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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리대 검사하자, 별장 개밥 줘라” 갈 데까지 간 직장갑질

‘직장갑질 119’ 상담·운영자 좌담
직장인 오픈채팅방 ‘직장갑질 119’에서 자원봉사로 상담활동을 하는 전문가들이 우리나라 직장갑질 행태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다. 왼쪽부터 이용우 변호사, 김유경 노무사, 박점규 운영위원. 김경빈 기자

직장인 오픈채팅방 ‘직장갑질 119’에서 자원봉사로 상담활동을 하는 전문가들이 우리나라 직장갑질 행태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다. 왼쪽부터 이용우 변호사, 김유경 노무사, 박점규 운영위원. 김경빈 기자

직장 괴롭힘 때문에 근로자 6명 중 1명이 자살충동을 느끼거나(8%) 가해자에게 상해를 입히고 싶은 욕구를 느낀다(8.4%)는 조사결과가 최근 나왔다. 한국직업능력개발원의 ‘직장 괴롭힘의 피해 실태: 건강과 정서’ 결과다. 직장 내 괴롭힘을 포함한 ‘직장갑질’은 최근 근로자 삶을 왜곡시키고 삶의 질을 떨어뜨리는 대표적 사회악으로 지목되고 있다. 21세기 대한민국 직장에서 벌어지는 갑질은 어느 정도인지 궁금해 지난해 11월 직장갑질 상담을 위해 출범한 공익단체 ‘직장갑질 119’에 접수된 사례를 요청해 받아봤다.
 
원장 부인에게 인사하지 않았다고 출근 첫날 해고된 간호조무사, 생리휴가 냈다고 생리대 검사를 요구한 공공기관, 신입교사에게 다른 교사들의 동태를 감시해 보고하라는 교장…. ‘어떻게 이런 일이’. 도대체 믿기지 않는 전근대적이고 인권유린적인 갑질이 서슴없이 벌어지고 있었다. 최근 반 년 사이 터진 한림성심병원 간호사들의 섹시춤, 조현민 전 대한항공 전무의 물세례 갑질 등은 빙산의 일각으로 보였다. ‘직장갑질 공화국’이라 할 만큼 엽기적인 사례들이 줄을 이었다. 이에 ‘직장갑질 119’에서 상담활동을 벌이는 이용우 변호사(법무법인 창조), 김유경 노무사(돌꽃 노동법률사무소), 박점규 운영위원과 함께 직장갑질에 대해 좀 더 깊은 이야기를 나눠봤다.
 
 
물세례·섹시춤 갑질은 빙산의 일각
 
갑질인지 범죄인지 분간이 안 가는 사례가 많았다. 멀쩡한 대기업 계열사가 임금을 제대로 주지 않거나 방송사 작가가 상품권으로 급여를 받았다는 건, 사실 믿기 어려웠다.
김=‘상품권 천만원’이라는 닉네임이 상담창에 올라와 궁금해서 사연을 물어봤더니 한 방송국 촬영감독이 임금을 백화점 상품권으로 받아 밥도 해당 유통업체 푸드코트에서만 사먹는다고 하더라. 그 뒤에 보니 방송사에선 관행적으로 상품권으로 임금을 지불하는 일이 비일비재했고, 프리랜서라는 이름의 비정규직들은 이런 관행에 저항도 못하고 있었다.

=대기업 택배회사가 월급제 택배기사라고 모집하곤 거의 ‘노예계약서’에 사인을 받은 뒤 착취한 사례가 있었다. 처음에 상담 접수된 건은 월급제 택배기사로 들어갔는데 약속한 월급도 나오지 않고, 너무 일이 많아 그만두겠다고 통보한 뒤 한 달 뒤에 그만두자 회사 측에서 ‘사직 시 90일 전 통보해야 하며, 그 날짜만큼 근무하지 않으면 하루 15만원씩 회사에 배상해야 한다’는 계약서에 도장을 찍었으니 배상하라는 내용증명이 왔다는 것이다. 근로자는 그런 조항이 있는지도 모르고 있었다. 우리가 회사 측에 중재를 요청했더니 우리나라 최고 로펌을 사서 대응할 테니 그리 알라고 통보했다. 민간기업들은 이런 탈법적 계약조건을 놓고도 위압적이고, 법으로 하자는 식이다. 수년이 걸리는 이런 민사소송을 근로자 개인이 당해낼 수가 없다. 이 사례 이후 노예계약서 때문에 고민하는 다른 택배사 사례가 잇달아 제보되는 걸 보고, 택배전담변호사를 지정해 공정거래위원회에 택배회사 불공정 사례를 조사해달라고 요청해 놨다.

