을 소화했다. 스탠드 마이크 앞에서 서서 부른 곡은 샹송가수 이브 몽탕의 원곡 ‘오텀 리브스(Autumn Leaves)’가 유일했다. 아델이 리메이크한 ‘메이크 유 필 마이 러브(Make You Feel My Love)’ 같은 히트곡이 없었던 것은 아니나 대부분이 생소한 곡으로 꾸려졌다. 후반부로 갈수록 그의 목 상태는 차츰 나아졌지만, 관객들은 점점 지쳐갔다. 붉은 천과 조명으로만 이뤄진 단출한 무대 구성에 대형 스크린도 없어 딜런의 모습을 제대로 볼 수 없었기 때문이다. 공연기획사 파파스이엔엠은 “관객 편의를 위해 스크린 설치를 요청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았다”고 밝혔다. 2010년 3월 첫 내한공연 때도 딜런은 스크린을 설치하지 않았다. 무대에 대한 집중도를 높이기 위함이다.  
 
자연히 공연에 대한 호불호가 갈렸다. 시작부터 꽉 채워지지 않았던 7000여 객석엔 여기저기서 관객들이 퇴장하면서 점점 빈 좌석이 늘어갔다. 회사원 박지연(26)씨는 “1시간 동안 부른 노래가 모두 같은 곡으로 들렸다. 가사 전달력이 떨어질뿐더러 관객과 소통하고자 하는 의지가 전혀 없어 보인다”고 말했다. ‘두 바퀴로 가는 자동차’의 작사가인 가수 양병집은 “밥 딜런은 읊조리는 창법과 내지르는 창법이 적절히 섞여 있는 게 매력인데 모두 같은 톤으로 편곡돼 있다. 그저 노래를 끝까지 부르기 위함인데 콘서트라기보다는 리사이틀(독주회)에 가깝다”며 아쉬움을 표했다.  
 
젊은 시절의 밥 딜런(75) [게티이미지]

젊은 시절의 밥 딜런(75) [게티이미지]

반면 오롯이 음악에 집중할 수 있어서 좋았다는 관객도 적지 않았다. 딜런의 하모니카 연주는 전성기 시절 그를 추억하는 데 모자람이 없었고, 그가 하모니카를 들 때마다 노래를 마칠 때보다 더 큰 박수 소리가터져 나왔다. 체조경기장 리모델링 후 첫 공연인 만큼 한층 웅장해진 사운드로 밴드의 연주도 전해졌다. 유모(68)씨는 “내가 69학번이라 62년 데뷔한 그의 음악과 함께 청춘을 보내서 그런지 아주 전율하면서 봤다. 철학을 담은 가사와 훌륭한 연주로 충분하다. 밥 딜런이 원래 가창력이 빼어난 가수는 아니지 않느냐”며 “죽기 전에 다시 한번 볼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소감을 밝혔다.  
 
2시간 동안 이어진 공연은 앙코르곡 ‘블로잉 인 더 윈드(Blowin’ In the Wind)’와 ‘발라드 오브 어 씬 맨(Ballad Of A Thin Man)’으로 기립박수 속에서 마무리됐다. “얼마나 많은 길을 걸어야 우리는 비로소 인간이 될 수 있을까”라고 첫 소절이 흘러나오자 사람들은 일제히 환호했으나 이내 잦아들었다. 역시나 자유분방한 편곡과 달라진 창법으로 관객을 그 시절로 데려가는 데는 실패했다. 관객들은 천국의 문을 두드리는(‘Knockin’ On Heaven’s Door’) 마음으로 구르는 돌(‘Like a Rolling Stone’)처럼 발을 동동 굴렀으나 천국에 들어가려고 노력하다(‘Tryin’ To Get To Heaven’) 그쳤달까. 작별 인사와 감사 인사 역시 없었다. 밥 딜런은 29일 일본 후지 록 페스티벌에 참석 이후 대만, 홍콩, 싱가포르, 호주 등으로 아시아 투어를 이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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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경원 기자 storym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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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급변사태와 안정화 전략’을 주제로 북한학 박사를 받았다. 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ㆍ군사기획연구센터와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북한연구센터에서 군사ㆍ안보ㆍ북한을 연구했다. 2016년부터는 중앙일보에서 군사ㆍ안보 분야 취재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