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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북한 개방하면 SOC 건설에 대대적 투자할 것

쿵단(孔丹) 중국 중신개혁발전연구재단 이사장이 25일 국회를 방문해 문희상 국회의장을 예방했다. 그는 개혁과 개방을 이끈 중국국제신탁투자공사와 광다그룹의 사령탑을 지냈다. [연합뉴스]

쿵단(孔丹) 중국 중신개혁발전연구재단 이사장이 25일 국회를 방문해 문희상 국회의장을 예방했다. 그는 개혁과 개방을 이끈 중국국제신탁투자공사와 광다그룹의 사령탑을 지냈다. [연합뉴스]

“중국 개혁·개방의 길은 정말 두렵고 막막한 여정이었습니다.”
 
쿵단(孔丹·71) 중국 중신개혁발전연구재단 이사장의 말이다. 그는 개혁·개방의 기관차 역할을 했던 투톱 국영기업을 이끌었던 장본인이다. 베이징에 본사를 둔 중국국제신탁투자공사(중신·中信·CITIC)와 홍콩의 광다(光大)그룹의 사령탑을 지냈던 쿵단 이사장을 지난 25일 국회에서 만났다. 그는 구술 자서전 『변혁 속의 나의 인생』 출판 기념 강연차 서울을 방문했다.
 
쿵 이사장은 “중국의 개혁·개방사는 안개 속에서 돌다리 바닥을 짚어가며 앞으로 나간 여정이었다”고 말했다. 화려한 성과 이면에는 상상 밖의 시행착오들이 있었다고 한다.
 
그가 24년간 몸담았던 중신과 광다그룹은 개혁·개방 초창기부터 해외의 선진 자본·기술·운영 노하우를 중국으로 유치하는 대외창구였다. 중국은 문호를 연 이후 초고속 성장세를 달리며 2015년 일본을 제치고 미국에 이어 경제력 2위에 올랐다. 이 과정에 굴곡이 없을 리가 없었다. 계획경제 체질을 바꾸기는 말같이 쉽지 않았다고 한다. 유치한 자금을 잘못 운용해 부실 채권이 쏟아지는 일이 부지기수였고 자금 유치 실적을 키우기 위해 말도 안 되는 금리로 돈을 빌렸다가 파산 위기에 처할 뻔하기도 했다.
 
사건의 개요 외에는 내막이 잘 알려지지 않은 광다의 채무불이행 위기가 대표적이다. 쿵 이사장은 1996년 당시 광다를 파산의 벼랑 끝까지 몰고 갔던 사건의 전모를 털어놨다.
 
당시 광다의 자회사인 국제신탁투자공사의 책임자 왕야커(王亞克)는 3~4년 만에 9억 위안(약 1485억원)에 불과했던 위탁고 규모를 140억 위안까지 불렸다. 비결은 중국 화폐 런민비(인민폐)를 맡길 때는 연간 22.4%, 달러는 12%를 약속한 고금리였다. 이렇게 모은 돈으로 성(省) 단위의 사업에 투자했으나 본전도 못 건졌다. 몇 년간 왕야커는 분식회계로 진상을 가렸다. 1995년 봄 왕야커는 구리 선물거래에서 8000만 달러를 날리고 경질됐다. 모기업의 쿵단 부총경리가 소방수로 긴급 투입됐다.
 
진상 파악 결과 지난 1년간 손실액은 25억~30억 위안에 달했다. 자본 잠식 상황이었다. 사태는 눈덩이처럼 커져 리란칭(李嵐淸) 부총리에 보고 되고 주룽지(朱镕基) 인민은행장이 사태 수습에 나서게 됐다. 대책반이 제시한 해법은 출자전환. 빚을 주식으로 바꾸는 것이었다. 하지만 자본 잠식 상태라 원금의 10분의 1 가치도 보전하기 어려웠다. 쿵단은 출자전환을 반대하는 채권단을 설득했다. 결국 부채의 일부를 정책금융으로 메꾸고 나머지는 주식으로 바꿨다. 급한 불은 껐지만 불안은 또다시 엄습했다. “간산히 채무불이행은 막았지만 신탁받은 돈으로 투자해서 이익을 내야 하는 게 급선무였습니다.”
 
지금은 은행·증권·보험·투신을 운용하며 330억 달러 이상의 매출을 올리는 글로벌 기업이 됐지만 20년 전만 해도 광다는 이렇게 자본유치와 운용에서 미숙함을 드러내던 초보였다.
 
광다보다는 훨씬 안정적이었지만 2000년 초 중신도 부실채권 300억 위안 문제로 흔들렸다. 이 위기는 당 중앙의 도움으로 채권을 발행하면서 벗어났지만 악전고투가 아닌 곳이 없었다고 한다. 중신은 중국 국무원 산하의 최대 금융그룹으로 금융서비스를 포함해 에너지·부동산 개발 등 다양한 영역에서 연간 60조원 이상의 매출을 올리는 거대 국영기업이다. 중신은 2018년 포브스 선정 세계 500대 기업 가운데 149위에 올랐다.
 