=직군별로 유사한 갑질이 집중되는 사례가 보였다. 그래서 아예 직군별 상담방을 따로 만들기도 했다. 일단은 방송계, 보육교사, 중소병원 간호사, 사회복지사, 콜센터 등이다. 중소병원 간호사 방에 요즘 갑질 때문에 시끄러운 ‘길병원’ 종사자들이 많기에 길병원 방을 따로 만들었더니 순식간에 1000명이 모여드는 걸 보고 깜짝 놀랐다. 개인적인 문제가 아니라 직장의 구조적 문제가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게 아닐까 생각했다.
 
[그래픽=박춘환 기자 park.choonhwan@joongang.co.kr]

[그래픽=박춘환 기자 park.choonhwan@joongang.co.kr]

 
개인들, 저항할 방법 마땅치 않아
 
왠지 갑질은 상담부터 어려워 보인다. 그런데 상담하면 해결책은 있나.
=기업의 구조적 갑질이 아니더라도 동료들끼리의 괴롭힘 상담이 너무 많은데 이 경우 사실은 답이 없다. 왕따시키고, 자기는 빠진 부서원 단톡방이 따로 존재하고, 출근해보니 전체 부서원이 연수를 떠났더라는 등의 괴롭힘은 한 사람의 인격과 영혼을 파괴하는 행위들인데 너무 아무렇지도 않게 자행되고 있었다. 회장이나 사장은 직원들에게 자기 별장 개밥을 주라는 등 개인 심부름을 시키고, 부서장들은 논문 대필에다 게임 캐릭터 키우기 등 자잘한 개인사를 부하에게 떠넘긴다. 여기에 더해서 지금은 정규직의 비정규직 대상 갑질이나 을이 조금 더 낮은 을에 대한 갑질, 왕따당하는 피해자에 대한 2차 가해 등 너무 복잡해졌다. 을들의 갑질에선 근로자 스스로 비인간화의 길을 가는 모습을 보며 많은 생각을 하게 된다. 상담할 때 가장 무서운 질문이 “저는 어떻게 해야 하나요”라는 것이다. 법으론 괴롭힘을 보호할 수 없다. 단톡방에 “일단 끝까지 버티다 해고를 당하면, 그 후 다시 다툴 수 있다”는 조언을 쓰면서 자괴감이 들었다.

=해결방법으로 사내의 시스템을 이용하라거나 기관에 진정하라는 등의 일상적 대답을 하면서도 이게 얼마나 무력한지 스스로 알기에 참 답답하다. 사실 우리가 아는 답변은 모두 공허하다. 사람들이 타인을 괴롭히는 게 얼마나 나쁜 일인지 깨닫고, 사회가 변화되고, 괴롭힘을 보호하지 못하는 법제도가 정비되는 등 더 큰 차원의 변화가 없다면 개인이 할 수 있는 방법은 별로 없다.
 
고용노동부 등 정부와 함께 해결하는 방법도 있지 않나.
=처음엔 우리도 고용노동부와 정기적인 대화를 했다. 그러나 제보된 사례를 공유했더니 해당 직장에 제보자 신원까지 알려지는 바람에 곤란해진 일을 몇 번 겪고서 이젠 만남 자체를 끊어버렸다. 문제가 해결된 적은 단 한 번도 없다.

=직장갑질 문제는 명시적인 노동법상 위반이 아니면서 민사·형사가 복잡하게 얽혀 있는 경우가 많다. 그러다 보니 명백한 인권유린이 벌어지는데도 관은 늘 행정적 방식으로만 접근한다. 명백한 노동법상 위반이 아니라면 “우리 소관이 아니다”라고만 말한다. 정부에 근로자의 문제를 폭넓게 보고 해결할 능력과 의지가 있는 걸로 보이지 않는다.
 
