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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漢字, 세상을 말하다] 以隣爲壑<이린위학>

학(壑)은 구렁을 뜻한다. 따라서 이린위학(以隣爲壑)은 이웃을 구렁으로 삼는다는 의미다. 자신의 어려움이나 재난을 남에게 떠넘기는 경우를 가리킬 때 쓰인다. 『맹자(孟子)』에 나온다. 중국 전국시대(戰國時代)에 백규(白圭)라는 사람이 있었다. 주(周)나라 출신으로 맹자와 같은 시기에 활약했으며 양(梁)과 제(齊), 진(晉) 나라 등에서 두루 벼슬을 할 만큼 능력이 뛰어났다. 그의 재주는 물길을 잘 잡는 데 있었다. 치수(治水) 전문가였던 것이다. 그는 자신의 재주가 매우 뛰어나며 치수에서도 큰 공을 이뤘다는 자부심이 강했다. 급기야 자신의 치수 능력이 순(舜) 임금 때 치수를 맡았던 우(禹)보다도 훌륭하다고 말하기에 이르렀다.
 
이에 맹자가 백규의 치수 방식이 우 임금에 미치지 못함을 지적한다. “우는 물을 다스릴 때 물이 길을 따라 흘러가게 했다. 그래서 우는 사해(四海, 바다)를 물이 빠지는 골짜기로 삼았다. 그러나 오늘날 그대는 이웃나라를 구렁으로 삼고 있지 않은가(禹之治水 水之道也 是故禹以四海爲壑 今吾子以隣國爲壑)”. 백규는 물길을 막기 위해 높은 둑을 쌓는 방식을 이용했는데 이는 자기 나라 입장에선 홍수를 막을 수 있어 좋았다. 문제는 물길이 역으로 흘러가는 바람에 이웃나라에 홍수가 발생해 큰 수해(水害)를 입게 만들었다는 점이다. 여기서 이린위학이란 말이 나오게 됐으며 이후 남에게 큰 피해를 끼치는 것을 아랑곳하지 않고 자신의 이익만 챙기는 행위를 뜻하게 됐다.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의 ‘아메리카 퍼스트’ 정책을 보면서 이린위학이 떠오른다. 오로지 미국의 이익을 앞세우며 다른 나라의 사정은 안중에 두지 않는 것 같다. 물론 그 나름대로 계산이 있겠지만 유럽연합(EU)을 ‘적(敵)’으로 돌리는가 하면 한국과는 이렇다 할 상의도 없이 한·미 연합훈련 중단과 주한미군 철수를 공개적으로 언급하는 이면에는 모두 미국 중심의 이기적인 돈 문제가 깔려 있다. 트럼프 대통령 행보에서 백규의 자화자찬 내음이 나는 것 같아 참으로 무더운 여름이 더 덥게 느껴진다.    
 
유상철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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