개혁·개방 40년 역사와 궤를 같이하는 중신·광다의 경험과 노하우는 사회주의 계획경제 체제가 대외개방에 나설 때 귀중한 참고로서 가치가 높다. 북한엔 어떤 시사점을 줄 수 있을까. 쿵단 이사장의 얘기다.
 
“덩샤오핑(鄧小平)의 지시로 룽이런(榮毅仁) 초대 회장이 창립한 중신은 개혁·개방의 기관차 같은 존재였다. 중국의 개혁·개방은 폐쇄적인 사회주의 계획경제 체제가 개방의 바다로 나가는 전대미문의 일이었다. 기업의 모양새를 하고 있었지만 중신은 사실상 중국을 개혁·개방으로 이끄는 전략기관이었다. 덩샤오핑의 개혁·개방을 추진하는 핵심 수단으로서 권위를 인정받았다. 그 덕에 해외의 자본·기술을 유치하고 경영관리 기법을 전수받는 등 대외개방의 첨병으로서 정책 가이드라인 역할을 수행할 수 있었다.”
 
쿵 이사장은 “북한이 개방할 경우 중국은 자본과 발전 노하우를 바탕으로 적극적으로 북한 시장에 뛰어들 것”이라고 강조했다. 특히 시진핑(習近平) 지도부가 국가 성장 전략으로 추진 중인 일대일로(一帶一路·육해상 신실크로드) 사업과 연결해 도로·철도·항만 등 북한 사회기반시설(SOC) 건설에 대대적으로 투자할 것이란 의사를 내비쳤다.
 
“지난 40년 개혁·개방 경험에서 아쉬웠던 점은 중신 같은 기업이 북한에 투자할 기회가 없었다는 것이다. 북한이 개방 노선을 정한다면 해외자본 유치가 중요한 이슈로 부상할 것이다. 북한은 일대일로 프로젝트의 관건이 되는 국가다. 북한과 일대일로 사업을 연결하는 것은 어렵지 않고 여건만 되면 언제든 추진할 수 있다. 인프라 구축을 통해 일대일로에 탑승하면 함께 발전하면서 시장을 확보할 수 있을 것이다. 중신은 개혁개방 40년 노하우를 갖고 대북 전략을 이행하는 기관으로서 역할을 하게 될 것이다.”
 
북한이 개혁·개방에 나선다고 해도 꽃길만 있는 것은 아니라고 쿵 이사장은 선을 그었다. 닫힌 사회를 뒤로하고 개혁·개방의 길로 나간다는 점에서 넘어야 할 관문이 만만치 않게 있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하지만 개혁·개방의 방향과 미래에 대해선 낙관한다고 덧붙였다.
 
쿵 이사장은 “중국의 경우 문화대혁명의 시행착오가 강력한 반면교사가 돼 개혁·개방 노선을 견지하고 올 수 있었다”고 말했다. 그는 문혁 긍정론을 펼쳤다.
 
“덩샤오핑의 아들 덩푸팡(鄧樸方)에게 ‘문혁이 없었다면 개혁·개방도 성공하기 힘들었을 것’이라고 말한 적이 있다. 덩푸팡은 ‘아버지 말씀과 같다’며 반색했다. 문혁의 폐해로 전 사회가 요동쳤기 때문에 다시는 그런 폐쇄주의의 길을 걸어선 안 된다는 사회적 공감대가 있었던 것 같다. 좌절과 착오가 있었지만 문혁이 없었다면 개혁·개방은 미사일의 엔진과 같은 강한 추진력을 얻기 어려웠을 것이다.”
 
쿵단 이사장
지린(吉林)성 옌볜(延邊) 출신인 쿵단(71)은 공산당 중앙조사부장(장관급) 아버지와 저우언라이(周恩來) 총리 비서실의 부주임(차관급)을 역임한 어머니를 둔 훙얼다이(紅二代·혁명간부 2세) 신분으로 순탄한 학창 생활을 보냈다. 하지만 문혁의 거센 물결에 휩쓸려 어머니가 스스로 목숨을 끊고 가족이 해체되는 비극을 겪었다. 쿵단은 산시(陝西)성 북부에서 4년간 하방시절을 보냈다. 국무원 산하 국가경제위원회를 거쳐 광다그룹 부회장과 중신그룹 회장을 역임했다. 그는 시진핑 국가주석, 왕치산(王岐山) 부주석과도 친분이 깊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가 이사장을 맡고 있는 중신연구재단은 2014년 시 주석의 ‘고급 싱크탱크’ 설립 지시로 문을 연 연구기관이다.
 
정용환 기자 narrativ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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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급변사태와 안정화 전략’을 주제로 북한학 박사를 받았다. 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ㆍ군사기획연구센터와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북한연구센터에서 군사ㆍ안보ㆍ북한을 연구했다. 2016년부터는 중앙일보에서 군사ㆍ안보 분야 취재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