 
아무렇지 않게 인격·영혼 파괴 자행
 
그동안 직장갑질 119가 폭로한 한림성심병원 문제나 101경비단 갑질 사례 등은 많이 개선된 것 아닌가.
=언론에 보도된 건에 대해선 일부 진전이 있다. 예를 들어 101경비단장이 부하 몇 명을 개인 헬스트레이닝과 마사지에 동원했다는 사실을 제보받고 언론에 공개한 후 달라진 건 사실이다. 그런데 그 과정에서 서울경찰청이 조사를 한다며 당사자들에게 물어보니 모두 “자원해서 한 것”이라고 답해 문제없다고 처리됐었다. 그러다 경호처가 익명 설문조사를 하자 그제야 단장이 강제로 시킨 것이라고 밝혔고, 그걸 따라한 다른 상급자의 갑질도 적발됐다. 갑질 조사는 당사자 조사가 아닌 익명전수조사를 해야만 밝힐 수 있다. 피해자 개인을 조사하면 불이익을 두려워해 “자발적인 것이었다”는 등 다른 말을 한다.

=그나마 공공기관은 언론에 나면 고치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민간기업들은 힘들다. 한 예로 사장이 주말과 휴일이면 체육대회라도 만들어 직원들을 불러내서 힘들다는 제보가 있었다. 도무지 해결책이 없어서 내가 우리 단체 이름으로 그 사장에게 “이런 제보가 있는데 회사 입장을 들어보고 싶다”고 에둘러 전화를 했었다. 그런데도 사장은 이후에 전혀 바뀌지 않았다. 오히려 감정싸움, 오기만 충만해졌다. 또 큰 기업들은 국내 굴지 로펌을 들먹이며 엄포를 놓는다.

=실제로 잘 고쳐지지 않는 것은 갑질 주체가 스스로 그것이 갑질인지 인식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아서다. 과거 개발연대에 도제식으로 윽박지르고, 선배 권위로 짓누르고, 회식을 강요하던 문화에서 살았던 사람들이 “우리 때는 더 했다”고 주장한다. 시대가 변했는데 변하지 않는 사람들, 즉 ‘비동시성의 동시성’을 극복해야 한다.
 
그렇다면 직장갑질을 줄이기 위한 대책은 있는가.
=우리는 지금 대학교수 등 전문가들과 함께 ‘직장갑질지표’를 만들고 있다. 상담사례를 통해 갑질의 유형과 내용들을 알았으니 이를 반영해 설문지를 만들어 직장별로 갑질의 수준을 측정할 생각이다. 원하는 기업이나 조직에 나눠줘서 스스로 갑질 진단을 하도록 하는 방법도 있다. 일단 갑질이 무엇인지, 자기 직장 갑질 수준은 어느 정도인지 스스로 아는 게 중요할 거라고 생각한다.

=사람들이 자기 목소리를 낼 수 있는 오픈채팅방을 마련해주고, 이 사연들이 언론 등을 통해 알려지자 긍정적 반응들이 나왔다. 방송계 비정규직 노조가 만들어지는 등 이제 근로자 스스로 공동의 목소리를 내려는 장치를 만들어가고 있다. 같은 문제를 가진 사람들끼리 모이는 것만으로도 일단 진전이 있다고 본다.

=가장 큰 문제는 직장갑질 관련 법제도가 공백상태라는 점이다. 직장은 위계가 있고, 일상적이고, 은폐가 가능한 특성이 있다. 이런 직장의 특수성에 맞게 폭력, 모욕, 강요 등도 일반적 형법보다 훨씬 강도를 낮춰 규정하고 폭넓게 규제할 필요가 있다. 근로자가 안전한 일터에서 일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사용자의 의무라는 것을 밝히고, 이를 소홀히 하면 벌해야 한다. 문화와 인식개선은 법이 정비되면 빠르게 따라갈 것이다.
 
직장갑질119(gabjil119.com)
지난해 11월1일 변호사, 노무사, 노동활동 경험이 있는 활동가 등 241명이 모여 ‘직장갑질’을 상담하는 오픈채팅방으로 시작했다. 근로자는 누구나 카톡방을 통한 오픈채팅에 참여할 수 있다. 운영자들은 모두 자기 신분을 밝히고 상담에 임하며, 상담자들은 닉네임을 설정해 익명으로 상담한다. 문제가 심각하거나 구체적 내용이 필요할 때는 이메일을 통해 개별적으로 따로 사연을 받는다. 한림성심병원 간호사들의 섹시춤을 세상에 공개한 이래 청와대 101경비단 갑질 등 최근에 쟁점이 된 직장갑질들을 공개하고 있다.
 
양선희 선임기자 sunny@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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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급변사태와 안정화 전략’을 주제로 북한학 박사를 받았다. 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ㆍ군사기획연구센터와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북한연구센터에서 군사ㆍ안보ㆍ북한을 연구했다. 2016년부터는 중앙일보에서 군사ㆍ안보 분야 취재를 한다.